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초롱 국제부
이스라엘의 '신의 분노' 작전을 다룬 영화 '뮌헨'에서는 당시 이스라엘 총리인 골다 메이어가 주인공인 요원 아브너 카우프만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아브너에게 제시한 이 작전의 명분은 복수. 1972년 뮌헨 올림픽 인질극으로 이스라엘 선수, 코치 등 11명을 잃은 이스라엘이 당하고만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분간 평화는 잊고 우리가 강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골다 메이어의 이 말로 시작된 작전은 7년여에 걸쳐 전개되면서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검은 9월단' 관련자 20여명을 암살하며 끝나게 된다.
이 작전 이후 50여년간 수많은 암살 작전을 수행하는 등 이스라엘의 복수에 대한 집요함은 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났다. 그동안 팔레스타인, 이란,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예멘, 이라크 등과 끊임없는 분쟁을 겪으며 영토를 지켜온 이스라엘은 "우리를 건드리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란 경고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전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최근 중동 지역에서의 전쟁도 결을 같이한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발발한 이·팔 전쟁은 1년이 지난 지금 '5차 중동전쟁'으로 확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전쟁 1년간 하마스 대원 4만명 중 절반 이상이 사망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그러나 전쟁의 대가는 민간인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됐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전쟁 기간 사망한 팔레스타인 주민이 4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지난달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타깃으로 한 공격 이후 레바논에선 3주 동안 어린이 127명을 포함, 1400명 이상의 주민이 숨졌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이란의 대규모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한 보복을 천명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추가 인명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노르웨이 민간 싱크탱크인 오슬로국제평화연구소(PRIO)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분쟁지역에서 12만2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무려 34개국에서 59건의 분쟁이 발생했는데, 이는 1946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올해 3년차에 접어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선 지난해 우크라이나에서만 7만1000명가량이 숨졌다.
우리는 바야흐로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연 '강함'과 '복수'를 내세운 전쟁의 끝에는 평화가 올까. '뮌헨'에서 암살 작전을 수행한 아브너의 "당신이 뭘 믿든 그 끝에는 평화가 없어요"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longss@fnnews.com 성초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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