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일본의 ‘얼짱 공주’로 유명한 가코(30) 공주가 지난 5월 그리스 방문 당시 검소한 복장으로 화제가 된 가운데, 숙박에는 거액의 돈을 지출됐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다. 5일 서울신문은 일본 겐다이비즈니스를 인용해 "궁내청이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가코 공주의) 그리스 호텔 요금이 1473만엔(약 1억 3700만원)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매체가 언급한 그리스 숙박비는 나루히토 일왕의 조카이자 후미히토 친왕의 둘째 딸인 가코 공주가 지난 5월 그리스와 일본의 수교 125주년을 기념해 그리스를 방문했을 때의 비용을 의미한다. 당시 가코 공주는 2990엔(당시 환율 기준 약 2만6000원)짜리 평범한 파란색 니트를 입어 찬반논란에 휩싸였다. "일본을 대표해 그리스를 방문했는데 TPO(시간·장소·상황)에 적합한 옷을 입는 것이 에티켓"이라는 의견과 "굳이 해외 방문 중 명품이나 비싼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편견"이라는 의견이 맞섰다. 공주가 착용한 해당 니트는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며 완판되기도 했다. 가코 공주는 평소에도 이 브랜드의 제품을 즐겨 착용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리스 호텔 요금이 공개되며 가코 공주는 다시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매체는 "공주가 머물렀던 아테네와 코르푸의 총지출액은 1473만엔(약 1억3734만원)으로 기록됐다. 동행하는 스태프의 비용도 포함됐고 인원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당히 큰 금액”이라고 했다. 매체에 따르면 공주가 머문 숙소는 파르테논 신전과 아테네 시내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5성급 호텔이다. 해당 호텔의 1박 비용은 약 6만엔(약 55만원)부터 시작하고 가장 비싼 방은 약 70만엔(약 652만원)에 달한다. 가장 비싼 방에 묵었다면 가코 공주가 5일간 머물며 든 숙박비용은 350만엔(약 3200만원)이 넘는 셈이다. 매체는 “왕실의 공식 방문이기 때문에 명성과 보안이 좋은 호텔이 선택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아테네 중심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누리꾼들은 “세금 인상과 물가 급등으로 국민들이 힘들어하는데 왕실의 소식을 볼 때마다 외교가 필요한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 돈을 도움이 필요한 국민들을 위해 사용할 수 없을까" "국민의 혈세가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등 의견을 보였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9-05 21:30:04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는 오는 24일과 25일 양일 간 서울 경복궁 흥복전에서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2024년 경복궁 청소년 문화학교'를 운영한다고 1일 밝혔다. '경복궁 청소년 문화학교'는 지난 1989년부터 ‘고궁 청소년문화학교’라는 이름으로 운영된 궁궐 활용 프로그램으로, 올해부터는 경복궁에 특화된 체험형 교육 행사로 새롭게 운영된다. 참가 학생들은 경복궁 흥복전에서 진행되는 이론 강의를 시작으로, 궁내 곳곳을 누비는 현장답사, 만들기 체험과 문제 맞히기(퀴즈) 대회 등으로 구성된 체험 활동에 참여한다.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 측은 "이번 행사를 통해 참가 학생들에게 한국의 대표 국가유산 중 하나인 경복궁의 가치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8-01 09:40:24[파이낸셜뉴스] 일본 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나루히토 일왕의 외동딸 아이코(23) 공주가 중학교 1학년 때 구입한 물통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일본 월간지 여성자신은 아이코가 중학교 1학년 때 구입한 800엔(약 7100원)짜리 물통을 10년째 애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4일 모교인 가큐슈인대학에서 열린 모임 행사에 참석한 아이코는 제일 먼저 '아이메이트(eye mate)'가 운영하는 안내견 체험 부스를 찾았다. 아이메이트는 안내견을 훈련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단체다. 