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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닥쳐온 위험사회, 길 잃은 한국정치

[구본영 칼럼] 닥쳐온 위험사회, 길 잃은 한국정치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20세기에 21세기를 위험사회로 명명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드는 재난이 잦아질 것이라면서.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명언도 남겼다. 선진국의 자동차 매연이 그렇듯 재난 피해가 지역·계층에 관계없이 평등화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지난달 이태원 참사 뒤 그의 통찰력 있는 경고를 떠올렸다. 지난여름 물난리 때 반지하 사는 일가족이 횡액을 겪었다. 이번엔 핼러윈 파티를 즐기던 158명이 압사했지만, 무고한 시민들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는 본질은 마찬가지다. 다만 후자의 경우 '재난의 평준화'라는 벡의 예언이 소름이 돋을 만큼 꼭 들어맞은 격이다. 불특정 시민이 지위 고하나 재산의 다소와 무관하게 희생됐기에….

이태원 참사의 요체는 국가가 세금 내는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좁은 골목에서 가엾은 청춘들이 숨 막혀 죽어가고 있다는 보고가 줄을 잇는 동안 서울경찰청 112상황관리관은 자리를 비웠다. 지척에 있는 사고 현장으로 뒤늦게 뒷짐 진 채 걸어가는 용산서장의 실루엣은 엽기적으로 비칠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회 보고에서 국민의 부아를 돋웠다.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면피성 발언으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무책임하긴 오십보백보였다. 마치 "문재인 정권이었으면 사고가 없었을 것이라 믿는 집단"(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처럼 대여 공세에 열을 올렸지만, 문제의 112상황관리관과 용산서장 모두 문 정권이 임기 말 알박기한 인사였다니….

어찌 보면 우리 공동체 안의 누구도 이번 참사와 관련한 책임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울 순 없을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몸담은 언론도 주요 방송들이 앞다퉈 핼러윈 축제의 열기만 띄웠을 뿐 안전한 행사를 미리 주문하는 곳은 없었다.

얼마 전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지적이 그래서 뼈아프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후 근 30년간 한국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보도였다. 수많은 붕괴 조짐을 백화점 측도, 당국도 외면했던 무신경이 이번에 재현됐다는 뜻이다. 더욱이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해상 조난사고 건수가 매년 늘어났다는 통계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벡은 위험사회가 도래하면 제도권 정치는 쇠퇴한다고 봤다. 출범 6개월 맞은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장외집회에서 벌써 "퇴진이 추모다"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야당도 국정조사 추진 서명운동을 빌미로 장외에 한 발을 걸치면서 그의 탁견에 무릎을 쳐야 할 판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표가 "이름과 영정을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된다"라고 바람을 잡자 친야 인터넷 매체는 유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다.

이런 '재난의 정치화' 게임이 퍽 불길해 보인다.
그러느라 군중관리시스템 등 제도적 안전장치를 갖추지 못하면 비극이 되풀이될 수 있어서다. 최근 한 신부가 윤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서 추락하길 바라는 저주를 사회관계망에 올릴 정도로 우리 사회 내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정치가 극단적 진영 대결만 부추기며 국민통합이란 순기능을 포기하면 그 대가는 결국 국민이 치르게 된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