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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청년 일자리 어쩌라고

정년 추가연장도 걸림돌
직무급 서둘러 도입해야

[fn사설]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청년 일자리 어쩌라고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 학생들이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앞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대법원이 26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기준으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고령자고용법 4조에는 사업주가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한 한 연구원 퇴직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당시 연구원의 직무성격을 볼 때 특정 연령 기준이 불가피하게 요구됐다고 볼 수 없으며, 노조 동의를 얻은 취업규칙이 현행법에 어긋나면 그 취업규칙 역시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대법원의 첫 판단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노동계는 즉각 환영을 표하며 "임금피크제 폐지에 나설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반면 재계는 혼란에 휩싸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이 아닌 연령 상생을 위한 제도"라며 "고용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금피크제는 노동자가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고용보장이나 정년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무한경쟁으로 혁신 압력에 시달리는 기업조직이 고령화된 인력을 원만히 흡수하기 위해 채택한 것이 임금피크제였다. 국내에선 2003년께 처음 시작됐지만 일본은 1990년대에 도입했다. 해외에선 성과급 임금체계라 이런 제도 자체가 불필요했다.

임금피크제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요소가 많다. 고령화 시대에 나이 많은 직원들을 무조건 퇴출시킬 것이 아니라 이들이 지닌 풍부한 노하우와 경험을 살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취지였다. 경총이 "이번 판결은 임금피크제의 본질과 법 취지를 도외시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이번 판결로 무차별 소송이 이어질 수 있어 노동시장에 후폭풍이 예상된다. 기업들은 임금피크제라는 제도 자체가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 경우 기업들은 정년퇴직 때까지 인건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청년 신규 일자리를 위축시킨다.

임금피크제 없이는 정년 추가 연장도 쉽지 않다. 지난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으로 정년은 60세로 높였지만 경영계가 요구한 임금피크제 의무화는 법제화되지 못했다. 지금 임금피크제 혼란을 부추기는 것도 당시 조치가 미비했기 때문이다. 지금 강성 노조는 단체협상에서 정년 추가 연장을 단골로 요구하고 있다. 현 임금체계를 그대로 둔 채 정년만 더 연장할 경우 기업은 더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게 되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개혁 과제 중 하나가 경직된 임금체계에 대한 대대적 수술이다. 연공에 기반한 호봉제를 직무성과급 체계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정년을 꽉 채울 때까지 받던 임금을 계속 받으면 기득권 근로자는 좋겠지만, 청년에게 돌아갈 몫은 그만큼 줄어든다. 나이가 벼슬인 호봉제는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면, 아예 임금체계 자체를 직무급 위주로 바꾸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