아이코는 10년 전에도 이 협회가 진행하는 행사에 참석해 안대를 쓰고 안내견 체험을 하는 사진이 보도되기도 했다. 당시 아이코는 일왕에게 받은 용돈으로 아이메이트의 로고가 새겨져 있는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해당 부스 한쪽에서는 자선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담당자가 상품에 대해 소개하자 아이코는 가방에서 10년 전 구입한 자신의 텀블러를 꺼냈다. 이를 두고 여성자신은 "아이코가 2021년 성인식에서 왕관을 따로 제작하지 않고 고모의 것을 빌려 쓴 일화가 떠오른다"며 "물건을 소중히 사용하는 사람이라 감동적"이라고 전했다. 성년을 맞는 일본 왕족 여성은 왕관을 맞추는 것이 관례이지만 아이코는 지난 2021년 성인식에서 고모의 왕관을 빌려 쓰고 참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왕관은 왕실 예산으로 제작되는데, 먼저 성년식을 치른 아이코의 사촌 마코는 2011년 2856만엔(약 2억6000만원), 가코는 2014년 2793만엔(2억5000만원)짜리 왕관을 장만했다. 그러나 당시 아이코는 사촌들과 다르게 자신만의 왕관을 제작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일본이 어려운 상황에서 본인 때문에 세금을 낭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달부터 일본 적십자사에 취업해 정식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코는 입사 직후 궁내청을 통해 "미력하지만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들과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입사 당시 아이코는 쓰레기통 청소와 전화 응대 등 잡무도 다 하겠다며 첫 직장 생활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이번 모교 방문은 아이코의 입사 후 첫 휴일 일정이기도 했다. 여성자신은 "이번 일정은 약자를 돌보고 동물을 지키겠다는 취지"라며 "일왕도 아이코의 이번 행사 참석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아이코는 일본 내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2019년 교도통신이 일본 국민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81.9%가 여성 왕족의 왕위 계승을 지지했다. 그러나 일본 왕실의 남성 승계 원칙에 따라 아이코의 왕위 계승은 어렵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4-04-24 14:36:45[파이낸셜뉴스] 일본 왕실 사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인 궁내청이 처음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식 계정을 개설했다. 1일(현지시간) 일본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왕실이 왕실 소식을 알리기 위해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일본 왕실이 SNS를 활용하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4월 홍보실을 신설하는 등 왕실 홍보 기능을 강화하고 있는 궁내청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일왕 부부 활동 등 정보를 발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올해 1∼3월 실시된 행사 사진 등이 게시됐다. 다만 궁내청 계정에 다이렉트 메시지(DM)나 댓글을 달 수 없도록 했는데, 이는 일왕 부부에 대한 이용자의 공개적 의견 게시를 막기 위함으로 알려졌다.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사진은 일본 적십자사에 입사한 아이코 공주가 일왕 부부와 함께 지난달 적십자사 사장으로부터 설명을 듣는 사진으로 6만여건의 '좋아요'를 받았다. 아이코 공주는 나루히토 일왕 부부의 외동딸이다. 구로다 부이치로 궁내청 차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젊은 층을 포함한 폭넓은 층이 왕실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2일 오전 6시 기준으로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37만9000명에 달했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4-04-02 07:02:57【파이낸셜뉴스 도쿄=박소연 기자】 일본 왕실 사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인 궁내청이 왕실 정보를 알리기 위해 1일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을 개설했다. 