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마지막 끈을 잡고 있는 위기의 사람들이 그 끈을 놓지 않도록 응급처치해 생명을 보존시켜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분 1초를 다투는 촌각의 순간. 절체절명 응급상황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생명의 길을 인도하는 이들이 있다. 응급구조사들이다. 응급구조사는 갑작스러운 사건사고 현장에서 발생한 응급환자들을 제일 먼저 찾아가 '골든타임'을 사수해 이들을 구조하고 이송하는 업무를 주로 맡는다. 사건 현장에서 놀란 이들을 안정시켜주는 상담의 역할도 소화해 낸다. 응급구조사란 직업은 우리나라에 1995년 처음 등장했다. 1994년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이듬해 연달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인해 사건발생 시 신속하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데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됐고,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이 탄생된 것이다. ■'골든타임' 사수로 생명 불어넣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성동소방서에서 근무 중인 강신준 대원(사진)은 응급구조 일을 수행한 지 올해로 20년이 되는 베테랑 응급구조사다. 강 대원은 응급구조사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아무래도 응급구조사 일을 해오며 가장 보람된 순간은 꺼져가던 생명을 다시 살린 일"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역시 생명을 구한 일이다. 공원에서 한 남성이 쓰러졌다는 신고가 들어와 바로 출동해 현장에 가보니 이미 남성은 심정지 상태였다. 강 대원은 지체없이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로 응급처치를 했고, 다행히 남성의 숨은 다시 돌아왔다. 다시 생각해도 진땀 나는 순간이었다. 강 대원이 살린 남성은 기관사 분으로 건강을 되찾은 후 중학생 자녀들, 부인과 함께 찾아와 강 대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강 대원은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남성을 생명을 살리고 그가 일상을 회복해 가족들과 함께 인사를 하러 온 모습을 보고는 생명을 구한 것을 실감하며 벅찬 감정을 느꼈다"며 "그 분과는 제가 남극으로 가기 전까지 의형제를 맺으며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생명을 구하며 느껴지는 보람은 그를 남극으로까지 이끌었다. 강 대원은 응급구조사로서 극한상황에 도전하고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해내고 싶은 열정을 누르지 못해 결국 남극 안전대원에 자원했고, 선발됐다. 그는 "세종기지와 달리 남극 장보고과학기지는 긴급상황 시 인근 국가로 이송해갈 비행기가 내릴 시기가 극히 제한돼 있다"며 "그럼에도 진짜 응급구조사로서 극한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시험해 보고 싶었다"며 도전 당시 심경을 전했다. 강 대원은 "한 번은 대원들과 바다표범이 새끼를 낳을 시기에 야외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평상시에는 온순하던 바다표범이 그날 따라 대원들에게 돌진을 해 위험한 일이 있었다"면서 "순간 혼비백산해 안전지대로 피신해 큰 일은 없었지만, 응급구조를 하러갔는데 우리가 응급한 상황에 놓일 뻔했다며 후에 웃기도 했지만 여전히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회상했다. ■"응급차 보면 비켜주세요" 강 대원이 처음 응급구조사 일을 시작하던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는 국민들의 인식이나 제도 그리고 장비들이 많이 개선됐다. 그럼에도 그는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선 여전히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무엇보다 응급 신고를 받고 출동을 했는데 도로 위에서 차량들이 쉽게 비켜주지 않거나, 현장에 출동했는데 되레 폭언이나 폭력을 당하거나, 응급하지 않은 상황에 신고를 해 인력이 낭비되는 상황들이 지금도 발생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실제로 가끔 신발이 지붕에 넘어가는 등의 일로 응급구조 신고를 하거나, 출동 후 최선을 다해 달려갔는데 현장에서 늦게 왔다며 멱살을 잡히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 응급구조 인력이 정말 촌각을 다투는 응급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전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우선이다. 