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글로벌 증시 폭락 원인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 주목
고금리로 침체 불안 최고치였던 美 증시, 엔 가치 상승으로 직격타
저렴한 엔으로 해외 투자하던 투자자들, 日 금리 상승에 무더기 '마진콜'
日 내부에서는 당국이 정치적으로 급하게 금리 올렸다고 비난
금리 인하 압박 거세진 美 연준 "문제 생기면 하겠다" 침체 위기 일축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지난달 3일 일본 도쿄의 BOJ 청사에서 새로 발행한 1만엔권 지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지난 5일(현지시간) 전 세계 증시에 '검은 월요일'을 안겼던 폭락 사태의 핵심 원인이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일본을 향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폭락을 거들었다는 지적에 대해 침체 위기가 아니라며 긴급 진화에 나섰다.
저렴한 엔으로 투자하다 日 금리 인상 '날벼락'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 전후로 발생한 국제적인 증시 폭락의 원인이 복합적이라고 지적했다. 매체는 일단 코로나19 이후 성장세를 이어가던 미국 경제가 부진한 지표를 내놓으며 시장 불안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1일 발표된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8개월 만에 가장 낮았으며 2일 공개된 같은달 실업률은 4개월 연속으로 올랐다. 아울러 미국 매체들은 3일 보도에서 지난해부터 미국 증시를 이끌었던 대형 기술주 7개(매그니피센트7) 가운데, 2·4분기 실적이 나오지 않은 엔비디아를 제외한 6개 기업의 연간 순이익 성장률이 29.9%로 전 분기(50.7%)에 크게 못 미친다고 분석했다. 같은날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 이끄는 미국 투자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2·4분기 실적 발표에서 애플 주식의 약 절반을 팔았다고 밝혔다. 이처럼 불안으로 가득 찬 시장에 불씨를 당긴 것은 일본 엔으로 구성된 선물 상품의 무더기 '마진콜'이었다.
일본 엔의 가치는 코로나19 이후 미국 등 서방 은행들의 금리 인상에도 초저금리를 유지하던 BOJ의 정책에 힘입어 지난달 초 기준 약 37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다. 이에 다국적 투자자들은 금리가 저렴한 일본에서 엔으로 자금을 조달해 금리가 높은 미국 등에 투자하는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 수법을 이용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일본 시중은행들이 해외 차입자에게 빌려준 엔은 약 1조달러(약 1373조원)로 2021년 대비 21% 늘었다.
그러나 BOJ는 지난 4월과 7월 31일에 연속으로 금리를 올려 15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0.25%)까지 인상했다. 엔 가치는 7월 인상 이후 약 1주일 동안 7.5% 가까이 급등했다. 선물 계약으로 엔을 조달했던 투자자들은 엔 가치 상승으로 중개사에서 추가 증거금 요구(마진콜)를 받았고 시장에서 엔을 사들여 이를 막았다. 그 결과 엔 가치는 더 올라갔다. 결국 지난주 쏟아지는 마진콜을 막지 못해 전 세계적으로 다량의 선물 계약이 강제 청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자료에 따르면 이달 초 헤지펀드 및 기타 투자자들이 엔 가치 하락에 베팅한 선물 계약 규모는 60억달러(약 8조2410억원) 수준으로 7월 초(140억달러)에 비해 크게 줄었다.
극도의 불안에 휩싸였던 미국 증시는 1~2일 미국 경기 침체 우려에 각각 1~2%씩 내려갔으며 5일 개장한 일본 증시는 미국 증시 하락과 엔 선물 여파로 12.4%가 떨어지는 역대 최대 폭락을 맞았다. 이후 개장한 미국 증시는 또 다시 2~3% 추락하며 악순환을 이어갔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금리 동결 발표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금리 올린 日, 금리 안 내린 美...누구 책임?
일본의 전문가들은 갑자기 금리를 올린 BOJ를 향해 불만을 쏟아냈다. 일본 라쿠텐증권 경제연구소의 아타고 노부야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5일 미국 매체들을 통해 "BOJ는 경제 지표와 시장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했다는 것은 통계자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난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지난주 금리 인상과 관련해 물가상승률 및 경제 자료가 예상과 맞았다며 자료를 기반으로 금리를 올렸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추세가 유지된다면 금리가 더 오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본 다이와증권의 이와시타 마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금리 인상이었다"면서 "이제 BOJ는 다음 조치를 취하기 전에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에 진입할지, 연착륙할지 지켜봐야 한다. 적어도 9월이나 10월의 금리 인상 논의는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라쿠텐의 아타고는 "정치적 요인이 배경에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엔 가치 하락에 대처하기 위해 정치권과 BOJ가 소통한 결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국이 물가 억제와 환율 방어를 위해 금리를 올렸지만, 일본의 소비와 생산 지표가 금리 인상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집권 자민당의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은 지난달 22일 강연에서 "단계적인 금리 인상 검토를 포함해 금융정책을 정상화할 방침을 더욱 명확히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노 다로 디지털상도 외신 인터뷰에서 "엔이 너무 저렴하다"며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했다.
한편 지난해 9월부터 8회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23년 만에 최고 수준의 금리(5.25~5.5%)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연준은 지난 1~2일 불안한 경제 지표 공개 이후 금리를 빨리 내리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연준 산하 시카고 연방은행의 오스턴 굴즈비 총재는 5일 미국 경제매체 CNBC와 인터뷰에서 "고용지표가 기대보다 약하게 나왔지만 아직 경기침체 상황 같지는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연준의 임무는 매우 명료하다. 고용을 최대로 늘리고, 물가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게 연준이 하는 일이며 만약 상황이 나빠진다면 우리가 고칠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 산하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 메리 데일리 역시 같은날 미국 하와이 연설에서 문제가 생기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우리는 행동하기 전에 완전한 정보를 검토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5일 발표된 미국의 7월 서비스 PMI 지수는 전월보다 2.6p 오른 51.4를 기록해 제조업 PMI와 달리 확장 국면으로 전환했다. PMI가 50 초과인 경우 설문조사에서 앞으로 경기 전망이 좋다고 보는 업계 관계자가 절반 이상이라는 의미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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