일본 왕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궁내청은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일왕 부부 활동 등 정보를 발신해 나가겠다고 소개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올해 1∼3월 실시된 행사 사진과 이날 일본 적십자사에 입사한 아이코 공주가 일왕 부부와 함께 지난달 적십자사 사장으로부터 설명을 듣는 사진 등이 게시됐다. 이날 오후 7시 기준으로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8만8000명이었다. 이 계정에서는 ‘좋아요’ 버튼을 누를 수만 있고 댓글은 달 수 없다. 다이렉트메시지(DM)도 보낼 수 없다. 궁내청은 “의견, 감상 등은 홈페이지를 통해 받겠다”고 밝혔다. 다른 나라 왕족처럼 왕가 개개인 명의로 소셜미디어 계정을 개설하지 않고 궁내청 명의로만 만들었다. 일본 왕실은 2021년 나루히토 일왕의 조카 겸 후미히토 왕세제의 장녀 마코 전 공주와 일반인 남편 고무로 게이의 결혼을 두고 잡음이 일었다. 당시 고무로 모친의 불투명한 금전 관계 등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왕실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왕가 전체의 이미지 손실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구로다 부이치로 궁내청 차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젊은 층을 포함한 폭넓은 층이 왕실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궁내청은 지난해 4월 홍보실을 신설하는 등 왕실 홍보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2024-04-02 06:57:45[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장손황후가 임신한 지 10개월이 넘었는데도 출산을 하지 못해 중병으로 앓아누웠다. 황후는 의식도 명료하지 않았다. 여러 명의 태의(太醫)들이 진료를 했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태종은 매일매일 안절부절못했다. 어느 날, 당 태종은 국정을 처리한 후에 대신 중 서무공에게 “황후가 중병을 앓고 있는데 태의들이 계속해서 치료하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하오. 경은 어디에 명의가 있는지 아시오?”라고 물었다. 서무공은 그 말을 듣고 곧 이어서 손사막(孫思邈)을 태종에게 추천하였다. “신은 일찍이 듣기로 화원현(華原縣) 민간 의사로 손사막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종종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약을 수집하는데, 특히 부인과와 소아과에 능숙하다고 합니다. 난치병은 일단 그가 손을 대면 묘수를 되찾을 수 있고 약으로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인의 견해로는 그를 궁으로 불러들여 황후를 치료해 주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라고 했다. 서무공의 말을 들은 당 태종은 수긍했다. 그래서 사신을 보내어 밤을 새워 화원현으로 보내 손사막을 황궁으로 불러들였다. 당 태종은 손사막이 도착하자마자 즉시 그를 불러 “손 선생의 의술이 뛰어나 만인을 회생시키는 공이 있다고 들었소. 황후가 중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져 특별히 선생을 부른 것이니 호전되면 반드시 큰 상을 내리겠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봉건사회로 남녀가 친(親)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례와 가르침에 따라 어의라도 궁내 부녀자를 진찰할 때 대부분 가까이 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구술에 따라 처방을 받아야 했다. 손사막은 게다가 민간 의사로 무명베 옷차림으로 옷을 평범하게 입고 있었다. 그래서 황후의 봉체(鳳體)에는 더더욱 접근할 수 없다. 손사막은 제대로 진료가 안 될 것을 미리 간파하고서는 황후를 모시는 궁녀를 불러냈다. 그래서 궁녀에게 황후의 병세를 자세하게 물었다. 더불어서 담당 어의가 지금까지 작성해 놓은 병력과 처방전을 받아서 꼼꼼히 검토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 근거하여 이미 황후의 병세를 거의 파악하였다. 손사막은 황후의 내실에 들어왔다. 그러나 짐작대로 황후를 마주할 수 없었다. 