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은 마약과 같다. 특히 인기가 떨어진 정치인들은 이른바 '퍼주기' 포퓰리즘 정책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지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처지가 딱 그렇다.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마이넘버 카드' 사태와 지속되는 고물가로 국민의 신뢰는 연일 바닥을 치고 있다. 주요 선거에서도 연이어 대패하면서 의석수는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해산 결정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했지만, 약발은 먹히지 않았다.
기시다는 올해 중의원을 해산(총리 권한)시켜 재선거를 통한 임기 연장을 노렸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지지율 반등이 없는 한 재선거는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에는 정권 수명을 측정하는 지표인 '아오키 법칙'이란 게 있다. 오부치 정권에서 내각 관방장관을 지낸 아오키 미키오가 만들었다. 내각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을 합한 수치가 50% 미만일 경우 사실상 정권 유지가 힘들다는 것이다.
최근 주요 언론사 여론조사 중 가장 낮은 마이니치의 경우 기시다 내각과 자민당의 합산 지지율은 48%로 벌써 적색경보가 울렸다.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마이니치를 비롯해 요미우리, 아사히, 교도통신, 지지통신 조사에서도 모두 정권 출범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아오키 법칙으로 현 국면을 보면 기시다는 벼랑끝에서 까치발을 들고 서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다만 아직은 대부분 50%를 소폭 웃돌고 있어 그나마 연명 중이다.
위기의 기시다는 결국 벼랑끝 포퓰리즘 카드를 꺼냈다. 이례적 고물가에 대응해 세수증가분 일부를 국민에게 돌려줄 생각이다. '한시적 소득세 감세'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야당과 현지 언론들은 노골적인 포퓰리즘이라며 거센 비난을 쏟아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12월부터 방위비 확보와 저출산 대책을 위해 법인세, 소득세, 담뱃세를 올리겠다고 공언해 왔다. 총리의 말이 1년도 채 안 돼 번복되면서 정책 일관성을 스스로 저버렸다.
그렇다고 감세가 묘수였냐,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과거 감세를 했어도 선거에서 패배한 전례가 있다. 1998년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이 소득세를 포함한 2조엔대 특별감세를 단행했으나 그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해 퇴진 요구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 초반으로 기시다와 비슷하다. 기시다의 사정과 다른 것이 있다면 한국에는 아오키의 법칙이 없어 수장의 자진사퇴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또 무리한 포퓰리즘을 펼칠 유인이 적다는 의미로도 해석되지만, 우리 역시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라는 큰 이벤트를 앞둔 터라 모를 일이다.
여당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인 '문재인 케어'를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한덕수 총리는 포퓰리즘 정책을 털어내는 정권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언급했다. 기시다 내각과 달리 윤 정부가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국정운영 기조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도 유권자의 관전 포인트다.
km@fnnews.com 김경민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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