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벽에 드리운 춤추는 그림자… 기억되고픈 자들의 몸부림 [세계 최고 조각가와 K-조각]

(17)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흐릿한 사진에 그림자 만들어
사라진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

벽에 드리운 춤추는 그림자… 기억되고픈 자들의 몸부림 [세계 최고 조각가와 K-조각]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그림자연극'(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44~2021)는 빛과 그림자, 흐릿한 사진을 비롯한 유물 같은 사물로 명상과 기억의 무대를 연출한다.

현대에 와서 '기계 복제 시대에 사라진 분위기', 즉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Aura)는 다시 복구된다. 하지만 그것은 무덤이나 종교적 건축의 부속물이었던 성상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복고적 취향이 아니라, 당대 현실을 직시한 결과라는 점이 역설적이다.

대량 살상과 인공적, 자연적 재난의 시대에 죽음은 편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둑한 공간을 비추는 전구를 자주 사용하는데, 특히 사운드와 함께하는 작품들은 빛에 부여된 상징을 암시한다. 생명체가 죽을 때 소리와 빛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이후에도 인류의 대량 살상이 종종 일어나는 것은 무고한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제대로 기억되지 않아서다. 지금은 세상에 없을 듯한 초상 사진을 비추는 전구는 애도와 기억의 시공간을 형성한다.

미국의 작가 겸 문화비평가 수잔 손탁은 사진에 대한 에세이에서 사진이라는 형식 자체에 부재와 죽음에 대한 기표가 내재함을 강조한 바 있다. 사진은 인덱스라는 특징으로, 있음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 간주되지만, 동시에 대상의 부재를 말한다. 볼탕스키의 기념비적인 연출 방식에서 사진은 애도와 기억의 매개가 된다.

이전 시대의 기념비가 주로 정복자를 위한 것이었다면, 볼탕스키의 기념비는 무명의 희생자를 위한 것이다. 재료도 더욱 취약하다. 돌이나 청동이 아니라, 빛바랜 사진이나 넝마, 알전구 등 낡고 파손되기 쉬운 재료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많은 작품이 설치 형식이어서 전시를 위해 다시 제작되는 일도 흔하다. 취약함과 사라짐이라는 운명은 예술도 마찬가지다. 빛을 잘 활용하는 그의 작품은 전구를 전원에 이어주는 전선조차 중요한 조형 요소가 된다.

중력을 받아 아래로 축축 늘어지는 선들은 마치 흘러내리는 물감처럼 비극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빛에는 그림자가 따르며, 볼탕스키는 그림자로 연극적 무대를 연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인 '그림자 연극'(1986년)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형식과 분위기, 그리고 메시지를 대표한다. 전시장 바닥에 세워놓은 틀에 철사와 종이로 만든 가면이나 해골 모양의 기묘한 형태들은 빛에 비춰져 벽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것은 전시 공간 전체를 유령들로 가득한 방으로 연출한다.

선풍기 바람으로 흔들리는 인형과 그림자는 이 그림자 연극의 동감을 부여한다. 인형이나 그림자라는 존재 방식은 그 자체가 죽음을 연상시킨다.

루마니아 출신의 미술사학자 빅토르 스토이치타는 '그림자의 짧은 역사'에서 재현의 기원을 인간 몸에 대한 직접적 관찰의 결과물이 아니라 몸의 그림자를 잡아낸 재현물이며, 재현이 그림자에 근거를 두었던 것은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보조물이라고 말한다.

볼탕스키는 자신의 작품 '그림자들'(1986년)에 대해 "나는 많은 것들을 그림자와 연결시킨다. 무엇보다 그림자는 나에게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사진과의 연관성도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 볼탕스키는 그림자를 최초의 사진으로 본다.
그것은 매혹과 덧없음의 감정을 낳는다. 볼탕스키가 몰두했던 것은 '덧없는 유사물의 춤'(빅토르 스토이치타)이다.

그의 작품은 '저장소'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는 작품도 많은데, 그것은 사멸한 것들의 흔적 아닌가. 흐릿하게 나온 초상사진들이나 누군가 입었던 옷들이 가득한 그의 작품은 그만큼 사라진 사람들을 떠올린다.

이선영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