황후의 내실에는 큰 발이 쳐져 있었고, 손사막은 발과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아야 했다. 그러니 진맥을 할 수 없었다. 황후는 의식도 명료하지 않아 물음에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든지 진찰을 해야했다. 손사막은 붉은 실을 꺼냈다. 그리고 궁녀에게 실의 한쪽 끝을 쥐여 주고 황후의 오른쪽 손목에 매라고 부탁했다. 그러고서는 나머지 한쪽을 발에 통과시켜 자신의 앞쪽까지 당겼다. 손사막은 실을 팽팽하게 당긴 후 손가락을 실에 대고 진맥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아무도 보지 못했던 진맥법이었다. 이것을 인선진맥(引線診脈) 혹은 현사진맥(懸絲診脈)이라고 한다. 손사막은 실 끝에 손가락을 대고 마치 사람의 손목에 진맥하듯이 정신을 집중했다. 황후의 요골동맥이 뛸 때마다 실을 통해서 느껴지는 진동을 파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황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서 “손사막은 신의(神醫)로다.”라고 놀라워했다. 손사막은 진맥을 마친 후 “이것은 난산(難産)입니다. 황후의 태실 속의 태아의 심장이 약하고 위치가 불순(不順)한 것이 원인으로 그래서 10개월이 넘도록 태아가 나오지 않으니 중병에 해당합니다.”라고 했다. 당 태종은 “그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것인가?”하고 물었다. 손사막은 “궁녀에게 대나무 발 가까이에 왕비의 손을 잡도록 요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제가 침을 찌르면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손사막은 궁녀를 시켜서 황후의 왼손을 발 가까이 대게하고 가운데 손가락을 발 사이로 내밀게 했다. 손사막은 침으로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 끝에 있는 중충혈(中衝穴)을 강하게 찔렀다. 황후는 아파서 비병을 지르면서 온몸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그러자 잠시 후 갓난아이 소리가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궁녀가 급하게 뛰쳐 나왔다. “황제 폐하, 황후께서 손사막에게 침을 맞은 후 황자(皇子)도 무사히 태어났고 황후 의식도 되돌아왔습니다.”라고 했다. 훗날의 당 고종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당 태종은 크게 기뻐하며 손사막에게 “손 선생은 과연 의술이 심오하고 회춘(回春)케 하는 묘수가 있으니 확실히 당대의 명의로소이다! 오늘의 치료는 대단하오.”하고 말했다. 태종은 손사막에게 좋은 말 한 필과 비단 백 척, 천 냥의 황금을 선물했고, 벼슬을 하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손사막은 금은 보화는 물론이고 벼슬 또한 사양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손사막의 현사진맥은 의사들에게 회자되었다. 그래서 이후로 궁의 어의들은 왕비와 후궁을 진찰할 때는 현사진맥을 시도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청나라 건륭제 때 일이다. 건륭제의 공주가 병에 걸렸다. 그런데 건륭제는 어의들이 현사진맥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공주를 진찰하기 전에 어의를 시험해 보고자 했다. 우선 발을 몇 겹을 쳐 놓고 어의가 안쪽을 보지 못하게 했다. 어의는 단지 얼마 전 혼례를 올린 공주를 진찰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의는 길게 늘어뜨려진 실을 통해서 진맥을 하고 나서는 황제를 기쁘게 하려고 웃으면서 “황제 폐하께 아뢰옵니다. 이것은 분명 희맥(喜脈)입니다.”라고 했다. 희맥은 임신맥을 뜻한다. 건륭제는 어의의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 가는 실로 진맥을 했다는 것인가? 지금 희맥이라고 했는가? 짐은 이를 믿지 못하겠다.”라고 했다. 그러자 어의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신은 지금껏 진맥을 했지만 한 번도 착오가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건륭제는 내시를 시켜서 발을 걷어 올리고 어의를 이끌고 안을 살펴보도록 했다. 그런데 명주실은 공주의 손목이 아니라 걸상다리에 매어져 있었다. 어의는 이것을 보고 깜짝 놀라 기절할 뻔했다. 이것은 황제를 속인 것으로 필경 죽임을 면치 못할 불경죄였다. 어의는 당황해하면서 바닥에 황급히 엎드렸다. 엎드려서 보니 걸상 다리에 작은 구멍이 하나 보였다. 