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율 '원칙모형 적용' 주문
보험료 인상·판매중단 가능성
금융당국이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을 보수적 가정(원칙모형)으로 적용하도록 보험업계를 압박하면서 소비자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험료의 일괄 상승과 함께 보험업계 담합으로 비칠 수 있어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어서다. 무·저해지 보험은 일반형 대비 보험료가 20~30%가량 저렴한 대신, 가입자가 납입기간 중 계약을 해지했을 때 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상품이다.
■가성비 상품 사라져 소비자는 피해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주요 보험사와 회계법인 경영진을 불러 간담회를 갖고,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위해 무·저해지 보험에 대한 해지율 모형을 원칙모형으로 이행할 것을 주문했다.
당국이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보험업계는 올해 연말결산부터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을 현재보다 낮게 가정해야 한다. 이는 보험상품의 손해율 상승과 마진 축소로 이어지고, 보험사의 수익성과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내년 보험업계 전반적으로 보험료 인상이 예상된다. 나아가 가격 인상으로 무·저해지 보험의 장점인 '가성비'가 사라지면 인기는 시들해지고, 보험사는 사업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사실상 상품 판매를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원칙모형을 모든 보험사가 함께 도입하면 보험사는 무·저해지 보험을 사실상 판매할 수 없다. 판매시 보험부채가 급증하고 건전성도 훼손되기 때문"이라며 "'가성비 상품'이 사라지는 것은 소비자에게 피해다. 또 소비자의 선택권과 의사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지도도 '부당한 공동행위'
당국의 주문에 따라 업계 공동으로 무·저해지 보험에 원칙모형을 적용할 경우 공정거래법 제40조 제1항이 금지하는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서로 가격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고, 다자 또는 양자 접촉을 통해 가격을 결정·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는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일괄적으로 원칙모형이 적용된 가운데 무·저해지 보험 판매가 지속될 경우 모든 보험사가 동일한 모형을 바탕으로 해지율을 예측할 수밖에 없어 보험료 가격경쟁은 불가능하다. 금융당국의 행정지도에 따른 행위라고 하나 담합으로 간주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아울러 원칙모형이 사실상 강제돼 무·저해지 보험의 판매가 중단되면 소비자는 보험료가 비싼 일반 보험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부당한 공동행위 중 상품의 종류·규격 제한에 해당할 수 있다.
실제 금융감독의 행정지도에 의한 공동행위가 '부당'하다고 판시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02년 금감원은 단체상해보험 경쟁이 심화되자 보험사에 정비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보험사와 금감원, 보험개발원은 '단체상해보험 공동정비방안'을 마련했다. 금감원은 이를 바탕으로 단체상해보험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상품 심사기준도 수립했다.
문제는 공정위가 이를 '부당한 공동행위'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당시 공정위는 '금감원의 경우 보험업법상 보험상품에 대한 심사권한만 갖고 있을 뿐, 보험료를 공동으로 결정하도록 할 권한은 없다'며 행정지도에 따른 담합도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짚었다. 법원도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금감원 관계자는 "단체상해보험 관련 법원 판단은 금감원이 보험료 할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당한 공동행위로 본 것"이라며 "원칙모형은 개혁회의를 거쳐 보도자료를 냈고 감독행정 또는 세칙에 반영할 예정이라 당시와 동일하지 않다"고 해명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