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강남시선] 日 화이트리스트 복원은 기회 아닌 위기

[강남시선] 日 화이트리스트 복원은 기회 아닌 위기
'제2의 진주만 공습'. 최근 일본 경제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떠오른 말이다. 이른바 MZ세대는 모를 가능성이 큰 이 말은 1980년대에 등장했다.

일본 미쓰비시부동산이 1980년대 미국의 자존심으로 여겨지던 록펠러센터를 인수하고 이어 소니가 컬럼비아영화사 등을 사들이자 충격에 빠진 미국에서 이 말이 나온 것이다. 미국인들이 진주만 공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조차 싫어하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 말은 일본의 힘이 강하던 2000년대 초까지 사용되다 경쟁력을 잃으면서 사라졌다. 오래전에 사용되던, 사실상 잊혀진 이 말을 언급한 것은 일본이 다시 무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일본에 집중됐다. 투자의 달인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일본을 깜짝 방문한 것이다. 일본 5대 상사 최고경영자(CEO)를 잇따라 만난 버핏 회장은 이들 기업에 대한 추가 투자의사를 밝혔고, 실제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투자 확대는 버핏 회장만 진행한 것은 아니다. 일본 증권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4월 이후 외국인들은 390억달러(약 50조5000억원)어치의 일본 주식을 쓸어담았다. 일종의 '일본 증시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같은 기간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순매수 규모는 5조5000억원, 10분의 1 수준이다.

반도체 분야에 대한 외국기업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마이크론은 2025년까지 5000억엔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미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인 TSMC는 두 번째 공장 건설계획을 공개했다. 삼성전자도 300억엔을 투자해 연구개발(R&D) 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경기도 회복세다. 하이투자증권이 최근에 내놓은 '일본, 정말 좋은가'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수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일본 경기선행지수는 저점을 탈피하고 반등하고 있다. 올해 일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1.2%)이 우리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으로 표현되며 무시당하던 일본의 힘이 다시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27일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 다시 포함했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지 4년 만이다.

다행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소재 자립, 국산화에 대한 의지가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나 제3의 진주만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의 공습을 이겨내려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화이트리스트 재포함을 기회가 아닌 위기로 인식하고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국제부장 경제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