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장 매년 9%씩 자라는데
우리는 기존 법조계와 갈등 여전
추진 법안에는 정부 허가제 담겨
초기 단계엔 실효성 적다는 지적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이른바 리걸테크(법률+기술) 글로벌 시장의 성장세가 거세다. 10년 이후엔 90조원 규모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러나 국내 시장은 규제와 장벽의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기존 법률시장과 수년째 갈등을 겪고 있어도 여전히 명확한 기준은 없고, 그나마 정치권에서 마련된 법안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아직 태동기인 우리 리걸테크 산업이 시작부터 잠식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34년까지 연평균 9.1% 성장
7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리걸테크 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9%가량 성장한 273억2000만달러(약 36조600억원)로 추산된다.
프레시던스 리서치는 오는 2034년에는 시장 규모가 655억1000만달러(약 88조2551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2024~2034년 10년간 연평균 9.1%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본 것이다.
AI는 이미 글로벌 법률 업계에서 주요 문서를 자동화하고 특정 계약 조항을 추출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생성형 AI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법률챗봇과 대화하며 주요 회사의 법률 조건과 특정 조항에 대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변호사가 직접 작성한 계약서에 대한 보완요청, 판례 검색, 법률연구도 생성형 AI의 능력이다.
프레시던스 리서치는 "AI모델은 새로운 법적 사례, 규정 및 개발에서 지속적으로 학습하기 때문에 법적 추세를 최신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글로벌 리걸테크 업체는 일찌감치 각국의 AI기업을 인수하거나 AI기술에 투자하는 전략으로 세력을 키운다. 현지 인력을 채용하는 방법으로 조용히 힘을 축적하는 것도 전략이다.
■'리걸테크법' 추진되고 있지만…
반면 우리 리걸테크 산업 발전은 더디다. 오히려 여러 곳에 발목이 묶여 있다. 우선 현재 국회에서 추진 중인 '리걸테크 산업진흥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안'은 실효성이 의문이다.
리걸테크 업체가 법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독소조항 때문이다. 일정 금액의 자본금 보유, 변호사 등 전문인력 및 시설·장비 보유 등의 요건을 갖추도록 했는데 현실적으로 이를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업계는 토로한다. 허가제는 성숙된 산업에서나 가능한 제도로, 스타트업 위주의 걸음마 단계인 우리 현실엔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취지다.
리걸테크 업계 관계자는 "(허가제는) 국내 리걸테크 산업에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요건을 갖춰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혁신적 서비스를 내놓더라도 불명확한 잣대로 사업이 제한될 수 있어 드라이브를 걸 수 없는 상태"라고 꼬집었다.
기존 시장과 갈등도 문제다. 대표적 리걸테크 업체인 로앤컴퍼니는 2014년 온라인 법률상담 서비스 '로톡'을 출시했으나 대한변호사협회 등과 10여년간 마찰을 빚은 바 있다. 법무부가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겠다며 지난해 변호사제도개선특별위원회(특위)를 발족했지만 뚜렷한 움직임은 없다.
리걸테크 스타트업 로앤굿은 국내 최초로 선보인 AI 법률상담 챗봇 서비스의 사업전략을 선회한 경우다.
당초 AI챗봇은 일반인을 상대로 선보인 서비스였다. 그러나 최근 지방자치단체 등 기관으로 대상을 바꿨다. 민명기 로앤굿 대표는 "사업전략을 변화한 것은 수익성 확보가 주된 이유"라면서도 "혹시나 모를 변협과의 갈등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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