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손성진 칼럼] 정치보복과 부패척결 사이

[손성진 칼럼] 정치보복과 부패척결 사이
'함부로 쏜 화살'은 자신이 맞을 수 있다. 말에도 선견지명이 필요하다. "정치보복이라며 죄 짓고도 책임 안 지려는 얕은 수법 이젠 안 통한다."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보복이라면 그런 정치보복은 맨날 해도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 발언들로 자승자박의 꼴이 됐다. 최측근들을 겨냥했던 수사의 칼끝은 이제 이 대표에게로 향하고 있다. 했던 말들을 부정해야 할 판이니 난감할 테다. 검찰이 가진 증거는 넘치는 듯한데 반증이 없으니 그냥 보복이라고 우겨댈 수밖에 없다.

정치보복과 부패척결의 경계는 모호하다. 부패척결이라는 가면을 쓴 정치보복이 횡행한 탓이다. 선거가 끝나면 이긴 쪽은 선물 보따리를, 진 쪽은 때로는 억울한 벌을 받는 게 상례였다. 조선의 사화(士禍)와 결말이 비슷하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려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다.

악습이라면서도 정치보복을 포기한 역대 정권은 없다. 문재인 정권이 폐단을 바로잡겠다는 미명하에 사회 전반을 헤집은 적폐청산도 기실 보복과 다름이 없다. 이념으로 무장한 전위부대들이 홍위병처럼 설쳤다. 반대파들을 숙청하듯 몰아냈다. 사생활을 뒤지는 비열한 수단도 서슴없이 들이댔다.

강규형 교수 등 KBS 이사들이 꽹과리 소리를 견디다 못해 쫓겨났다. 방송 장악 의도가 분명했다. 강 교수는 소송에서 이겨 부당행위였다는 판례를 남겼다. 정치보복은 바로 이런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윤석열 정권은 이것만큼은 답습하지 않았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인적 구성을 바꾸지 않은 채 보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역대 최초의 방송 불간섭으로 새 정부는 상을 받아야 한다.

정권을 내놓고 나니 주인이 도둑이 되듯 상황이 역전됐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을 조사하겠다는 감사원을 향해 "무례하다"고 일갈했다. 필시 보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좌파들은 능숙하게 방향 전환을 한 감사원에 '사냥개'란 칭호를 붙였다.

우리 풍토에서 정치보복은 필요악일 수 있다. 수사·감사 기관들의 취약한 독립성 때문이다. 최고 권력 앞에 찍소리 못하고 납작 엎드려 있다가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정의의 사도로 환생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부정부패는 영원히 묻힌다. 이 대표 측근들의 비행(非行)도 정권이 연장됐더라면 이렇게 드러날 리가 없다. 아무리 '충견'이라 비방해도 검찰이 하는 일 자체는 무조건 보복이 될 수는 없다. 민주적·법적 절차만 지킨다면 말이다.

정치보복과 부패척결의 경계선을 긋자면 실정법 위반 여부다. 위법, 불법의 처벌에는 보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눈앞에 보이는 강도를 놓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두환·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들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법을 어겨 처벌을 받았거나 받는 중이다. 이를 보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재명 측근 수사가 보복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이 공감을 얻으려면 그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못한다면 이중 잣대, 내로남불 그 이상이 아니다.


충견과 사냥개는 전 정권, 전전 정권에서도 역할을 충실히 했다. 벌써 망각한 모양이다. 문재인의 검찰은 적폐청산의 선봉장 아니었던가. 불의의 처단은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 차선의 정의는 될 수 있다. 도둑질하는 주인을 물 수 있는 최고로 정의로운 개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