어의는 노련했기에 침착하게 한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황제 폐하, 이 걸상 다리를 쪼개면 제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건륭제는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서도 즉시 내시에게 명하여 날카로운 도끼를 꺼내 걸상다리를 쪼갰다. 그랬더니 곁에서 봤던 구멍이 있는 곳 안쪽에 애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의는 다시 급히 무릎을 고쳐 꿇고서는 “이것 보십시오. 이것은 목(木)의 임신이기에 제가 희맥(喜脈)이라고 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서야 황제는 어의에게 비로소 병든 공주를 진찰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어의는 땀을 뻘뻘 흘려 옷자락까지 흠뻑 젖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어의는 공주를 현사진맥을 통해서 진맥했고 진맥 결과를 황제께 고했다. 어의의 진단은 거의 들어맞았다. 어의는 역시나 평소에 내시와 궁녀들을 통해서 후비나 공주의 생활습관, 식습관, 대소변 상태, 수면상태 등을 파악해 왔기 때문에 현사진맥을 통해서 병세를 알아낸 것처럼 말할 수 있었다. 어의는 이렇게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당나라 때 약왕(藥王)으로 칭송받던 손사막이 실제로 손목에 실을 매달아 진맥했는지를 알 수 없다. 설령 실제로 시도를 했던 진맥법이라 할지라도 병세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의문이다. 그의 저서인 <천금방> 등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손사막 시대의 옛날의 의사들은 진맥하는 능력이 요즘보다 탁월했을 것은 분명하다. 촉각과 집중력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사진맥(縣絲診脈)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불가능한 진맥법으로 봉건적 남녀유별(男女有別)한 시대가 만들어 낸 웃지못할 촌극(寸劇)에 불과하다. * 제목의 ○은 ‘실’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중국고사> ○ 長孫皇後與懸絲診脈. 唐貞觀年間太宗李世民的長孫皇後懷孕已十多個月不能分娩, 反而患了重病, 臥床不起. 雖經不少太醫醫治, 但病情一直不見好轉. 太宗每日愁鎖眉頭, 坐臥不寧. 有一日, 唐太宗理完朝政以後, 留大臣徐茂公問道:“皇後身患重病, 經太醫不斷診治, 百藥全無效果. 卿可知哪裏有名醫? 請來爲她繼續治療才是” 徐茂功聞言, 便將孫思邈推薦給太宗說道:“臣早聽說華原縣(今耀縣) 有位民間醫生孫思邈, 常到各地采藥爲群眾治病, 對婦兒科尤其擅長. 疑難之症一經他手, 都能夠妙手回春, 藥到病除. 以臣之見, 還是將他召進宮來, 爲皇後治療才好!” 唐太宗聽過徐茂功的一番話後, 表示同意. 便派遣使臣馬不停蹄, 星夜奔赴華原縣, 將孫思邈召進了皇宮. 唐太宗見孫思邈已經來到, 便立即召見了他, 說道:“孫先生醫術超群, 有起死回生之功, 皇後身患重病, 昏迷不醒, 特請先生前來治療, 若能好轉, 寡人定有重賞.” 但是, 在封建社會, 由於有男女授受不親的禮教束縛, 醫生給宮內婦女看病, 大都不能夠接近身邊, 只能根據旁人的口述, 診治處方. 孫思邈是一位民間醫生, 穿著粗布衣衫, 皇後的鳳體他更是不能接近的. 於是他一面叫來了皇後身邊的宮娥采女細問病情, 一面要來了太醫的病曆處方認真審閱. 他根據這些情況, 作了詳細的分析研究, 已基本掌握了皇後的病情. 然後, 他取出一條紅線, 叫采女把線系在皇後右手腕上, 一端從竹簾拉出來, 孫思邈捏著線的一端, 在皇後房外開始 ‘引線診脈’了. 沒有多大工夫, 孫思邈便診完了皇後的脈. 原來, 孫思邈醫術神奇, 靠著一根細線的傳動, 竟能診斷清人體脈搏的跳動. 這就是他被群眾稱爲神醫的原因. “萬歲! 民醫已對病症經過了查問診脈, 診斷其爲胎位不順, 民間叫做小兒扳心, 故而難產十多個月不生, 致使皇後身患重病.” 孫思邈診斷完畢, 向太宗稟告了病因. 唐太宗聽完以後, 問道:“孫先生言之有理, 但不知你打算怎樣治療?” 孫思邈答道:“只需吩咐采女, 將皇後的手扶近竹簾, 民醫在其中指紮上一針即見效果.” 於是采女將皇後左手扶近竹簾, 孫思邈看准穴位猛紮了一針, 皇後疼痛, 渾身一顫抖. 不一會兒, 只聽得嬰兒呱呱啼哭之聲, 緊接著采女急急忙忙跑出來說道:“啟稟萬歲, 皇後被孫醫師紮過一針後,產下了皇子, 人也蘇醒了!” 唐太宗聞言大喜, 對孫思邈說道:“孫先生果真醫理精深, 妙手回春, 確實是當代名醫!” (장손황후을 현사진맥하다. 당나라 정관 연간에 태종 이세민의 장손황후가 임신한 지 10개월이 넘었는데도 출산을 못하고 중병에 걸려 앓아누웠다. 많은 태의의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태종은 매일 미간을 찌푸리고 안절부절못했다. 어느 날 당 태종이 조정의 일을 마치고 나서 대신 서무공에게 물었다. “약은 효과가 없다. 유명한 의사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계속 치료하도록 하라.” 