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본초강목>에 그려진 황기(黃芪, 맨 왼쪽), 방풍(防風, 가운데), 홍화(紅花)의 모습. 이들 재료들과 함께 한약재는 훈증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중국 당나라 때에 허윤종(許胤宗)이라는 의원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 남북조 시대 진(陳)나라에서 벼슬하면서 신채왕(新蔡王)의 외국인 용병으로 참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신채왕의 왕태후인 유태후(柳太后)가 풍병(風病)에 걸렸다. 유태후는 입을 벌리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것은 구금(口噤)으로 아관긴급(牙關緊急)이라고도 한다. 아관긴급은 중풍을 비롯해서 파상풍, 열성경련, 뇌전증(간질) 등에 의해서 나타나기도 하는데, 갑자기 턱관절 주위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고 과도하게 긴장되면서 입을 벌리지 못하고 말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는 증상이다.
병명에 풍(風)자가 붙은 것을 보면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 증상이 아주 빠르게 변하는 것, 건조하고 가려운 것 등이다. 이처럼 인체의 특징적인 증상을 바람[風]의 현상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인식해서 병명을 만들 것이다.
옛날에 풍병(風病)이라고 하는 것들을 보면 팔다리가 마비되는 중풍을 포함해서 갑자기 근육이 뒤틀리면서 강직되는 증상들을 칭했다. 그래서 백강잠균에 감염되어 강직돼서 하얗게 말라 죽은 누에도 풍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 것이다. 유태후 또한 갑작스럽게 입을 벌리지 못해서 말을 못하는 증상 또한 엄밀하게 말하면 중풍은 아니지만 입 주위 근육이 굳어지는 강직(强直)이 나타났기 때문에 풍병으로 본 것이다.
유태후가 입을 벌리지 못하는 증상은 벌써 며칠이 지났다. 당시 명의로 소문난 의원들이 진찰을 하고 치료해 보고자 했다. 의원들은 침을 놓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탕약을 처방했지만 입을 벌릴 수 없어 탕약을 먹일 수가 없었다. 모두들 유태후가 이러다 병 때문이 아니라 굶어 죽을 거라고 수군거렸다.
그때 우연찮게 허윤종이 진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진맥을 해 보니 맥은 침(沈)했다. 허윤종이 생각하기에 침맥은 기운이 허한 맥이기 때문에 유태후는 풍병이면서도 기가 허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황기방풍탕(黃芪防風湯)을 떠 올렸다.
황기방풍탕은 바로 황기(黃芪)와 방풍(防風)으로 구성된 처방이다. 방풍(防風)은 풍(風)을 막아 준다[防]는 약으로 36가지 풍증을 다스리므로 풍증을 치료하는 중요한 약이다. 그래서 풍사(風邪)로 인해서 온몸의 뼈마디가 경직되며 아픈 것을 치료하는데, 특히 상초의 풍사를 없애는 선약(仙藥)이다. 황기는 오장을 보하고 원기를 더해주면서 기혈순환을 촉진하는데, 특히 방풍과 함께 쓰면 약효가 더욱 세진다.
그러나 제아무리 좋은 비방이라도 역시 유태후가 입을 벌릴 수 없으니 먹여서 효과를 볼 리 만무했다. 허윤종은 고민 끝에 새로운 방법을 떠 올렸다. 바로 훈증법이었다.
허윤종은 “허태후께서 약을 복용할 수 없으니 탕약을 끓여서 그 증기의 기운으로 훈증(薰蒸)하여 약이 주리(腠理, 피부)로 들어가게 하면 단 하루만 나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은 비웃었다. “피부에 입이 달린 것도 아니고 약이 피부로 흡수될 리가 없을텐데 가당키나 한 방법입니까?”라면서 수군거렸다.
주위의 수군거림을 아랑곳 하지 않고 허윤종은 곧바로 황기와 방풍 수십 근을 끓여서 뜨거운 김이 날 때 큰 항아리에 넣어 허태후의 침상 아래에 놓아두었다. 그동안 새롭게 끓인 황기방풍탕을 다시 항아리에 넣어 계속해서 김이 올라오도록 했다.
허태후의 침상에서는 하루종일 안개처럼 김이 올라왔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허태후의 입이 살짝 벌어지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게 누구 없느냐? 목이 마르니 물을 좀 다오.”라고 하는 것이다. 주위의 신하들은 깜짝 놀랐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의원들이 허윤종을 찾았다. “아니 탕약을 입으로 복용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런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이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허윤종은 “중풍에 맥이 침하고 입을 벌리지 못할 때는 크게 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때 기본의 방법대로 탕약을 쓰면 늦어서 시기를 놓치므로 황기방풍탕을 훈증하여 입과 코로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사람의 입은 땅과 통하고 코는 하늘과 통합니다. 그래서 입으로 음식을 먹고 코로는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입으로 음(陰)을 기르고 코로 양(陽)을 기르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코는 폐의 관문(關門)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코로 들어간 약기운이 폐로 들어가면 폐기를 펼쳐 풍사를 몰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어서 “그리고 의서에 보면 또한 ‘폐(肺)는 피모(皮毛)를 주관한다’고 했습죠. 사람은 코와 폐로만 숨을 쉬는 것 같지만 사실 피부도 숨을 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서에 폐주피모(肺主皮毛)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탕약의 기운은 주리(腠理, 피부)로도 흡수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훈법(薰法) 혹은 훈증법(薰蒸法)이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자가 있다면 알아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설명했다.
