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

[한동하의 본초여담] 우리 몸에는 두 개의 OO이 있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한동하의 본초여담] 우리 몸에는 두 개의 OO이 있다
<동의보감>에 그려진 신형장부도(身形藏府圖)로 심(心, 심장)과 수해뇌(髓海腦, 뇌)가 그려져 있다. 한의학에서는 심이 정신기능을 관장한다고 여겼다.

옛날에 항상 멍하게 앉아 있는 부인이 있었다. 매사에 하는 일이 두렵고 누군가 잡으러 오는 듯한 불안감도 느꼈다. 부인은 어떤 일을 해도 즐겁지가 않았고 가슴이 답답했다. 걷거나 서 있는 것도 힘들어서 항상 앉아만 있었다.

남편이 “도대체 어디가 불편한 것이요?”라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마치 넋이 나간 것 같았다.

남편은 부인을 데리고 약방을 찾았다. 의원이 진찰을 해 보더니 “이것은 심(心)의 병이요. 제가 약을 처방하고 침치료를 해 볼텐데, 그럼 좋아질 수 있을 것이요.”라고 하면서 환약을 물과 함께 마시게 하고 더불어서 소부혈과 신문혈 그리고 내관혈과 간사혈에 침을 놓았다.

그랬더니 부인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부인은 “눈이 밝아지고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는 것 같습니다. 답답했던 가슴도 시원해졌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의원은 “앞으로 이 환약을 복용하면서 침치료를 계속하시면 좋아지실 겁니다.”라고 안심을 시켰다.

부인과 남편이 되돌아가자 약방에서 의술을 배우는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원래 심(心)은 군주(君主)와 같은 장기라 병들지 않고 만약 병이 든다 할지라도 약이 없다고 했는데, 스승님은 심병이라고 하면서 치료를 하시니 어떻게 된 겁니까?”라고 질문이었다.

그러자 의원은 “우리 몸의 심(心)에는 2개가 있다. 바로 눈에 보이는 심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심이다. 눈에 보이는 심을 혈육지심(血肉之心)이라고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심은 신명지심(神明之心)이라고 한다. 나는 부인의 신명지심을 치료한 것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제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명의 심장이 있다니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의원들은 유형의 물질에만 집착하고 무형의 기(氣)를 알지 못한다. 유형이란 형이 쌓인 것으로 허하고 실함이 분명히 드러나서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지만, 신(神)은 무형으로 순식간에 변화하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무시된다. 그래서 내경에서는 ‘조잡한 의사는 형(形)에 집착하고, 훌륭한 의사는 신(神)을 고수한다’고 한 것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옛날에는 오장은 각기 정신기능이 있다고 여겼다. 특히 심(心)에는 신(神, 정신의 추진)이 깃들여 있다. 심 이외의 다른 장부에도 정신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간(肝)은 혼(魂, 정신의 발동), 비(脾)는 의(意, 정신의 통합), 폐(肺)는 백(魄, 정신의 억제), 신(腎)은 지(志, 정신의 안정)가 깃들여 있다.

이처럼 모든 장기에 정신기능이 있지만 심을 제외하고 다른 장기를 유형(有形)의 장기와 무형(無形)으로 구분하여 설명한 바는 없다. 오직 심만이 유형의 심장과 무형의 신명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때 신(神, 신명)은 심의 정신이면서 나머지 모든 정신활동의 중심이 된다.

제자는 잠자코 듣고 있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더니 다시 “그렇다면 신명(神明)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심장의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의원은 “의서에 보면 심(心)은 신명의 집이라고 했다. 신명이 심에 머문다는 것은 정신과 기억, 감정 등이 모두 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심 중에서도 심을 감싸고 있는 포락(胞絡)에 모인 정화(精華)로운 기운이 바로 신명(神明)이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제자는 “그래서 침치료를 할 때 정신과 관련된 증상은 주로 심포경(心包經)에 있는 혈자리를 이용하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의원은 “네가 이제 좀 의안(醫眼)이 생기려나 보구나. 심경(心經) 또한 정신과 관련된 증상을 치료하지만, 여기에는 심포경(心包經)이 주로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부인에게 놓은 침자리인 소부와 신문은 심경에 있고 내관혈과 간사혈은 심포경에 있다. 이들 혈자리는 모두 신명(神明)을 통(通)하게 하는 혈들이다.”라고 했다.

제자가 다시 물었다. “신명을 통하게 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입니까?”
그러자 의원이 답하기를 “신명이 통하면 매사에 신이 난다. 그리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마치 어지럽게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이 매끄러워진다. 또한 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밖을 보지 않아도 하늘의 도(道)를 아는 것과 같다. 세상만사가 마치 깨끗한 강바닥을 보듯이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명이 통하는 것이다. 신명이 통하면 한마디로 지혜로워진다.”라고 했다.