이와 동시에 그는 응급구조사의 업무 환경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과 직결되는 만큼 단순한 인식 개선이나 호소를 넘어 제도적인 뒷받침 마련도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차의 진입에 대해 강 대원은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상황이 수월해졌지만 아직까지도 출동을 나갈 때 차량들이 쉽게 비켜주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면서 "십수년째 호소만 하고 있는데 외국처럼 응급차량을 비켜야 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그러지 않을 시 제재를 가하는 등의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응급 상황에서 신고를 한 후 가능한 경우 보호자들은 응급처치를 하며 기다리고, 여유가 된다면 찾기 힘든 주택가의 경우 주변 보호자 한 명이 나와 응급구조대원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면 '골든타임' 사수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강 대원은 "저는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를 선진국처럼 발전시켜야 하는 선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며 일을 해왔다"며 "이 직업을 택한 사람들, 생명을 다루는 응급구조사라는 사람들의 고귀한 뜻을 지지해 주시고, 응급구조사가 더욱 응급구조사답게 현장에서 생명의 최일선 보루로 있을 수 있게 국민들께서 응원해 주셨으면 감사하겠다"면서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 pja@fnnews.com 박지애 기자
2020-05-27 17:19:04[파이낸셜뉴스]"생명의 마지막 끈을 잡고 있는 위기의 사람들이 그 끈을 놓지 않도록 응급처지 해 생명을 보존시켜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분 1초를 다투는 촌각의 순간. 절체절명 응급상황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생명의 길을 인도하는 이들이 있다. 응급구조사들이다. 응급구조사는 갑작스런 사건, 사고 현장에서 발생한 응급환자들을 제일 먼저 찾아가 '골든타임'을 사수해 이들을 구조하고 이송하는 업무를 주로 맡는다. 사건 현장에서 놀란 이들을 안정시켜주는 상담의 역할도 소화 해 낸다. 응급구조사란 직업은 우리나라에 1995년 처음 등장했다. 1994년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아듬해 연달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인해 사건 발생시 신속하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데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됐고,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이 탄생된 것이다. ■ '골든타임' 사수로 생명을 불어넣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성동소방서에서 근무 중인 강신준 대원 (사진)은 응급구조 일을 수행한 지 올해로 20년이 되는 베테랑 응급구조사다. 강 대원은 응급구조사에 대해 이 같이 말하며 "아무래도 응급구조사 일을 해오며 가장 보람된 순간은 꺼져가던 생명을 다시 다시 살린 일"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역시 생명을 구한 일이다. 공원에서 한 남성이 쓰러졌다는 신고가 들어와 바로 출동해 현장에 가보니 이미 남성은 심정지 상태였다. 강 대원은 지체없이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로 응급처치를 했고, 다행히 남성의 숨은 다시 돌아왔다. 다시 생각해도 진땀 나는 순간이었다. 강대원이 살린 남성은 기관사 분으로 건강을 되찾은 후 중학생 자녀들과 부인과 함께 찾아와 강대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강 대원은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남성을 생명을 살리고 그가 일상을 회복해 가족들과 함께 인사를 하러 온 모습을 보고는 생명을 구한 것을 실감하며 벅차는 감정을 느꼈다"며 "그 분과는 제가 남극으로 가기 전까지 의형제를 맺으며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생명을 구하며 느껴지는 보람은 그를 남극으로까지 이끌었다. 강 대원은 응급구조사로서 극한상황에 도전하고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해내고 싶은 열정을 누르지 못해 결국 남극 안전대원에 자원했고, 선발됐다. 그는 "세종기지와 달리 남극 장보고과학기지는 긴급 상황시 인근 국가로 이송해 갈 비행기가 내릴 시기가 극히 제한 돼 있다"며 "그럼에도 진짜 응급구조사로서 극한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 지 스스로 시험해 보고 싶었다"며 도전 당시 심경을 전했다. 강 대원은 "한 번은 대원들과 바다표범이 새끼를 낳을 시기에 야외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평상시에는 온순하던 바다표범이 그날 따라 대원들에게 돌진을 해 위협한 일이 있었다"면서 "순간 혼비백산해 안전지대로 피신해 큰 일은 없었지만, 후에 응급구조를 하러갔는데 우리가 응급한 상황에 놓일 뻔했다며 웃기도했지만 여전히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회상했다. ■ "응급차 보면 피해주세요" 강 대원이 처음 응급구조사 일을 시작 하던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는 국민들의 인식이나 제도 그리고 장비들이 많이 개선됐다. 