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인터코스가 선케어 기술 탈취
화장품 제조 관련 첫 유죄 확정
처벌수위 낮아 피해 회복 어려워
글로벌 K뷰티 열풍에 찬물 우려
국내 대표 뷰티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 한국콜마의 화장품 제조기술을 유출한 해외 뷰티업체가 6년 만에 유죄가 확정됐다.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국내 뷰티업계의 기술유출 사건에 대해 유죄가 확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기술유출 시 개발비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화장품 제조시장의 특성과 달리 현행법상 가해기업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라 글로벌 시장에서 맹활약 중인 K뷰티의 발목을 잡을 리스크로 떠올랐다.
■'콜마 기술유출 사건' 종지부
12일 법조계와 업계 등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항소3-2부(조순표·김은교·장준현 부장판사)는 최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인터코스코리아의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 취지에 따라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인터코스코리아는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화장품 업체다. 한국콜마에서 지난 2008년부터 10년간 화장품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A씨는 지난 2018년 인터코스코리아로 이직한 뒤 한국콜마의 선크림, 마스크, 립스틱 등 화장품 처방자료를 빼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다른 한국콜마 직원 B씨도 2007~2012년 근무한 뒤 지난 2018년 인터코스코리아로 이직하면서 영업비밀 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법인의 임직원이 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하면 법인도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에 따라 인터코스코리아도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인터코스코리아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A씨가 1심에서 무죄로 판단받았던 혐의 일부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법인인 인터코스코리아에 대한 벌금도 1000만원으로 상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영업비밀 부정사용 미수범에게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양벌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며 법리 오인 취지로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부정경쟁방지법상 양벌규정은 영업비밀 부정사용 '미수범'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앞서 콜마의 화장품 제조기술을 유출한 A씨와 B씨는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1·2심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누설 등)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0개월, B씨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범죄입증 어렵고, 처벌도 '솜방망이'
뷰티업계는 공공연하게 벌어지던 화장품 제조기술 유출과 관련해 첫 유죄 확정판결이 나온 데 주목하고 있다. 기술유출 과정이 주먹구구식이라 적발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화장품 제조가 첨단 기술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탈취 자체도 어렵지 않게 일어난다"며 "인력을 빼와 비슷하게 라인을 깔고 노하우를 넣는 수준이라 영업비밀 누설이나 기술탈취를 입증하기 까다로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피해 규모에 비해 처벌이 터무니없이 약한 것도 기술유출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인터코스코리아는 지난 2017년까지 선케어 제품군을 제조하지 않다가 A·B씨가 입사한 지난 2018년부터 관련 제품을 만들었다.
인터코스코리아의 선케어 매출은 2018년에만 460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유출은 연구개발(R&D)에 자본을 투자하고, 인력과 시간에 공을 들인 선량한 기업들의 사기를 꺾고 산업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로, 시장에서 사라져야 할 범죄"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양형기준을 높여 엄벌에 처하고 기업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희경 재단법인 경청 변호사는 "대부분 영업비밀 침해가 업무 담당자에 의해 이뤄지지만 그 이익은 회사를 위한 것인데도 법인을 지나치게 솜방망이 처벌한다"면서 "피해기업에서는 기술탈취 법인이 벌금을 낸다고 하더라도 피해 회복이 전혀 안 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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