신명(神明)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정신이 밝고 맑아 기운이 온 천지에 퍼지는 기운이다. 천지간에 퍼져 있는 신명을 천지신명(天地神明)이라고 해서 소원을 빌기도 했다. 우리는 신나게 일을 할 때 그리고 일이 잘 될 때 ‘신명난다’고 한다. 신명이 나면 자신의 신명을 천지신명이 돕는다. 그래서 안되는 일도 되는 것이다.

제자가 잠자코 있다가 용기를 내더니 “스승님, 얼마 전 서역을 다녀온 의원의 말을 들으니 서역 의원들은 정신이 니환궁(泥丸宮, 머리)의 수해뇌(髓海腦, 뇌)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자 스승은 “서역인들이 인간의 신체를 논함에 뇌수(腦髓)에 신이 깃들여 있다고 하는데, 만약 전적으로 그렇다면 우울하거나 불안이 심하고 잠을 오래도록 자지 못하면 왜 뇌수보다 심장에 먼저 병이 들겠느냐? 반대로 이러한 정신질환을 치료하면 심장이 다시 건강해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 이것을 보면 심장이 바로 신명의 집이요 일신의 주인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제자는 끄덕이더니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심에 깃들여 있는 신명(神明)이란 감정과 기억이다. 전통적인 서양의학에서는 감정과 기억을 전적으로 뇌의 영역으로 보고 있지만, 최근에는 뇌와 심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가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심장은 감정과 함께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을 담당하고, 실제 뇌는 논리적 사고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포기억설이 관여하는데, 세포기억설은 우리 몸의 모든 개별 세포에는 그 사람의 과거의 경험과 학습이 모두 기억되어 있다는 가설이다.

세포기억설은 장기이식 이식자가 이식 후 공여자의 성격, 습관을 그대로 닮고 심지어 능력까지 나타낸다는 가설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장기이식을 하는 경우, 특히 심장이식 후에 이식을 받은 이식자에게 전에 경험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억이 형성되고 전에 없었던 언어능력과 그리기 능력, 음악적 재능이 나타내는 것이다. 이 기억과 능력들은 심장을 이식해 준 공여자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장기이식보다는 특히 심장이식 때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가설들을 보면 눈에 보이는 전신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육지심(血肉之心)이라는 가시적인 심장에 신명지심(神明之心)이라는 비가시적인 감정과 기억이 내포되어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몸에는 두 개의 심장이 있다.

* 제목의 ○○은 ‘심장’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의학입문> 心, 君臟也, 神明居焉. 心者 一身之主, 君主之官. 有血肉之心, 形如未開蓮花, 居肺下肝上是也. 有神明之心, 神者, 氣血所化, 生之本也. 萬物由之盛長, 不著色象, 謂有何有? 謂無復存, 主宰萬事萬物, 虛靈不昧者是也. 然形神亦恒相因. (심은 군주의 장기니 신명이 거처한다. 심은 한 몸의 주인이요 군주의 관직이다. 혈육의 심이 있으니 형체가 아직 피지 못한 연꽃과 같고 폐의 아래 간의 위에 거처한 것이 바로 심이다. 신명의 심이 있으니 신은 기혈이 화생한 근본이다. 만물이 심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고 색상을 드러내지 않으니라. 심이 있다면 어디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흔적이 없다는 것을 일컫는다. 만사와 만물을 주재하여 허령하여 어둡지 않은 것이 이 심이니라. 그래서 형체와 정신이 또한 항상 서로 원인이 된다.)
<동의보감> 回春曰, 心者一身之主, 淸淨之府, 外有包絡以羅之. 其中精華之聚萃者, 名之曰神, 通陰陽, 察纖毫, 無所紊亂. (회춘에 “심은 우리 몸의 주인이고 청정한 곳인데 밖으로는 포락이 감싸고 있다. 그 중에서 정화가 모인 것을 신이라 한다. 신은 음양을 통하고 아주 미세한 것까지 살피면서도 혼란함이 없다”고 하였다.)
<경악전서> 凡 經曰: “得神者昌, 失神者亡”, 卽此之謂. 今之人, 多以後天勞慾, 戕及先天, 今之醫, 只知有形邪氣, 不知無形元氣. 夫有形者, 迹也, 盛衰昭著, 體認無難, 無形者, 神也, 變幻倏忽, 挽回非易. 故經曰: “麤守形, 上守神”. 嗟呼! 又安得有通神明而見無形者, 與之共談斯道哉? (내경에서 말한 “신을 얻으면 번창하고, 신을 잃으면 망한다”가 바로 이를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후천의 노욕으로 선천까지 손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 의사들은 무형의 원기를 알지 못하고 유형의 사기만을 알 뿐이다. 유형이란 형이 쌓인 적이니 왕성과 쇠약이 분명히 드러나서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지만, 무형이란 신으로 순식간에 변화하여 한번 손상되면 만회가 쉽지 않다. 따라서 내경에서는 “조공은 형을 고수하고, 상공은 신을 고수한다”고 하였다. 아! 어떻게 신명을 통하여 무형의 원기를 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이 도를 함께 이야기하겠는가?)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