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포스코퓨처엠, 강원랜드
LG엔솔, 아시아나항공 등 5개사
모두 자체작성 유지 혹은 전환 기업들
공시 담당자들 어려움 극복기 및 조언
국제표준 전산언어(XBRL) CI / 사진=한국XBRL본부 제공
[파이낸셜뉴스] 시험 점수를 올리기 위해 대개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지만, 때론 공부 잘 하는 동급생에게 배우는 게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그 친구는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앞서 극복한 만큼 엇비슷한 눈높이에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국제표준 전산언어(XBRL)’ 공시 작성도 마찬가지다. 교육과 채점은 금융감독원 몫이지만 같은 시험을 보는 기업들 사례를 참고하는 게 체계를 빠르게 잡아갈 수 있는 길일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3일 올해 2·4분기 보고서를 자체 작성한 5개 기업 공시 담당자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회계법인 등의 외부 컨설팅 없이 홀로 XBRL 작성법을 배우고 익혀 100점을 받은 곳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고비만 넘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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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할 줄 알아야 한다”
현대백화점 경영지원본부 회계팀은 백승호 책임을 중심으로 2023년 사업보고서, 2024년 1·4분기와 2·4분기 보고서까지 3개 분기 연속 자체작성으로 XBRL 재무공시를 완료했다. 백 책임이 처음부터 자체작성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은 ‘최종 점검자는 기업’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백 책임은 “결국 해당 수치가 맞는지는 생산자인 기업이 확인해야 하고, 추가 변경이 있을 때마다 회계법인에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담당자가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도 첫 시작 땐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행과 열에 어떤 항목이 와야 하는지부터 감이 안 잡혔다. 실컷 표를 작성해놓고 삭제했다 다시 만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방향성이 맞는지도 확신하기 힘들었다. 신규생성을 해야 하는 표도 상당해 시간도 꽤 걸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XBRL 실무교육을 더 찾아듣고, 금융감독원에 자주 문의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행·열에 들어가야 할 항목이 눈에 띄고 택사노미상 어디에 부합하는지도 알게 됐다.
백 책임은 어느 시스템이든 시행착오는 있기 마련이라며 “DART가 처음 도입됐을 때도 이런 과정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누구나 다룰 수 있는 플랫폼”이라며 “향후 택사노미가 더 많아진다면 XBRL 취지인 비교 분석 효과도 더 커질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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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딪혀야 는다”
포스코퓨처엠 재무회계그룹 정우재 과장, 김승현 사원 역시 3개 분기 연속 자체작성을 마쳤다. 금감원에서 이틀(14시간)에 걸쳐 마련한 주석 작성 실습 및 현장 코칭만 듣고 이뤄낸 결과다. 비슷한 강의를 여러 차례 듣기보다 직접 해보면서 깨닫는 게 많았다.
담당 본부장은 시도도 하지 않고 외부에 의지하지 말자며 전폭 지원했다. 물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다. 둘은 지난해 9월부터 시중에서 XBRL 서적까지 구매해 기본적인 개념부터 알아갔다. 이후 실무 차원에서 기업 재무제표에 보다 부합하는 택사노미 표준 계정, XBRL이 지향하는 표의 구조 등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2개월 만에 초기 양식을 완성했다.
