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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츠업실리콘밸리] 美 정부와 반도체 챔피언

[왓츠업실리콘밸리] 美 정부와 반도체 챔피언
홍창기 실리콘밸리특파원
미국 조 바이든 정부의 상무부 수장 지나 러몬도 장관은 지난 2월 "실리콘(반도체)을 다시 실리콘밸리로 가져오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반도체 챔피언 인텔이 실리콘밸리에서 개최한 행사에서였다. 러몬도 장관은 대만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빼앗긴 반도체 생산기지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러몬도 장관은 한때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40%를 담당했던 미국의 위상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현장에서 바라본 이 미국 고위관리의 워딩은 강하게 느껴졌다. 비록 동부 워싱턴DC에서 화상으로 전해졌지만 말이다. 러몬도 장관은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반도체 분야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우려했다. 미국 반도체가 세계를 선도해야 하며, 미국이 다시 반도체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는 인텔을 "우리의 챔피언"이라고 호칭하며 인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겔싱어 CEO는 "아시아,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는 반도체 생산을 미국으로 가져오겠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20% 미만인 미국 내의 반도체 생산량을 50%까지 늘리겠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인텔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텔 고객이 아침 뉴스를 확인하지 않게 하는 것, 지정학적 요소에 영향 받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겔싱어 CEO는 2030년까지 TSMC에 이어 전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점유율 2위를 차지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장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던 것은 당연했다. 그 현장이 미국이었고 전 세계가 우러러보는 혁신의 땅 실리콘밸리였기 때문이다.

야심찬 계획을 내놨던 인텔이 큰 위기에 처했다. 특히 인텔의 성장동력의 핵심 키 파운드리 사업부문이 인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올해 4~6월 3개월 동안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부문에서 28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해 동안의 파운드리 사업부문 적자는 70억달러였다. 불과 1분기 만에 적자 규모가 지난해의 40%까지 치솟았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인텔의 파운드리에 위탁생산을 맡길 기업은 없어 보인다. TSMC와 삼성전자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보유했다고 주장한 인텔은 최근 반도체 설계 기업 브로드컴의 퀄(품질)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부문을 분리하거나 매각하는 자구책을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다. 파운드리 사업부문 이외의 분야에서도 인텔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공지능(AI)칩 분야에서 엔비디아는 너무 빨리 멀리 달아났다. 인텔이 시장을 지배했던 PC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서도 경쟁사와 큰 격차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인텔의 몰락을 지켜만 볼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바이든의 미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단순한 산업이 아닌 국가안보와 일자리 창출의 핵심 산업으로 보고 있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총 527억달러를 반도체 제조 및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반도체과학법(칩스앤드사이언스액트·칩스법)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인텔은 단순한 미국 반도체 기업이 아니다. 반도체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미국 국가안보를 지켜주는 미국의 기업이다. 당장 미국 국방부가 인텔 구하기에 나선 모양새다. 인텔은 미 국방부에 공급할 군사용 반도체 제조를 위해 30억달러를 수주했다. 이 30억달러는 인텔이 지난 3월 반도체법에 따라 지원받기로 한 85억달러와는 별개의 건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가 단순히 바이든 정부의 정책이기 때문에 반도체 정책을 뒤집지 않을 것이다.
반도체 산업이 미국 제조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어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국 반도체 챔피언 인텔이 있다. 인텔은 결국 살아날 것이다.

theveryfirst@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