한 의원이 물었다. “약을 처방하는데, 이렇게 중한 병에 어찌 황기와 방풍만을 처방한 것입니까?” 그러자 허윤종은 “만약 약이 병에 정확하게 들어맞으면 한 가지 약재로도 치료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의원들은 병의 근원을 알지 못해 마음대로 추측해서 여러 가지 약을 넣는데, 이것은 마치 한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서 사냥꾼을 많이 풀어 놓고 누구라도 잡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진단이 정확하면 그렇게 많은 약재가 필요치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의원의 허윤종의 의술에 감탄하며 고개를 속였다.
며칠 후 한 의원이 허윤종을 부리나케 찾았다. “허의원님 방법대로 제가 한 환자를 살렸습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설명했다.
한 부인의 출산을 하고 나서 혈훈(血暈)으로 인해서 갑자기 기절을 했는데, 침도 효과가 없었고 탕약도 먹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제 모두들 죽었다고 곡을 하는데, 자신의 보기에 흉격에 미약한 열감이 남아 있어서 허의원이 말한 방법으로 살려보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혈(瘀血)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혈에 특효인 홍화(紅花) 수십 근을 얻으면 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유태후를 살린 허의원의 비법입니다.”
그러자 집안 사람들은 어디에서 급하게 많은 양의 홍화를 구해왔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홍화를 침실 옆의 창틀 아래에서 3개의 큰 솥에 넣고 달여서 큰 항아리에 담아 부인의 침상에 옮겨두고 계속 훈증을 했다. 홍화탕이 식으면 계속해서 다시 뜨거운 것으로 바꿔줬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부인의 손가락을 움직였고 한나절이 지나자 살아났다는 것이다. 의원은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연신 그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요즘에도 약물의 투약 방법으로 구강이 아닌 피부를 통해서 흡수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예를 들면 피부에 붙이는 호르몬제 패치들 또한 피부흡수를 통한 경피 흡수제다. 그리고 항문을 통해 삽입하는 해열제 등의 좌약, 질에 넣는 질정제도 입으로 먹지 않지만 효과적이다. 또한 목욕제로 사용되는 기능성 제품들은 피부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면서도 피부의 모공 등을 통해서 흡수되기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전신작용도 기대할 수 있다.
훈증요법은 최근 산욕기 부인들이 항아리 안에 약쑥을 달인 뜨거운 탕을 넣어 항아리 입구에 앉아 좌욕하듯이 사용되기도 한다. 궁하면 통한다면 말처럼 어떻게든지 환자를 살리고자 하면 묘책(妙策)이 나오기 마련이다.
* 제목의 〇〇은 훈증(薰蒸)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의부전록> 醫術名流列傳. 唐. 許胤宗. 按舊唐書本傳: 許引宗, 常州義興人也. 初事陳, 爲新蔡王外兵參軍. 時柳太后病風不言, 名醫治皆不愈, 脈益沉而噤. 引宗曰: “口不可下藥, 宜以湯氣熏之, 令藥入腠理周, 理即差.” 乃造黃耆防風湯數十斛, 置於牀下, 氣如煙霧, 其夜便得語. (의술명류열전. 당나라. 허윤종. 구당서의 본전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허윤종은 상주 의흥 사람이다. 이전에 진나라에서 벼슬하여 신채왕의 외병참군을 지냈다. 당시 유태후가 풍병을 앓아 말을 못 했는데, 명의들이 치료해도 계속 낫지 않았으며, 맥은 더욱 침하게 되고 입을 벌리지 못했다. 허윤종은 “입으로는 약을 복용시킬 수 없으니, 마땅히 탕약의 증기로 훈증하여 약기운이 주리에 골고루 스며들도록 하면 이치상 곧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황기방풍탕 수십 곡을 조제하여 침상 밑에 두자 연무처럼 김이 서렸으며, 그날 밤에 문득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의보감> 中風脉沈口噤, 非大補不可. 若用有形湯藥, 緩不及事. 熏以黃芪防風湯, 使口鼻俱受之. 此非智者通神之法, 不能迴也. 盖人之口通乎地, 鼻通乎天. 口以養陰, 鼻以養陽. 天主淸, 故鼻不受有形而受無形. 地主濁, 故口受有形而兼乎無形也. (중풍에 맥이 침하고 입을 벌리지 못할 때는 크게 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형의 탕약을 쓰면 늦어서 시기를 놓치므로 황기방풍탕을 훈증하여 입과 코로 들어가게 한다. 이 같을 때는 지혜로운 사람이 만들어낸 신통한 방법이 아니면 회생시킬 수 없다. 사람의 입은 땅과 통하고 코는 하늘과 통한다. 입으로 음을 기르고 코로 양을 기른다. 하늘은 맑은 것을 주관하므로 코는 유형의 것을 받지 못하고 무형의 것을 받는다. 땅은 탁한 것을 주관하므로 입은 유형의 것을 받으면서 무형의 것도 받는다.)
<본초강목> 按養疴慢筆云, 新昌徐氏婦, 病産暈已死, 但胸膈微熱. 有名醫陸氏曰, 血悶也. 得紅花數十斤, 乃可活. 遂亟購得, 以大鍋煮湯, 盛三桶於窗格之下, 舁婦寢其上熏之, 湯冷再加. 有頃指動, 半日乃蘇. 按此亦得唐許胤宗以黃湯熏柳太后風病之法也. (양아만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신창에 사는 서씨의 부인이 출산 후 혈훈으로 이미 죽었지만 흉격에 미약한 열이 있었다. 명의인 육씨가 “혈민입니다. 홍화 수십 근을 얻으면 살릴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빨리 사가지고 와서 큰 솥에 넣고 달여서 창틀 아래에 둔 3개의 통에 담은 다음 들어서 부인의 침상에 두고 훈증하였는데, 탕약이 식으면 다시 더하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손가락을 움직였고, 한나절이 지나자 살아났다고 하였다. 이것으로 인해 또한 당나라 허윤종이 유태후의 풍병에 황기방풍탕을 훈증하는 방법을 얻었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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