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50여명, 의원 외교 명목 출장
처리해야 할 법안 산적 아랑곳없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3월 21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제21대 국회의원 해외출장 실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임기 막판에 이른 여야 의원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외유성 해외출장을 경쟁을 하듯이 떠나고 있다. 총선 후 21대 국회가 종료되는 오는 29일까지 전체 의원의 20%에 이르는 50여명이 외국으로 출장을 다녀왔거나 갈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에 드는 혈세만 20억원이다.
의원들의 외국 출장을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 선진국의 앞선 의정을 배우고 와서 우리 국회를 발전시킨다면야 돈을 많이 쓴다고 해도 대수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의원 외교를 빙자한 관광성 외유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미 책정된 예산으로 군대식 '말년 휴가'를 쓰겠다는 데는 국회의장도 예외가 아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미국과 중남미를 방문하는 15일 일정의 출장을 떠났고, 전반기 의장인 박병석 의원도 우즈베키스탄과 일본 방문을 위해 출국했다. 국회 수뇌부가 이러니 평의원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떠나는 것이다.
특히 국회 연금개혁특위 소속 여야 의원 3명과 공동 민간자문위원장 2명이 영국과 스웨덴을 돌아보려고 출국했다. 외국의 연금개혁을 보고 배워 오겠다는 것인데, 그러려면 진작에 갔어야 정상이다. 연금개혁은 이미 민간과 국회를 거쳐 두 가지 안이 마련돼 있고, 그마저도 합의에 이르기 매우 어려운 상태다.
새로운미래 설훈 의원과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9일부터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방문한다고 한다. 2명은 이제 임기를 마칠 낙선자 신분이다. 이들이 외국으로 나가서 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할 일을 열심히 다했다면 공로휴가를 돈을 들여서라도 보내줘야 한다. 그러나 21대 국회는 일도 안 하면서 임기 내내 여야 간에 싸움질을 한 역대 최악의 국회 아니던가. 야당은 의석수를 앞세워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입법을 밀어붙이는 입법독재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자초했고, 여당은 그런 야당 앞에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무기력으로 일관했다.
그런 3류 국회와 의원들도 외유에서만큼은 손발이 척척 맞아 팔짱을 끼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국으로 나간다. 피 터지게 싸우다가도 같이 노는 것에 뜻이 잘 맞는 것은 의원 세비 인상과 같은 특권 앞에서 한마음이 되는 것과 똑같다.
의원들이 겉으로는 민생을 외치고, 속으로는 국민을 무시하는 것은 마지막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금 국회에는 민생법안이나 통과에 시급성을 요하는 법안이 산적해 있다. 고준위방폐물 처리법안이 한 예다.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모두 폐기된다.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의원이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한 건이라도 더 처리하겠다는 요량으로 의사당을 굳게 지켜야 한다.
합의가 어려운 사안일수록 하루라도 더 의견을 접근시키기 위해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는다. 사실상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특권은 끝까지 놓지 않고 누리고 말겠다는 본색을 의원들은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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