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빌딩245(옛 전일빌딩)가 역사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광주 금남로 일대. 내달 8일 이곳에서는 시민들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광주 추억의 충장축제' 거리 퍼레이드가 펼쳐질 예정이다. 광주광역시 제공
지난해 10월 광주 충장로에서 진행된 '제19회 광주 추억의 충장축제' 거리 퍼레이드 모습. 사진=뉴시스
【광주=장인서 기자】 1980년 봄.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가며 대한민국 민주화의 꽃을 피웠던 거리와 광장이 광주에 있다. 공포스러운 총성과 메스꺼운 최루탄 연기로 가득했던 43년 전의 기억은 옛 전남도청과 탄흔 자국이 남은 전일빌딩, 당시를 살아간 이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어제의 일처럼 끊임없이 재생된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상흔 위에도 평화와 화합, 희망과 재생의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의미의 대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올가을 광주에서는 국민 누구나 함께 참여해 ‘대동’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충장축제를 비롯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는 가을 전시와 공연, 무꽃동 미술관 투어 등 문화예술 축제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시민 모두가 율동하는 ‘흥과 치유’의 물결, 충장축제
‘제20회 광주 추억의 충장축제’가 오는 10월 5일부터 9일까지 5일간 금남로와 충장로, 예술의거리, 5·18민주광장 일원에서 열린다. 광주광역시 동구가 주최·주관하는 이번 축제는 ‘충·장·발·광(光)’이라는 테마로 다양한 사람들의 추억을 모으고 또 한바탕 흥의 잔치가 벌어지는 대동 놀이터로 꾸려질 예정이다. 축제 기간 드레스 코드는 교복과 청패션이다. 이제는 중장년이 된 7080세대의 문화적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과 향수’를 콘셉트로 삼았기 때문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문화 프로그램을 총괄한 김태욱 감독이 충장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광주만이 품고 있는 추억을 거리 곳곳에 재현한다.
축제의 무대는 크게 금남로와 충장1~5가 예술의거리 구역으로 나뉜다. 축제의 메인 공간이 될 금남로에서는 개·폐막 기념식을 비롯해 ‘제2회 광주 버스킹월드컵 결선’, DJ들이 총출동하는 추억의 고고 나이트, 충장 퍼레이드, 추억정원에 이어 참여형 프로그램인 'RE:추억대로', 축제의 제의식이자 하이라이트가 될 ‘마스클레타’가 펼쳐질 예정이다. 개막식 당일에는 이승환과 코요테, 인순이, 김정민 등 초청가수들의 공연과 토크, 밤하늘을 수놓을 드론쇼도 펼쳐진다.
추억정원은 시민이 직접 자신의 추억을 재료로 삼는 아카이브 형태의 전시 공간이다. 관람객들은 각자의 추억을 상징한 초를 구매해서 ‘희(喜)·노(怒)·애(愛)·락(樂)’을 테마로 하는 4구역의 모뉴먼트를 완성한다. 금남로 바닥은 거대한 화폭으로 바뀌는데 조선대 미술대학 학생들이 바닥그림 작업을 돕는다. 'RE:추억대로'에서는 세발자전거, 3:3농구, 복싱대회를 비롯해 추억의 롤러장, 체스, 장기·바둑 공간이 마련된다. 아울러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갈 추억유랑단과 몰이꾼이 진행하는 밀가루놀이 퍼포먼스도 선보인다.
과거 호남 최대의 상권이었던 충장로는 광주의 맛과 멋이 어우러져 문화용광로로 평가받던 곳이다. 이번 축제에선 세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추억을 즐길 수 있는 놀이판이 된다. 먼저 추억의 DJ들이 흥겨운 음악으로 판을 벌이면 충장로 전체에 춤판, 놀판, 노래판, 수다판이 차례로 벌어진다.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썰렁했던 상가 공실은 체험형 문화공간으로, 골목 곳곳은 지역주민들이 마련한 먹거리로 풍성한 만찬장으로 변한다. 혼수거리인 충장로4가에서는 ‘결혼식의 추억’을 완성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혼수거리 결혼식도 열린다.
충장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압도적인 폭죽 소리로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게 될 '마스클레타'와 횃불 행렬과 함께 치러지는 불의 의식이다. 스페인 발렌시아의 불축제 마스클레타의 명칭과 모티브를 딴 행사로, 10월 7일과 8일 오후 2시 딱 5분간 진행된다. 총성을 방불케 하는 수천 발의 폭죽이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거리에는 굉음과 함께 희뿌연 폭연이 퍼지게 된다. 폭죽음과 불꽃으로 기억을 떠올리고 불의 의식으로 기억을 정화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횃불 퍼레이드에서는 동구 13개동 주민들이 추억을 주제로 예술가와의 협업해 만든 작품들을 사람의 힘으로 이동시키고 마지막엔 작품을 불태우며 막을 내린다.
다양한 공연과 전시, 영화, 포럼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관람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ACC 제공
투어로 즐기는 문화예술, ACC와 무꽃동 버스
옛 전남도청 부지 일대에 건립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아시아를 아우르는 문화예술 콘텐츠로 광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각광받고 있다. 15만6438㎡(약 4700평)에 지상 2층, 지하 4층 규모로 조성된 복합문화예술기관으로, 문화정보원(박물관)과 문화창조원(전시관), 어린이문화원, 민주평화교류원, 예술극장을 갖추고 있다. 올가을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레퍼토리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연과 영화, 포럼 등 문화행사를 비롯해 순수미술에서 설치미술까지 예술 작품의 과거·현재·미래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3개의 전시가 동시에 열린다.
야외 전시인 ‘하늬풍경’은 한국, 중국, 일본 작가 11명(팀)과 함께 기후위기라는 동시대 현안을 다룬다. 야외 공간은 원경, 중경, 근경이 공존하는 한 폭의 그림이 돼 기후위기 시대의 다층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전시는 오는 11월 19일까지 ACC 야외 일원에서 열린다. 12월 3일까지 복합전시6관에서 열리는 ‘일상첨화’에서는 김환기, 오지호, 천경자, 임직순 작품을 포함해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시리아와 레바논의 근현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또 유망작가 2인의 ACC 공모 전시인 ‘틈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는 올해 말까지 예술극장 로비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들은 어린이를 위한 쉬운 글 해설이나 촉각 홍보물 등을 제공해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 좋다.
'무꽃동 미술관 투어' 코스인 우제길미술관. 이곳에서는 서은선 초대전 '그곳에 두고 온 내 초록 심장'전을 만나볼 수 있다. 학운동주민자치회 제공
광주를 찾은 여행객들에게 관광정보와 볼거리, 즐길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여행자의 집'. 이곳은 여행객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인기가 있다. 동구문화관광재단 제공
이외에 광주에 오면 무꽃동 마을버스를 타고 떠나는 미술관 투어도 즐겨보자. 무꽃동 미술여행은 동구 학운동주민협의체가 주관하는 행사로, 10월 1일부터 투어 버스를 운영한다.
제10회 환경미술제가 열리는 무등현대미술관과 ‘생명의 순환’ 기획전이 열리는 국윤미술관을 비롯해 우제길미술관, 의재미술관, 드영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다. 광주 방문 기간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인 ‘여행자의 집’ 방문도 추천한다. 문화전당역에서 가까운 편의시설로, 지역 관광정보 제공과 관광지원은 물론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가 있어 여행 막간의 휴식을 즐기고 기념촬영을 하기에 좋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