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스토킹은 '범죄'가 됐다. 이제 스토킹이 범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은 범죄를 조장하는 이른바 '나쁜 속담'이 됐다.
이처럼 스토킹처벌법으로 인식이 바뀌었으니 스토킹 범죄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지난 14일 오후 9시께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무너졌다. 다시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날, 그곳에서는 또 한 명의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나왔다.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은 법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가해자인 전주환은 지난 2019년부터 2년여 동안 피해자를 스토킹했다고 한다. 350여차례 '만나달라'는 등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보내는 등 집요하게 피해자를 괴롭혔다.
피해자는 지난해 10월 전씨를 고소했지만 이후에도 문자는 계속됐다. 피해자는 올해 1월 스토킹 혐의로 전씨를 추가 고소까지 했다. 혐의가 인정돼 전씨는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징역 9년을 구형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씨에 대한 구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1차 고소 당시 전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추가 고소 때는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법원이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면, 경찰이 피해자 신변보호를 철저히 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스토킹 범죄 재발을 막자는 목소리와 대안을 쏟아내고 있다. 스토킹 범죄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조건을 바꾸자는 이야기부터 스토킹 범죄에 대한 친고죄,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 등 다양하다. 스토킹 가해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워 제재하고 감독하는 적극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스토킹처벌법 강화는 좋은 방안임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다만 법은 만능이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스토킹에 관대한 인식을 바꾸지 못하면 언제라도 스토킹 범죄가 재발할 수 있다.
법은 강화되고 있지만 스토킹 범죄는 반복되고 잔혹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서울 노원구에서 세 모녀가, 11월 중구 오피스텔에서 30대 여성이, 12월 송파구 주택에서 피해자 어머니가 살해당했다. 이달엔 신당역에서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매번 법은 강화됐지만 스토킹에 대한 우리 인식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는 달랐으면 한다. 더 이상 새로운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등장하지 않도록 법 강화를 넘어 스토킹에 대한 '인식변화'까지 끌어내는 데 사회적 에너지를 모았으면 한다.
coddy@fnnews.com 예병정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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