서무공은 이 말을 듣고 손사막을 당 태종에게 추천하면서 말했다. “화원현에 민간의사 손사막이라는 의사가 있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어왔습니다. 그는 종종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을 수집했고, 특히 산부인과와 소아과에 능숙합니다. 그 사람은 치료할 수 있을 텐데, 소인의 생각에는 그를 궁궐로 불러내어 왕비를 치료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서무공의 말을 듣고 당 태종은 이에 동의하여 별이 빛나는 밤에 화원현에 쉬지 않고 사신을 보내 손사막을 궁궐로 불러들였다. “손사막 당신은 의술이 뛰어나고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다고 들었다. 왕비가 중병에 걸렸고 의식도 없어서 특별히 당신을 불러 치료를 받고자 한다. 만약 능히 호전이 되면 과인이 큰 상을 내리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봉건사회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친밀해서는 안 된다는 예법 때문에 궁궐에서 여자를 진료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들과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단지 타인의 설명과 진료기록 등을 보고서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손사막는 민간의사로서 거친 옷을 입고 있어서 왕비의 봉황 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서 왕비 옆에 있는 궁녀에게 연락해서 상태를 자세히 알아보고 동시에 어의의 진료기록부와 처방전을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 이를 바탕으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연구를 진행한 결과 왕비의 상태를 기본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그는 붉은 실을 꺼내서 채녀에게 왕비의 오른쪽 손목에 실을 묶고 대나무 커튼에서 한쪽 끝을 당겨달라고 요청했다. 손사막은 실의 한쪽 끝을 잡고 실을 잡고 맥을 잡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사막은 진단을 시작했다. 손사막의 의술은 너무나 신기해서 실의 파동을 통해 사람의 맥박을 진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중들에게 기적의 의사로 불렸다. “황제 폐하, 민간인 의사인 제가 병을 살펴보니 맥박을 진단한 결과 태아의 위치가 이상하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민간에서는 이것을 태아의 심장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 결과 왕비는 10개월이 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는 중병에 걸린 것입니다.” 손사막은 진단을 마친 후 당 태종에게 병의 원인을 알렸고, 이 말을 들은 당 태종은 “손 선생의 말씀은 일리가 있지만 어떻게 치료할 생각인 지 모르겠다.”라고 물었다. 손사막은 “채녀에게 대나무 발 가까이에 왕비의 손을 잡도록 요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제가 침을 찌르면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채녀가 왕비의 왼손을 대나무 발 가까이에 대고 손사막은 혈점을 찾아 침을 놓자 왕비는 온몸을 아파하며 떨었다. 잠시 후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채녀가 급히 달려가서 말하기를 “황제께 아뢰옵니다. 황후가 손사막에게 침을 맞은 후 황자를 낳고 의식도 깨어났습니다.”라고 했다. 당 태종은 크게 기뻐하며 손사막에게 “손 선생은 과연 의술이 심오하고 묘수가 회춘하니 확실히 당대의 명의다.”고 말했다.) ○ 乾隆皇帝與懸絲診脈. 一日乾隆皇帝宣禦醫看病, 禦醫不知那位妃子染恙, 心想先討吉利再說. 於是就在懸絲上診了一會兒脈後, 喜形於色地說 : “啟稟萬歲, 喜脈!” 乾隆一聽, 暗地笑了, 說道“憑這根細絲診脈看病?朕不信!” 禦醫忙磕頭道:“臣診脈, 從未有過差錯.” 乾隆命太監帶禦醫去看懸絲另一頭. 原來, 皇帝想試試禦醫的本領, 絲線的另一端並未系上病人的手腕, 而是系在凳腿上. 禦醫看了大吃一驚, 險些嚇暈——這可欺君之罪啊! 但他不愧有經驗的老禦醫, 稍定了一下神, 他搬起凳子細細查看一遍後, 說:“敢請劈開凳腿, 便知微臣講的真假.” 乾隆立即命太監取出利斧劈開凳腿, 只見凳腿中有一小蛀洞洞內有只小蟲正蠕動, 禦醫忙跪奏:“萬歲請看此爲木之孕也, 叫喜脈.” 皇上一聽, 面露喜色點頭表示認同, 這才命其給正生病的格格診治. 此這位禦醫已嚇得大汗淋漓, 連衣襟都濕透了. (건륭황제와 현사진맥. 어느 날 건륭제가 어의에게 진찰을 부탁했는데, 어의는 후비가 아픈 것을 모르고 먼저 행운을 빌고 싶어서 현사진맥을 통해 확인했다. “황제 폐하께 아뢰오. 