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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視角] 배우 몸값 거품, K콘텐츠 위기될까

[강남 視角] 배우 몸값 거품, K콘텐츠 위기될까
정명진 문화스포츠부장
넷플릭스의 등장은 콘텐츠 제작 생태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해 기존 방송사들이 엄두도 내지 못했던 '흑백요리사' 같은 대형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그 과정에서 배우들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난 2023년 기준 넷플릭스의 콘텐츠 제작비는 연간 15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이는 전통적인 방송사들의 예산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구독자 확보와 유지를 위해 넷플릭스는 '돈이 들어도 좋은 콘텐츠'라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검증된 스타 배우들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고, 결과적으로 배우 몸값 상승으로 이어졌다.

2020년 기준 최고 스타 배우 출연료가 1회당 3억5000만원이었지만 2024년에는 10억원을 기록했다. 불과 4년 만에 3배 가까이로 뛰어오른 것이다. 영화계도 예외가 아니다. 대작 기준 7억원가량 하던 최고 스타 배우 몸값이 최근 12억원까지 뛰어올랐다. 일부 배우들은 14억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회당 드라마 제작비도 2배로 뛰어올랐다. 전체 제작비 중 출연료가 10%에서 지금은 30~40%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회당 10억원대의 출연료를 지불하려면 국내 시장만으로는 수익 창출이 불가능하다. 이제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된 것이다. 또 배우들의 출연료 증가에 비해 연출자, 작가, 스태프의 처우 개선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제작 현장의 사기 저하와 인재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배우 출연료 급등으로 인한 제작비 부담은 드라마 제작 편수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졌다. 2022년 141편에서 2023년 123편, 2024년에는 100여편, 올해는 80여편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팬데믹 이전 투자사들이 1년에 10~12편씩 투자해 연간 70편 정도 나오던 한국 상업영화가 지금은 20~30편으로 급감했다. 극장 관객 수는 2019년 2억2668만명에서 2024년 1억2313만명으로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제작비 상승이 투자 위축과 제작 편수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결국 넷플릭스도 지난 6월 배우 출연료 상한선을 회당 4억원선으로 정리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얼굴' 주연배우 박정민이 영화에 '노개런티'로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제작비 2억원으로 만든 이 영화는 20여명의 스태프, 3주간 13회차 촬영이라는 초저예산 제작방식을 택했다.

'얼굴'은 개봉 3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하고 1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제작비 대비 9.6배의 대흥행을 거뒀다. 다행히 출연 배우도 러닝개런티를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배우의 출연료 상승은 시장 논리로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출연료가 제작 생태계를 압박한다면 산업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 박정민의 '얼굴' 노개런티 출연은 단순한 화제로 볼 것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사건으로 여겨진다. 최근 일부 제작사들은 작품의 성과에 따라 출연료를 차등 지급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기본 출연료는 합리적 수준으로 책정하되, 흥행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는 배우와 제작사 모두에 상생의 기회를 제공한다.

K팝에 이어 드라마와 영화 등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반짝 흥행에 그칠 수도 있다. K콘텐츠에 전 세계가 열광할 때 우리는 지속 가능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출연료를 성과와 연동시키고, 제작비의 균형을 회복하며, 배우·제작사·플랫폼이 함께 공존 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