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
의대 증원을 둘러싼 '말'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주장이 주장을 낳고, 비난이 비난을 불러온다. 보통의 정책은 이 정도 되면 타협안을 찾아 해결하고, 다음 이슈로 넘어가는데 이번엔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그만큼 당사자에게 절박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의사 본인들의 주장을 사회에 강요할 강력한 '수술도(手術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집단도 이렇게 반대 의견을 가진 다수의 불편을 초래하면서 자기주장을 계속하기는 힘든데, 의사들이 세긴 센가 보다.
정책당국은 의사부족을 보여주는 통계와 사회현상을 파악하고,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절차에 따라 의대 증원정책을 결정하고 발표한 뒤 집행한다. 의사들은 개별 의사로부터 의사협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체가 각자의 입장에서 의견을 내고 행동한다. 정권마다 의대정원에 대한 입장이 달랐다. 의대 신설을 계속했던 김영삼 정부 이후 의대 증원을 정책 레벨에 올려서 추진한 것은 문재인 정부에 와서다. 이명박 정부 때는 정부 내부의 태스크포스(TF) 운영에 그치고 포기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증원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보수, 진보의 구분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임이 확인된다. 의사들은 일관되게 의대 증원에 반대한다. 예비의사인 의대생, 초년 의사인 전공의, 개원의, 병원근무의, 병원장, 의과대학교수 등 구분이 없다. 병원장과 병원 경영진은 의사 증원의 필요성을 얘기하지만 개별 의사 입장에선 의사 수 증가에 따른 '의사집단의 희소가치 하락'을 내심 꺼린다. 의사를 주변에 둔 사람들은 의사들의 증원 반대론에 동조하는 경향이 크다.
일부는 미래의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 이렇게 소란을 피울 필요가 있냐고 핀잔을 한다. '지금'의 의대 증원은 '미래'의 의사 수 증가로 나타나는 것일진대 당장의 효과 여부로 판단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2010년대 초에 500~600명 증원 필요성이 학계에서 제기됐고, 이를 받아 의대 증원정책을 논의할 TF까지 정부 내에 만들어졌지만 결국 의사들의 로비로 없던 일이 된 일이 있다. 그 결과가 오늘의 의정사태임을 환기한다.
일부는 필수의료 해결하자고 한 정책이 필수의료 의사들의 이탈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아냥댄다. 하지만 필수의료 의사들의 '지금'의 이탈을 '미래'에 결과가 나올 대책에 대한 반대의 근거로 삼기는 힘들다. 이탈은 미래의 결과를 바꾸고 싶은 의사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그런 비아냥을 한다면, 이는 현장이탈 의사들이 원하는 바일 것이다. 의사들이 정책 반대의 표시로 만들어내는 문제상황을 증원정책 철회 주장의 논거로 삼는 정치인이 누군지 국민은 잘 봐두어야 한다.
2000명 증원의 과격성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대학 총장들이 요청한 대로 증원 규모를 1509명으로 줄였다. 의사들은 이것이 2000명 증원의 '근거 없음의 증거'라고 했다. 현장이탈 전공의에 대한 고발이나 면허정지 등의 행정처분에 대한 비난이 있자 정부는 이를 철회했다. 의사들은 이를 그동안의 정부 대응이 과잉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정부는 의사들의 요구대로 의사인력추계기구에 의사들을 과반수 참여시키겠다고 했다. 의사들은 다시 그런 기구 없이 결정한 2025년 증원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못 받겠다고 했다. 정책당국은 '의대 증원은 필요조건일 뿐'임을 강조하는데, 한쪽은 '정부가 의대 증원만으로 필수의료를 해결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의대 증원만으로 필수의료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같은 주장인데, 그저 의대 증원 철회 외에는 말도 섞기 싫다는 것이다.
정책당국은 의대 증원을 하겠다는 것이고, 의사들은 의사 수를 못 늘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책당국은 책무를 이행하겠다는 것이고, 의사들은 기득권을 놓기 싫다는 것이다. 핵심은 단순하다. 과정, 절차, 시기 모두 중요하지만 이 국면에서는 부수적이다.
의대 증원만이 관심이다. 타협은 어려워 보인다. 길게 보고 가야 할 것 같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