임신맥입니다!”라고 했다. 건륭은 이 말을 듣고 몰래 웃으며 “이 얇은 실로 맥박을 진단할 수 있었단 말인가?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하자 어의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는 맥박을 통해 판단하는 데에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사옵니다.” 건륭제는 내시에게 명령하여 어의를 데리고 실의 묶인 반대쪽 끝을 보게 하였는데, 알고 보니 비단실의 반대쪽 끝은 환자의 손목이 아닌 의자 다리에 묶여 있었다. 어의는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거의 기절할 뻔했다. 이것은 황제를 속인 범죄다. 그러나 그는 노련한 황실 어의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그는 잠시 진정한 후 의자를 들어 올려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감히 의자 다리를 쪼개면 신이 말씀드린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건륭은 즉시 내시에게 명령하여 날카로운 도끼를 꺼내 의자 다리를 쪼개어 보니 의자 다리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 속에서 작은 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의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황제 폐하, 이것은 나무의 임신이기에 이 또한 임신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행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그에게 병든 공주를 진단하고 치료하라고 명했다. 어의는 너무 겁에 질려 땀을 많이 흘리고 옷까지 흠뻑 젖었다.) * 상기 관련 고사 출처 : 중국 <백도백과(百度百科)> 사이트의 ‘懸絲診脈’ 관련 내용임.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4-03-08 10:41:43[파이낸셜뉴스] 일본 왕가의 무남독녀 외동딸 아이코 공주가 일본 적십자사에 취업했다. 23일 일본 궁내청은 아이코 공주가 4월 1일부터 적십자사 촉탁 직원으로 내정됐다고 발표했다. 아이코 공주는 올해 봄 가쿠슈인대를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떠난다고 알려졌지만, 직장 생활을 선택한 것이다. 아이코 공주는 궁내청을 통해 "사회인으로서 자각을 갖고 일을 시작하게 됐다"며 "조금이라도 사회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일왕 부부는 아이코 공주의 사회생활에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코 공주는 왕실 업무도 겸임하기 때문에 주 3~4회 출근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적십자에서의 구체적인 근무 시간이나 부서 등은 미정인 것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궁내청 측은 "(아이코 공주가) 재해 구호 활동 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적십자사) 근무를 희망했다"고 전했다. 일본 적십자사의 명예총재는 관례상 왕후가 맡는다. 아이코 공주의 어머니인 마사코 왕비가 명예총재다. 나루히토 일왕 부부는 1993년 결혼했다. 하지만 유산 등을 겪으며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다. 2001년 아이코 공주가 태어났지만, 이후에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으로 마사코 왕비가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한편 일본 왕실 전범에 따라 왕위 계승은 남성만 가능하다. 이에 따라 아이코 공주는 나루히토 일왕의 유일한 자식이지만, 현재 일왕 승계 1위는 나루히토 남동생인 후미히토 왕세제, 승계 2위는 후미히토 아들 히사히토다. 아이코 공주는 2020년 카구슈인대에 입학했다.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실제로 등교를 한 것은 4학년 때인 지난해 1년이 전부다. 코로나 시기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01-23 20:34:55【파이낸셜뉴스 도쿄=박소연 기자】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1일 규모 7.6의 지진이 발생하자 일본 왕실이 신년 행사를 취소했다. 2일 NHK에 따르면 일본 궁내청은 '2024년 노토반도 지진'의 발생에 따라 이날 예정됐던 신년 '잇판산가'(一般参賀·일반참하)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일반참하란 새해가 밝으면 일본 왕실이 유리창 너머로 황궁을 찾은 대중에게 손을 흔들고 신년 메시지를 발표하는 행사다. 