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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휴가는 연차로 쓰고… 보직 뺑뺑이에 전문성은 '뚝'

fn, 은행원 100명에게 묻다 (중)
내부통제시스템에 구멍 숭숭
"명령휴가 날짜, 당사자가 지정"
응답자 20% 실효성 의문 제기
순환근무제 관련 불신도 상당
금융사고 예방 위해 필수 맞지만
행원 전문성 약화 땐 되레 위험

명령휴가는 연차로 쓰고… 보직 뺑뺑이에 전문성은 '뚝'
은행들이 수백억원대 횡령과 부당대출 등 대규모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지난해부터 명령휴가를 확대했다. 하지만 개인 연차로 사용되는 등 기본적인 내부통제 시스템에 구멍이 난 채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순환근무제도도 업무 미숙이나 특정 부서의 전문성 약화로 오히려 금융사고 위험성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명령휴가 감사 시스템과 순환근무 유연성 강화 등을 주문했다.

■'명령 아닌' 명령휴가제…연차에 끼워 쓰는 경우 多

23일 파이낸셜뉴스가 현직 은행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은행원들(22명)은 명령휴가제가 내부통제 시스템으로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은행원 5명 중 1명이 명령휴가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한 셈이다.

명령휴가제는 불시에 특정 직원에게 휴가를 명령하고, 해당 직원의 취급 서류를 재점검해 부실·비리 여부를 면밀히 살펴보는 제도다. 은행권의 대표적인 내부통제 방안으로 은행들은 투자나 여신 심사 등 금융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업무나 동일 부서 장기 근무자를 중심으로 명령휴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22년 우리은행 700억 횡령 사건 등 금융사고가 잇따르자 당국은 명령 휴가제를 대폭 강화했다. 이에 시중은행들도 이에 발맞춰 휴가 대상자 범위를 넓히는 등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올해에도 신한은행은 기업금융(IB) 및 외환파생 근무자를 대상으로 명령휴가를 강화했고, KB국민은행은 지난 9월부터 모출납 직원도 명령휴가를 보내 특명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근무하는 은행원들은 명령휴가가 그저 형식적인 제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당초 목적과 달리 단순한 개인 휴가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은행에서 11년 이상 근무한 40대 A씨는 "긴급 명령휴가를 가는게 아니라 개인 연차에 끼워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6년차를 넘은 30대 은행원 B씨도 "불시의 명령휴가 개념이 아니고, 원래 등록해 놓은 휴가에 명령휴가를 바꿔치기하는 식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은행들이 명령휴가를 시행하는 척 시늉만 내면서 내부통제 시스템에 큰 구멍이 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명령휴가는 불시에 검사해 직원의 업무를 꼼꼼하게 들여보겠다는 취지로, 원칙적으로 운영이 된다면 효과가 있는 제도"라며 "명령휴가 날짜를 본인이 지정하는 등 실적 채우기식으로 진행한다면 부작용이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성 낮추는 '순환근무' 금융사고 리스크 키워

일부 은행원들은 또 다른 기본적인 내부통제 시스템 '순환근무'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간 발생했던 대형 금융사고의 공통적인 특징이 '특정 부서 장기근무'인 점을 고려해 순환근무제가 강화됐다. 하지만 순환근무가 오히려 행원들의 전문성을 약화시켜 금융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순환근무가 내부통제와 금융사고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은행원은 12명에 달했다. '잘 모르겠다'고 답한 11명을 합치면 은행원 5명 중 1명은 순환근무의 내부통제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셈이다.

은행에서 10년 넘게 일해온 30대 C씨는 "순환근무에 따른 업무 미숙으로 직원들이 사고를 일으킬 확률도 높다"며 "단순히 순환보직 등 사람에 의지하기보다 시스템적인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30대 은행원 D씨도 "일부 업무의 경우 경력이나 경험이 중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금융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짚었다.

은행권의 가장 기초적인 내부통제 기능인 명령휴가제와 순환근무제에 대한 불신이 큰 만큼 시스템을 재차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설문조사에서도 은행원 38명은 금융사고 방지책으로 '명령휴가, 순환근무 등 내부통제 제도 개선'을 꼽았다.

한국금융연수원 성수용 금융감독원 파견교수는 "명령휴가가 개인 휴가로 쓰인다면 해당 금융회사는 내부통제 문화가 아예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은행장 등 고위 임원들이 나서서 명령휴가 감사 체계를 강화하는 등 내부통제에 대한 강력한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 부서에서 장기적으로 근무하게 되면 특정 고객과의 유착 등 금융사고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어 순환근무는 내부통제에 있어서 필수적"이라면서도 "전문성 결여로 인한 금융사고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특히 금융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 다른 부서보다 근무연수를 늘리는 등 유연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zoom@fnnews.com 이주미 박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