그럼에도 그는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선 여전히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무엇보다 응급 신고를 받고 출동을 했는데 도로 위에서 차량들이 쉽게 비켜주지 않거나, 현장에 출동했는데 되레 폭언이나 폭력을 당하거나, 응급하지 않은 상황에 신고를 해 인력이 낭비되는 상황들은 지금도 발생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실제로 가끔 신발이 지붕에 넘어가는 등의 일로 응급구조 신고를 하거나, 출동 후 최선을 다해 달려갔는데 현장에서 늦게 왔다며 멱살을 잡히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 응급구조 인력이 정말 촌각을 다투는 응급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전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우선이다. 이와 동시에 그는 응급구조사의 업무 환경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과 직결되는 만큼 단순한 인식 개선이나 호소를 넘어 제도적인 뒷받침이 마련도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차의 진입에 대해 강 대원은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상황이 수월해졌지만 아직까지도 출동을 나갈 때 차량들이 쉽게 비켜주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면서 "십수년째 호소만 하고 있는데 외국처럼 응급차량을 비켜야 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그러지 않을 시 제재를 가하는 등의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응급 상황에서 신고를 한 후 가능한 경우 보호자들은 응급처지를 하며 기다리고, 여유가 된다면 찾기 힘든 주택가의 경우 주변 보호자 한 명이 나와 응급구조대원들에게 길을 안내해 주면 '골든타임' 사수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강 대원은 "저는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를 선진국처럼 발전시켜야 하는 선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며 일을 해왔다"며 "이 직업을 택한 사람들, 생명을 다루는 응급구조사라는 사람들의 고귀한 뜻을 지지해 주시고, 응급구조사가 더욱 응급구조사답게 현장에서 생명의 최일선 보루로 있을 수 있게 국민들께서 응원해 주셨으면 감사하겠다"면서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 pja@fnnews.com 박지애 기자
2020-05-27 13:20:36배우 송민지가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송민지는 지난 29일 방송된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팀장 김주헌(정한모 역)의 아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특히 납치된 아이를 찾으려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무언가를 숨긴 채 자신이 테러의 범인이라 자백하는 김주헌과 마트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송민지. 두 명이 협박 받는 중임을 알아챈 강한나(한나경 역)는 이들을 도우려 노력했다. 하지만 송민지는 강한나를 믿지 못했고, 강한나는 경호원들을 피해 송민지 곁을 떠났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송민지는 엄마의 마음을 진솔하고 애절하게 그려내며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을 증명했다. 특히 그는 강한나와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디테일함을 살린 표정 연기로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에 송민지가 앞으로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신스틸러로 활약 중인 송민지. 그는 KBS1 '비켜라 운명아', KBS2 '아버지가 이상해', JTBC '무정도시', tvN '응답하라 1994'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slee_star@fnnews.com 이설 기자 사진=tvN '60일, 지정생존자'
