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등 얼어붙어 자금조달 비상
내년 상반기 금리인상 정점 염두
불확실성 대비 현금성 실탄 비축
"현재 3%대면 조달금리 낮은 편"
코로나19 당시 유행하던 대기업의 '돈 빌려 예금하기'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금리인상이 정점을 이룰 내년 상반기를 염두에 두고 일단 현금성 실탄을 비축해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은행권 기업대출과 기업예금 잔액이 함께 증가하며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은 지난 10월에만 15조원 이상 늘었다.
■코로나19 때 보던 '돈 빌려 예금하기' 재유행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회사채 및 단기자금시장 경색으로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선제적으로 비상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우선적으로 은행권 기업대출이 최근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9조4000억원 증가한 1155조5000억원으로 9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했다.
이 같은 추이는 지난 10월에도 이어졌다. 지난달 기업대출은 5대 시중은행에서만 15조원 이상 늘었다. 대기업 대출은 9조9088억원, 중소기업 대출은 6조6651억원이 늘었다. 대기업 및 중소기업 대출 증가폭은 13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지난 2020년 초와 비슷하다. 이달 9조9088억원이라는 기록을 세우기 전 대기업 대출이 가장 크게 늘어났던 때는 지난 2020년 3월(8조949억원)이었다.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됨에 따라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최근 기업들이 대출을 늘린 이유 역시 당장 투자에 활용하거나 비용을 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비축이다. 기업대출 잔액이 늘어나는 동안 기업예금도 늘어났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올 초 579조2777억원이었던 기업원화예금은 지난 8월 607조6301억원으로 28조3524억원 늘었다.
특히 저축성예금이 1.4배 증가하는 동안 요구불예금은 1.7배로 더 크게 늘었다. 기업들이 수익률을 바라보고 장기적인 투자에 나서기보다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단기예금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전에는 회사채에 비해 비싸서 은행대출은 대기업에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금리를 불문하고 대출을 해달라고 두드리는 상황이다. 현금성 자산 확보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행 문턱 높아지기 전에 빌리자"
최근 기업대출 및 기업예금이 크게 증가한 것은 채권시장이 얼어붙은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기업예금이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은행에서 대기업 대출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지금 채권시장은 '망가졌다'는 표현이 어울린다"면서 "회사채로 자금조달이 안되니 은행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내년에는 은행도 대출 문턱을 높일 위험이 있어 이자를 감수하고도 대출을 받아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기업 신용등급이나 영업기반이 무너지지는 않았으니 이때 최대한 조달해 예금을 해두는 전략이다.
금리가 계속해서 높아지는 상황에 은행도 건전성 관리에 나서면 신용등급이 높거나 담보가 있어야만 대출을 해주려고 할 수도 있어 지금 금리가 가장 싸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은행권 관계자도 "채권시장이 불안정하니 '일단 대출을 받아둬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면서 "당장 쓸 것은 아니니 입출금 통장이나 금리 높은 적금통장에 넣어놓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출금리 6%에 단기 정기예금 금리가 3~4%라고 가정하면 3%대에 현금성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조달금리가 낮은 편"이라고 했다.
seung@fnnews.com 이승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