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30일 발의키로 했다. 뉴시스
169석의 의석수를 앞세워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11월 30일 내년 예산안을 단독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헌정 사상 초유의 '야당 예산'이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민주당이 법정 처리시한인 12월 2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정부 예산안 원안을 부결시킨 뒤 자기네가 만든 수정안을 상정해 의결하면 된다.
이미 예고됐던 일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필요하다면 우리가 가진 권한을 행사해서 증액은 못할지라도 옳지 않은 예산을 삭감한 민주당의 수정안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안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가 자신을 향해 죄어오는 '사법 리스크'로부터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과 예산안을 연계한 무리수를 두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이를 막을 뾰족한 수단이 없는 형편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나 정부의 국정과제 관련 예산도 대폭 삭감했다. 대통령실 이전 등 권력기관 예산 등 감액 규모만 5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감액된 해당 예산안만 단독 통과시키면 된다는 생각이다. 기초연금 1조600억원, 지역화폐 예산 7000억원 등 '이재명표' 예산을 증액하기 위해 이른바 '꼼수' 법안 처리까지 고려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윤석열 정부는 120개 국정과제를 반영한 639조원의 첫 예산안을 마련했지만 여소야대에 막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야당 예산안으로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펴야 할 처지이다. 여기에 금융투자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종부세 등 정부의 세제개편안 마감 기한이 30일로 끝나 사실상 국회법에 규정된 기한 내 심사는 물 건너갔다.
민주당은 법정시한을 넘기더라도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9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면 된다며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은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도 인정되지 않으므로 정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민주당 예산을 가지고 국정을 운영해야 할 형편에 놓였다.
정부 예산편성권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거야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예산안 단독 통과는 야당에도 엄청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민주당의 독주를 지켜보는 민심을 가벼이 여기는 우를 범하지 않길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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