2019-07-30 09:14:34#1. 마약, 폭력으로 점철된 삶을 살던 샘 칠더스는 충동적으로 부랑자를 살해할 뻔하다 회개, 열렬한 기독교 신자가 된다. 건축 사업을 벌이던 그는 2~3주간 봉사활동을 펼친다는 생각으로 수단으로 향한다. 하지만 내전이 벌어진 그곳에서 아이들이 반군에 납치되거나 희생당하는 모습에 절규하게 된다. #2.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인 데스몬드 도스는 ‘모두가 싸우는 전쟁에서 나 혼자 도망칠 수 없다’며 의무병으로 자진 입대한다. 집총과 안식일훈련 거부 등으로 동료·상관과 심각한 마찰을 빚지만 군사법원에서 ‘무기 없이 참전’을 허락받아 오키나와 전투가 펼쳐지는 핵소 고지에 배속된다. <머신건 프리처>와 <핵소 고지>는 거대한 폭력에 마주한 두 신자의 실제 이야기를 조명한다. 종교를 따르지만 인간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절망,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정반대의 방법을 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두 인물의 정체성은 영화 포스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죽어가는 전우를 무기 없이 짊어진 도스, 총을 쥔 채 공포에 떠는 아이 앞에 선 샘이 그렇다. 하지만 두 영화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단적으로 로튼토마토 기준으로 <머신건 프리처>의 신선도가 28%에 불과했다면 <핵소 고지>는 86%로 고평가를 받았다. 상업적인 성과도 각각 약 11억원, 2000억원으로 극단적으로 갈린다. <300>의 ‘레오니다스’ 제라드 버틀러가 샘을 연기했지만 살인→회개→절망→극복이란 심리변화가 만족스럽지 못한 게 사실이다. 여기에 수단에서 고아원을 짓게 된 까닭을 단순히 신의 계시라는 말로 ‘퉁’친 감독의 역량도 아쉽다. 반면 도스 역을 맡은 앤드류 가필드는 영화가 개봉된 해에 <사일런스>라는 종교 영화로 열연을 펼친 바 있다. 이 영화는 일본 ‘신자발견’을 소재로 가톨릭 신부의 신앙을 그렸다. <핵소 고지>에서 보여준 신념 가득한 연기는 <사일런스>를 통해 다진 경험의 결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무기 없는 위생병, 기관총을 든 전도사.. 폭력에 맞서는 상반된 선택 내전으로 인해 희생되는 아이들, 적의 총탄에 죽어가는 전우들. 끔찍한 전쟁 속에서 두 신자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샘은 소년병이 되는 아이들을 구하려 스스로 총을 들고 반군에 저항했고 도스는 무기 없이 밤새 전장을 누비며 동료들을 구출한다. 그렇다고 해서 샘과 도스 중 누가 더 고결하다곤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그들 모두 처절한 희생정신으로 총알이 빗발치는 사지 속에 스스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르게 본다면 남수단에서 의료봉사를 펼쳤던 고(故) 이태석 신부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신부가 신앙을 펼친 장소는 <머신건 프리처>에 가깝지만 그 방법은 <핵소 고지>와 유사하다.영화는 잔인한 장면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핵소 고지>에선 수류탄에 맞아 신체가 절단되고 선혈이 낭자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머신건 프리처>에서도 반군 지도자에 저항하다 입술이 도려진 여인, 지뢰로 인해 두 다리가 날아간 소년이 등장한다. 모두 샘과 도스가 맞서려는 폭력의 무자비함을 극대화한다. 다만 두 인물은 폭력 앞에서 신앙에 기대려고만 하지 않는다. 샘과 도스가 영웅적인 활약을 하게 된 계기는 종교지만 이를 가능케 한 원동력은 인간의 의지다. 도스가 군대에서 마찰을 일으킨 건 어릴 적 친형을 죽일 뻔하고,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향해 총을 겨눈 데 대한 충격 때문이다. 다시는 인명을 해치거나 총을 쥐지 않겠다는 개인적인 신념이 작용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샘 역시 아이들이 자신 같은 삶을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고아원을 짓는다. 반군에 의해 건물이 불탔을 때도 신앙으로 극복하지만 결국 총을 들고 만다. 더 이상 방법이 없었기 때문. 영화 실존인물인 샘 칠더스 역시 현실에서 “아이들이 고통 받고 죽어갈 때 나는 기도를 해야 하는가, 총을 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여기에 샘과 도스는 종교라는 울타리 밖에서 회의감에 빠지고 만다. 샘은 고아원 유지를 위해 재산을 처분하다 가족과 충돌한다. 수단의 상황에 무관심한 미국인들이 호화로운 파티를 즐기는 모습에 분노하고 계속되는 반군의 방해에 편집증적인 행동까지 보인다. 종국에는 살인에 무뎌지며 “하느님과 갈라선지 오래”라는 말까지 내뱉는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던 철학자 니체의 경고를 떠올리게 한다. <핵소 고지>에선 도스의 절망이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그는 영내 부조리까지 감수할 만큼 신앙을 지키려 한다. 그가 신에게 의문을 던진 건 단 한 번, 죽어가던 동료를 끝내 살리지 못하고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읊조리는 장면이다. ■인간을 통해 신념 회복.. 양심적 병역거부 두고 생각해 볼 영화들 두 주인공이 신념을 회복하는 과정은 신이 아니라 인간에 있다. 도스는 신의 음성 대신 포화 속에서 동료들의 절규를 듣고 전장으로 되돌아간다. 샘 역시 “증오로 마음이 가득 차게 두지 말아야 한다. 그건 악마가 승리한 것이며,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증오가 지배하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소년의 말로 절망에서 벗어난다. 