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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상처에도…감나무 까치밥처럼 선함 가득한 연말 되기를 [작가와의 대화]

신달자 시인의 고통이여 나의 친구여 !
■ 눈물은 살아있음의 핵심이다 ■
산다는 건 타인과 손잡는 일, 삶이 중심을 잃더라도 그 온기를 생각한다면 일어날 힘이 솟지 않는가
한해의 끝을 향하는 시기.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힘으로 희망이라는 깃발을 부르는 새해로 가자

슬픔과 상처에도…감나무 까치밥처럼 선함 가득한 연말 되기를 [작가와의 대화]
일러스트=정기현 기자
가을 곧 겨울이다. 시간은 내 어깨를 지나가는 바람처럼 순간이다. 내 나이의 두 배쯤의 속도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지금은 가을 겨울이다. 밤에는 춥고 낮에는 햇살이 따스하다. 가을 겨울이 없으면 시인도 그 수가 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시인들의 주제에 가을 겨울은 "있다" "없다"가 아니라 거의 모든 구절에 묻어 있을 것이다. 인간의 내면을 의식을 사유를 말할 때 가을 겨울은 필수일지 모른다. 눈이 내려 쌓이고 더러운 것을 흰 비단으로 덮고 영하로 치닫는 추위와 얼음 바람은 누구의 시에서나 얼굴을 내민다. 그뿐이겠는가. 초록 잎새가 서서히 노오랗고 붉은 색으로 변하며 푸른 하늘과 붉은 가을 겨울 자체가 바로 '시'이기 때문이다.

가을 겨울을 들여놓지 않고 시가 이루어지겠는가. 누군가 붉은 잎새의 가을을 두번째의 봄이라 하지 않았는가. 봄의 신선함을 그릴 때 인간의 고통이 지나간다 하자. 그 또한 가을 겨울의 심정이 스며든 게다.

봄에 어린 풀꽃을 피울 때 우리는 그 풀꽃도 반기지만 가을의 열매를 더 강렬하게 기다린다. 가을 열매가 없다면 여름의 불편함도 이기지 못할지 모른다. 가을은 인간에게 희망이며 양식을 얻는 하늘의 선물 계절이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와 손을 잡는 일이다. 그리고 잡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잡은 손의 '온기'를 오래 잊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깨를 지나가는 바람같이 그 속도로 그 따뜻했던 온기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더욱 겨울은 추웠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삶의 중심을 잃을 때 그 온기만 생각한다 해도 일어설 힘이 솟아나지 않겠는가. 우리는 방에 있어도 창을 통해 밖의 자연을 본다. 가족이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밖의 풍경의 아름다운 자연의 온기로 인해 사회라는 우주를 만들어가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사회로 가족은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선가 목멘 소리 들리고 더 멀리선 예리하게 부르짖는 소리 들리고 주변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가을 혹은 겨울. 이 글이 추운 사람들에게, 그들 모두에게 따뜻한 차 한잔이 되기를 바라지만 거기까지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난여름 땀 흘리며 가을을 만들어 내는 일에 게을렀다. 아프다 아프다 하고 탄식을 노래 부른 일이 자괴감으로 가득하다. 11월은 그런 자기 탄식과 자기 반성의 뉘우침이 크다.

노오랗고 붉게 잎들이 익어가는 풍경을 보면 대학 시절엔 소리만 없었지 늘 울었다. 왜 울었는지 그것은 정확지 않다. 한마디로 하면 '축축한 감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국문과 학생은 슬픔이 많고 눈물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배가 아파도 커피를 마시고 못 먹는 술도 두어 잔 마셔야 국문과 학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약간의 이탈이 평범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왜 그런 그릇된 상식을 품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시 말하면 약간의 비극성을 동경하기까지 했으니...

문학에 대한 어긋난 상식을 가지고 우기고, 읽지도 않는 철학책이며 현대문학을 양팔에 끼고 다녔다. 보이기 위한 장삿속이었는데 그땐 그것이 부끄럽지도 않았다. 이 나이에 와서 생각해도 망측하고 부끄러운데 말이다. 그런데 하나 정확한 것은 내가 걸어가는 문학의 길에 내가 부르지도 않은 비극이 등장하였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어머니의 자살 기도, 내 사랑의 독성 같은 것이 그러했다.

슬픔이 운명의 무대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6·25가 지나고 아버지는 제재소, 정미소를 하시며 소위 부자가 되어 있었지만, 나는 그 덕을 너무 많이 본 딸이지만 대학 4년에 그 황홀했던 거대한 한옥이 빚에 넘어가고 어머니는 고향 땅에서 어머니 살점 같은 그 집을 비워주는 것을 남에게 보이기 싫다며 새벽 2시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서울 변두리로 12시간을 달렸는데 그 12시간 한순간도 울음을 그친 적이 없었다.

"엄마 그 집 내가 담에 사줄게"라고 했지만 저고리 하나 사 드리지 못했다. 어찌 내가 문학을 던져버리겠는가. 슬픔과 비극은 내가 초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생의 무대에 떠억 주인공으로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오전에 딸과 함께 동네 밥집에서 본 감나무를 생각한다. 잘 익은 감 세 개가 나무 끝자락에 남겨져 있다. 저것은 새들의 먹이다. 나누어 먹는 자연성의 이치는 내 나라의 미덕이다. 신을 본 사람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로 자연의 이치를 따르며 나누는 그 마음속에 신은 머무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선한 마음은 모든 음식 속에 든 양념과 같다. 아무리 훌륭한 성품도 선한 마음이 깃들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산 아래 시골길을 햇살 받으며 배부르게 먹고 걷는 이 황홀한 마음속에 어찌 신을 모시지 않겠는가.

두려움은 적게, 희망은 많이, 푸념과 미움은 적게, 사랑은 많이 할 수 있는 겨울이 되기를 바란다. 겨울은 그런 의미에서 독자들에게 따뜻한 온기가 되었으면 한다. 장갑 한 켤레쯤 드리는 마음으로 이번 겨울은 소통의 마음 길이 열리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길 바랄 뿐이다. 말 한마디가 햇살 한주먹이 되는 그런 마음으로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하며 저무는 노을을 저릿하게 바라보고 있다.

가을 겨울이다.
마지막이란 말이 주는 다급한 욕망을 열정이라고 부르고 그 열정의 힘을 기울여 마지막 달의 모습을 새해 1월에 당당히 비출 수 있게 자신을 바라봐야 하는 달이다.

막차의식은 활활 타오르는 불의 의미가 있지만 맹렬한 집중력이 있는 차디찬 얼음의 기류도 그 안에 흐른다. 모든 상처를 어루만지고 새로운 살로 복원(復元)시키는 치유의 힘으로 희망이라는 깃발이 부르는 새해로 가야 하는 것이다.

슬픔과 상처에도…감나무 까치밥처럼 선함 가득한 연말 되기를 [작가와의 대화]

신달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