매년 1월2일 일왕 부부 및 왕족들은 일반 국민과 하루 5번의 만남을 가진다. 고쿄 규덴(宮殿)의 베란다에 서서 국민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일왕은 새해 인사말을 건넨다. 궁내청은 나루히토 일왕 부부가 지진 피해를 우려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일반참하 취소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궁내청에 따르면 자연재해 발생으로 일본 왕실의 일반참하가 취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2024-01-02 07:15:24【파이낸셜뉴스 도쿄=박소연 기자】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진행된 올해 황궁 신년 행사가 사전 신청과 추첨을 통해 참가자를 제한했던 것과는 달리 내년 신년 행사에는 인원 제한이 없어진다. 1일 지지통신,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왕실 업무를 주관하는 행정기관인 궁내청은 내년 1월 2일 황궁에서 열리는 새해 일반참하 요령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참가자에게 사전 신청을 받거나 추첨을 하지 않는다. 새해 일반 참하는 매년 1월2일 일본 왕실이 일왕 거처인 도쿄 고쿄(皇居)에 일반 국민을 초대하는 행사를 말한다. 이날 일왕 부부 및 왕족들은 일반 국민과 하루 5번의 만남을 가진다. 고쿄 규덴(宮殿)의 베란다에 서서 국민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일왕은 새해 인사말을 건넨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지 3년 만에 진행된 올해 신년 참하는 감염 대책을 위해 사전 신청을 한 사람을 대상으로 추첨을 해 인원을 통제했다. 내년 일반 참하는 사전 신청이 필요 없다. 궁내청은 고령자 등 전염병 감염 위험이 큰 사람의 방문 등에 대비해 참가자 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면에 표시할 예정이다. 감기 등의 증상이 있는 경우 내방이나 혼잡 시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은 삼가도록 당부하고 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2023-12-01 07:33:01[파이낸셜뉴스] 문화재청은 '갑오군정실기', '민영환 서구식 군복', '칠곡 매원마을'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고 15일 밝혔다. '갑오군정실기'는 1894년 동학농민군 토벌을 위해 설치된 양호도순무영(兩湖都巡撫營)의 관련 공문서를 모아 작성한 필사본이다. 1895년 초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자료는 10책으로 구성돼 있다. 2011년 일본 궁내청으로부터 환수 받은 조선왕조의궤 등이 포함된 150종 1205책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가 대출 형식으로 일본에 반출한 66종 938책 중 하나다. 지금은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고려대가 소장한 '민영환 서구식 군복'은 조선말 문신이자 대한제국 개화 관료였으며,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죽음으로 항거한 민영환(1861~1905)이 입었던 서구식 군복이다. 서구식 군복제도는 1895년 '육군복장규칙'에 따라 시행됐다. 문화재청은 "해당 문화유산은 1897년과 1900년에 개정된 ‘육군장졸복장제식'에 따른 예모·대례의·소례견장·대수 등 구성요소를 대부분 갖춰 복식사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칠곡 매원마을'은 근·현대기를 지나오면서 이뤄진 마을 영역의 확장과 생활방식 등의 변화 속에서 다른 영남지방의 동족마을과 구별되는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와 별도로 문화재청은 이날 대한제국 콜레라 예방서인 '호열자병예방주의서'도 등록 예고했다. '호열자병예방주의서'는 대한제국이 1899년 설립한 관립의학교에서 1902년 간행한 책자다. 콜레라 전염과 예방법, 환자 관리, 소독 방법들을 간략하게 적은 근대 서양의학 기반의 전염병 예방서다. 우리나라 의학과 서지학 발전에 기여한 고(故) 김두종(1896~1988) 박사가 한독의약박물관)에 기증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3-06-15 14:5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