결과적으로 도스는 전쟁터에서 죽어가던 군인 75명을 살려내고, 샘은 납치돼 끌려가던 아이들을 수없이 구출한다. 기적이라고 부를 만한 일들이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최근 <핵소 고지>는 관련 예시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머신건 프리처>도 함께 감상하고 생각해볼만한 영화다. 폭력 앞에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 집총을 거부했지만 수많은 생명을 살린 도스. 종교인으로서 살인이 죄악인줄 알면서도 아이들을 보호하려 총을 든 샘. 신앙과 신념을 지키고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두 사람이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탓이다. smw@fnnews.com 신민우 기자
2018-07-26 08:52:54개막작 '캡틴 판타스틱' 폐막작 '서울역' 한여름을 판타지아로 물들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오는 21일부터 31일까지 11일간 부천에서 열린다. 올해로 20회를 맞는 BIFAN은 배우 출신 감독 맷 로스의 장편영화 '캡틴 판타스틱'을 시작으로 역대 최다 편수인 총 49개국 302편이 상영된다. 폐막작은 '돼지의 왕' '사이비'를 통해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지켜온 연상호 감독의 좀비 호러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선정됐다. '캡틴 판타스틱'은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가 선정한 '2016 주목해야 할 10명의 감독'에 뽑힌 맷 로스의 두 번째 장편으로 시종일관 경쾌한 분위기의 가족 영화다. 깊은 산 속에서 아이 6명을 홀로 키우는 아주 독특한 아버지 비고 모텐슨과 그의 가족이 문명사회로 나오면서 겪는 이야기로,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최우수감독상을 받았다. '서울역'은 연 감독의 신작 좀비 애니메이션이다. 감독 특유의 감각적 연출을 제대로 살린 작품으로, 영화 '부산행'의 프리퀄로 영화 속 재난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알 수 있다. 주목할만한 상영작으로는 스페인 최고의 컬트 감독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의 블랙코미디 '마이 빅 나이트'(2015년), 클린트 이스트 우드의 딸 프란체스카 이스트우드 주연의 서부 스릴러극 '무법자와 천사들'(2016년), 사려 깊은 연출로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칠레의 성장영화 '라라'(2016년), 신나는 멕시코 코믹 납치극 '사랑의 불시착'(2016년), 장강을 터전으로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98일간의 진혼곡 '장강도'(2015년) 등이 있다. 특히 차오양 감독의 '장강도'는 제작기간 10년의 대작으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예술공헌상)을 받은 작품이다. 공포영화의 대가 구로사와 기요시의 화려한 귀환작인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2016년), 삶과 죽음에 대한 경쾌한 성찰을 담은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2016년)도 추천작이다. BIFAN의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16일부터 사전행사 '스타트 유어 판타지(Start Your Fantasy)'가 열려 흥을 돋울 예정이다. 홍대 일대를 뜨겁게 달군 밴드 황정민과 수많은 드라마·영화 OST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가수 나윤권 등이 여름밤을 감미롭게 수놓는다. 특히 23일에는 BIFAN 특별전 '데이빗 보위: 지구로 떨어진 검은별' 연계 프로그램으로 '데이빗 보위 헌정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2016-07-13 18:12:48한여름을 판타지아로 물들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오는 21일부터 31일까지 11일간 부천에서 열린다. 올해로 20회를 맞는 BIFAN은 배우 출신 감독 맷 로스의 장편영화 '캡틴 판타스틱'을 시작으로 역대 최다 편수인 총 49개국 302편이 상영된다. 폐막작은 '돼지의 왕' '사이비'를 통해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지켜온 연상호 감독의 좀비 호러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선정됐다. '캡틴 판타스틱'은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가 선정한 '2016 주목해야 할 10명의 감독'에 뽑힌 맷 로스의 두 번째 장편으로 시종일관 경쾌한 분위기의 가족 영화다. 깊은 산 속에서 아이 6명을 홀로 키우는 아주 독특한 아버지 비고 모텐슨과 그의 가족이 문명사회로 나오면서 겪는 이야기로,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최우수감독상을 받았다. '서울역'은 연 감독의 신작 좀비 애니메이션이다. 