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리처드 美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에게 듣는 'K컬처'
매력적인 나라 한국, 한국인
활발하고 적극적인 학생들 인상적
단체행동때 보여주는 행동력 놀라워
샘 리처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가 지난달 20일 파이낸셜뉴스 주최로 열린 제10회 대한민국 문화콘텐츠포럼에서 'K컬처, 한국경제의 게임체인저'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한국은 정말 매력적인 나라이며 전 세계인이 한류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샘 리처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류의 핵심 원동력인 K컬처의 매력을 분석하면서 한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30여년간 대학에서 인종·성별·문화를 연구한 그는 "한국이 가진 잠재력을 계속 펼치기 위해서는 저출산 현상과 과열된 교육, 빈부격차 등의 사회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 낙관적인 기대를 잃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국인이 가진 '절제 있는' 동양적 행동양식과 K콘텐츠에 담긴 비정치성과 비폭력성이 전 세계인을 매료시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류 전도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 한국에 직접 와본 소감은.
▲내가 존경하는 나라와 문화에 대해 이런 별명을 얻고 또 관련 주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큰 영광이다. 지난 35년간 중남미와 중동 등 세계의 여러 인종과 문화를 공부하면서 각 나라의 렌즈를 끼고 한국의 매력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또 한국에는 네 번 방문했는데 서울 외에 청주와 부산을 가봤다. 기차를 타고 가다 보니 농촌과 고층아파트 지역이 번갈아 나타나는 풍경이 신기했다. 한국에서 프로젝트를 위해 만난 학생들은 굉장히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지 30년이 흘렀다. 요즘에는 어떤 K컬처 장르에 흥미를 가지고 있나.
▲일상이 굉장히 바쁘지만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챙겨 보는 편이다. 드라마 중에는 '사랑의 불시착'과 '일타 스캔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태원 클라쓰' 등을 재밌게 봤다. 특히 '사랑의 불시착'은 한국 문화에 대해 내가 느낀 점들이 아주 독창적으로 잘 담겨 있다. 노골적이지 않은 성 개념이라든가 초월적 상황에서의 폭력신, 남북 관계를 다룬 스토리 설정도 그렇다. 사람들이 보통 자막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K드라마를 볼 때는 자막이 있어도 괜찮다고들 한다. 그만큼 K컬처에 열린 자세를 갖는 외국인이 많다.
―동서양 문화를 비교하는 강의가 유명하다. 한류 주역이 될 한국의 젊은 세대가 가진 강점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모세대와 달리 개인주의가 강하고,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점은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만 극단적으로 개인주의를 드러내는 경우에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추구하는 개인주의 행동에서 역시나 한국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K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 있는 이유는.
▲중동 등 다른 나라의 드라마와 비교해볼 때 K드라마의 강점은 콘텐츠를 정치화하지 않는 것이다. 앞서 말한 성 개념의 표현 수위라든가 너무 과하지 않은 폭력성이 매력이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인이 가진 재밌는 특성도 발견하는데, 이 부분도 대단히 흥미를 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자기의 행동과 처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절제하지만 내면에는 열정이 대단히 많다. 특히 개인의 내성적 성향과 달리 단체행동 시 보여주는 폭발적 행동력은 매우 놀랍다.
―지난해 BTS만큼 유명해질 여성가수의 등장을 예고했다. 올해 K걸그룹의 활약이 대단했는데 눈여겨본 그룹은.
▲지난해 블랙핑크는 이미 너무나 유명했고, 뉴진스가 나오는 걸 보고 '포스트 BTS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건 등장하자마자 전 세계인의 상상력을 확 사로잡을 만한 BTS 수준의 그룹이다. 사실 서양 문화권에서는 걸그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우먼그룹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번에 한국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블랙핑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상도 잘 봤다.
―한국은 이미 저성장 시대에 돌입했고 K콘텐츠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려 노력 중이다. 한국에도 미국의 월트디즈니 같은 글로벌 게임체인저들이 등장할 수 있을까.
▲한국은 문화 면에서 전 세계인이 알아보고 있는 파워하우스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BTS나 블랙핑크, 오징어게임을 알아가고 있지만 그 뒤에 있는 회사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고 디즈니 같은 글로벌 미디어회사도 아직 없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안에는 전 세계인이 인정하는 회사 또는 브랜드가 1~2개 정도는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 세계 한류의 영향력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나.
▲제10회 대한민국 문화콘텐츠포럼 기조연설에서도 한국의 출산율과 다문화로 가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 강조한 이유는 낮은 출산율 자체가 한류의 생존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구조적 위협을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한류도 지속하기 어렵다고 본다.
―자주 언급한 한국인의 공동체 의식과 저출산 현상은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 사회학자로서 한국 정부의 역할을 짚는다면.
▲저출산 현상은 한국의 발전한 교육시스템과도 연관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교육 수준이 너무 높아지면 누구나 항상 정상에만 올라가려고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난 그냥 차라리 안 할래'라는 식으로 포기하거나 성공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스스로 상상한 문화에 가려고 애쓰기보다는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문화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나의 노동력으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고 해서 사회 밖으로 이탈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한국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경제양극화, 즉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갖고 있어도 아파트 한 채를 사기가 어렵고 정상에 오르긴 더 어렵다. 이 두 가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K콘텐츠, 나아가 K컬처를 무기 삼은 한류가 세계로 더 뻗어나가기 위한 조언과 응원을 해준다면.
▲한국은 이미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 매력을 어필하고 있다. 애써 큰 변화를 만들려 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최근 눈에 띈 현상 중 하나는 외국인 멤버가 포함된 K팝 밴드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한국 밖의 사람들 눈에는 그 멤버도 한국인으로 보이는데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미국이나 일본, 브라질 사람이 한국인들과 섞여 있어도 이들이 K콘텐츠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 이로써 전체적으로는 K컬처의 정체성과 매력을 유지하는 것이 전 세계가 한국에 바라는 것이다. 현재 많은 외국인이 한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방식으로 K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페루나 터키, 이라크 등의 시골 마을에서도 K콘텐츠가 소비되는 광경을 본다. K컬처 분야의 전문가들과 참여자들이 지금까지 해오던 걸 계속 열심히 하면서 얻는 새로운 무언가를 앞으로도 보여주길 바란다.
샘 리처드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30년간 인종·성별·문화 강의와 연구로 명성을 얻은 세계적 석학이다. 지난 5월엔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에 초빙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5년 전 "방탄소년단(BTS)을 주목하라. 앞으로 한류를 모르면 21세기 시장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한류의 중요성을 강조한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한류 학자'로 국내에 이름이 알려졌다. 그의 강의(SOC119)는 미국 내에서 매 학기 800여명이 수강할 정도로 인기가 있으며, 세계적 권위를 가진 에미상을 받기도 했다. 파이낸셜뉴스 주최로 지난달 20일 열린 제10회 대한민국 문화콘텐츠포럼에서는 기조연설자로 나서서 한류의 미래를 위한 핵심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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