하지만 공시 1주일 전 최종 재무제표 기반으로 XBRL 작성을 했으나 예외 사항, 표준계정 ID 간 충돌 등으로 인해 수십 번 검증과 수정을 해야 했다. 정 과장은 “숫자가 틀리면 그 후폭풍을 알기 때문에 더 오기를 가지고 작업했다”며 “오류를 해결하는 데 앞서 익혔던 XBRL 기본 개념이나 사상 도움이 컸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 과장은 “현재 주석 번호 입력 시 각 주석마다 제목에 번호를 입력하고 있는데, 순서대로 자동으로 번호가 매겨지면 편리할 것”이라며 “연결, 별도 간 주석 복사기능에 주석 내 각각의 ‘상자’만 선택해 복사할 수 있는 방법이 추가되면 좋을 듯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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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내 역할 명확히 해야”
강원랜드를 XBRL 공시 3개 분기 연속 자체작성으로 이끈 주역은 회계팀 백승용 차장, 장경택 과장, 채지연 과장이다. 본사가 강원도 정선군에 있음에도 2023년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총 4차례 교육에 참석했다. 처음부터 회계법인 손을 빌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역시 복잡한 택사노미와 구조를 파악하는 일부터 순탄치 않았다. 채 과장은 “기존 회계업무와 달리 데이터 표준화와 구조화가 요구됐다”며 “자체 작성한 파일이 금감원 요구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게 특히 고충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감원 담당자와 직접 소통하며 구조화뿐 아니라 개념을 익히게 됐고 문제는 하나씩 풀렸다. 특히 강원랜드 감사인의 도움이 컸다. 채 과장은 “감사보고서 구조를 XBRL 표준 형태에 맞추기 위해 수정을 제안했을 때 적극 검토하고 작성 시간을 고려해 감사보고서 발행일을 앞당겨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업무분장을 강조했다. XBRL은 한번 작성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고, 이후 지속적인 고도화와 작성기 업데이트를 반영한 수정 작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채 과장은 작성기에서 개선이 필요한 사항으로 △연결과 별도 작업 파일 분리(현재는 동시작업 불가) △프로그램 저장 속도 등 개선 △주석에서 세부 오류 메시지 팝업 기능 추가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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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자체작성 가능”
아시아나항공은 처음 2023년 사업보고서 때만 회계법인을 쓰다가 올해 들어 자체작성으로 변경했다. 업종 특성상 회계 계정과 주석 표준 택사노미 선정에 어려움이 있어 초기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문 용역을 체결했으나, 언젠가는 자체작성 능력을 갖춰야한단 생각에 다음 분기부터 방향을 틀었다.
그 길이 녹록진 않았다. 특히 자산유동화채무, 우발부채, 약정사항 주석에 대한 택사노미 선정과 구조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회계팀 이세영·이예경·권수정 대리는 총 30시간에 해당하는 4개 교육을 수강하고 직접 금감원 담당자로부터 자문을 받아 수차례 교정 작업을 했다.
이세영 대리는 “자문 용역엔 비용이 따르고 매번 공시 때마다 의지할 수는 없다”며 “금감원 교육, 자문 등을 적극 활용하면 모든 상장회사가 무리 없이 XBRL 공시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작업 파일을 클라우드나 공용드라이버가 아닌 개인 컴퓨터 로컬드라이브에서만 실행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며 “작성기 업데이트 시 DART 게시판에 그 내용이 고지되긴 하지만 자체 팝업으로 안내되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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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부서와 협업”
LG에너지솔루션은 XBRL 주석 재무공시에 있어 올해 2·4분기 보고서부터 자체작성을 했으나 감사보고서를 XBRL 형태로 변환하고 그 내용을 검증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앞서 2개 분기는 회계법인 자문을 받았으나 김용찬 책임을 비롯한 강경민·남태원·최성원 사원 등 연결회계팀 직원들은 실무교육과 앞선 공시 경험을 거치며 작성 요령을 터득했다.
김 책임은 “감사보고서 내용을 XBRL로 옮기고 그 내용을 검증하는 과정이 가장 길고 어려웠다”며 “금감원 교육뿐 아니라 사내 정보기술(IT)부서와의 협업을 통해 구축한 자동 검증 체계로 소요 시간을 대폭 줄였다”고 짚었다.
김갑제 금감원 기업공시국 수석조사역은 “해외 감독당국도 기업 재무공시 작성 비용 부담 등을 인지하고 있어 다양한 방안을 찾고 있다”며 “금감원 역시 상장사 의견을 지속 수렴해 XBRL 작성기를 더욱 사용자 친화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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