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이탈리아 만큼 세파주(Cepage)가 다양한 곳이 또 있을까. 토착 품종에 대한 애착이 특히 강한 이탈리아는 너무도 개성있는 와인이 많이 난다. 그 중에서도 피에몬테 주 바롤로 지역의 토착 화이트 품종 아르네이스는 매혹적인 열대과일의 진한 향과 좋은 산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샤르도네(Chadonnay) 등 국제품종에 밀려 1970년대 이후 역사속으로 아예 사라질 뻔 했던 이 품종을 한 선구자가 이를 되살려냈다.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Cordero di montezemolo) 가문이다. 바롤로 지역에서 1340년부터 무려 660년이 넘게 와인을 만들어 온 유명 와이너리로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는 이른바 ‘바롤로 보이즈’로 통하는 모더니스트 바롤로의 대표 주자다.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에서는 지난 2016년 최고급 바롤로(Barolo)만 집중적으로 훔치는 바롤로 도난 사건이 기승을 부렸는데 당시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따. 그만큼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는 도둑, 수집가, 레스토랑, 최고급 호텔에서 서로 가져가기 위해 탐내는 와인이다.
최근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의 오너가 서울을 찾아 그들의 대표 와인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는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는 짧은 침용과 작은 프렌치 오크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와인을 만들고 있으며, 장기 숙성도 가능하며 지금 바로 마셔도 훌륭한 와인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먼저 ‘랑게 아르네이스 2021(Langhe Arneis 2021)을 열었다. 아르네이스 100%로 만드는 와인으로 잔에 따라진 모습은 맑고 빛나는 볏집색이다. 잔에서 올라오는 아로마는 의외로 열대과일 향이 강하다. 약간의 너티한 향과 꽃향도 함께 들어있다. 13%의 알코올 도수에서 알 수 있듯 약간 더운 기후가 느껴진다. 그러나 입에 넣어보면 짜릿하고 고급스런 산도와 바스락거리는 드라이한 질감은 역시 알프스 산맥의 기운을 받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입안에서 사라지면서 남는 것은 약간의 짠맛과 강력한 산도다. 아르네이스는 몇 번을 접해봤지만 늘 한결같이 두 가지 모습을 흔들림없이 드러내는게 아주 인상적이다.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가 또 자신있게 추천하는 품종은 바롤로다. 바롤로 라인 중에서도 코르데로 몬팔레토 바롤로 2019(Cordero Monfaletto 2019)를 열었다. 맑은 체리빛에 검은 빛이 더해진 와인은 잔에서 정말 반짝거리며 빛난다. 잔에서는 훈연향이 먼저 느껴지며 그 속에서 트러플, 이끼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입에 넣어보면 제일 먼저 강력한 산도가 반긴다. 이어 혀 위에 타닌이 촤악 흩뿌려진다. 완벽한 구조감이다.
와인이 입속에서 사라질 때쯤 피어나는 말린 장미향과 약간의 과실 단향도 굉장히 좋다. 마지막은 두껍지만 잘게 쪼개진 타닌과 그을린 태양이 느껴지는 훈연향이 남는다. 피니시가 상당히 길게 느껴지는 것도 정말 매력적이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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