감독 특유의 감각적 연출을 제대로 살린 작품으로, 영화 '부산행'의 프리퀄로 영화 속 재난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알 수 있다. 개막작 '캡틴 판타스틱' 주목할만한 상영작으로는 스페인 최고의 컬트 감독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의 블랙코미디 '마이 빅 나이트'(2015년), 클린트 이스트 우드의 딸 프란체스카 이스트우드 주연의 서부 스릴러극 '무법자와 천사들'(2016년), 사려 깊은 연출로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칠레의 성장영화 '라라'(2016년), 신나는 멕시코 코믹 납치극 '사랑의 불시착'(2016년), 장강을 터전으로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98일간의 진혼곡 '장강도'(2015년) 등이 있다. 특히 차오양 감독의 '장강도'는 제작기간 10년의 대작으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예술공헌상)을 받은 작품이다. 공포영화의 대가 구로사와 기요시의 화려한 귀환작인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2016년), 삶과 죽음에 대한 경쾌한 성찰을 담은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2016년)도 추천작이다. BIFAN의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16일부터 사전행사 '스타트 유어 판타지(Start Your Fantasy)'가 열려 흥을 돋울 예정이다. 홍대 일대를 뜨겁게 달군 밴드 황정민과 수많은 드라마·영화 OST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가수 나윤권 등이 여름밤을 감미롭게 수놓는다. 특히 23일에는 BIFAN 특별전 '데이빗 보위: 지구로 떨어진 검은별' 연계 프로그램으로 '데이빗 보위 헌정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국내외 화제의 뮤지션들의 참여로 꾸며질 이번 공연은 대한민국 모던록의 전설 이승열과 한국을 대표하는 일렉트로닉 하우스 라운지 그룹 '클래지콰이 프로젝트'의 리더 클래지가 결성한 프로젝트팀 욜훈(Yolhoon), 해외에서 먼저 음악성을 인정받은 일렉트로 록 듀오 프롬 디 에어포트(From The Airport)가 무대를 빛낼 예정이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폐막작 '서울역'
2016-07-13 10:16:56주변인. 둘 이상의 이질적인 사회나 집단에 동시에 속해 양쪽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골프계에 본의 아니게 이런 주변인의 삶을 살아온 선수가 있다. 왕정훈(21·사진)이다. 왕정훈은 지난 8일 막을 내린 유럽프로골프(EPGA)투어 모리셔스오픈서 우승을 차지했다. 직전 대회인 하산 2세 트로피에 이어 2주 연속 유럽투어 우승이었다. 그러면서 '이방인'이었던 그는 일약 한국 남자골프의 '기대주'로 신분이 격상됐다. 하지만 오늘이 있기까지 그의 골프 여정은 험난한 시련의 연속이었다. 경제적 부담과 과열경쟁에 의해 그는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게 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필리핀으로 골프 유학을 떠난 것. 그로부터 3년이 지나 그는 국내로 돌아와 아버지 왕영조씨(59)의 고향인 전남 보성에 소재한 득량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국내 각종 주니어대회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당시 라이벌이 현재 미국프로골프(PGA)투어서 활동하고 있는 김시우(21.CJ)다. 그러나 대회서 좋은 성적을 낼수록 그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극에 달했다. 결국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필리핀의 아마추어 메이저대회를 석권했다. 그러자 거기서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집단적 시기가 끊이질 않았다. "양국 아마추어를 평정했으니 더 이상 아마추어에 머물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그의 나이 16세 때였다. 그러나 프로 데뷔 무대는 국내가 아니었다. 나이 제한이 없는 중국이었다. 중국 투어에 퀄리파잉스쿨 2위로 합격한 그는 루키 시즌에 상금왕을 차지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기회의 땅'이나 다름없는 아시안투어 진출 기회를 잡는다. 아시안투어 루키였던 2013년에는 상금 순위 76위에 그쳤다. 하지만 그 이듬해 21위, 그리고 만20세였던 지난해에는 상금 순위 9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아시안투어가 유럽투어와 공동 주관으로 개최된 대회가 많아 빅리그인 유럽투어 대회 진출 기회도 잡았다. 2주 연속 우승은 그렇게 해서 잡은 기회를 살린 것이어서 의미가 더욱 컸다. 아버지 왕씨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지만 아이의 마음의 상처가 컸다"고 힘들었던 시기를 말한다. 왕정훈에게 있어 골프란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에 의해 골프에 입문했고 배웠기 때문이다. 아들을 지도하기 위해 티칭 자격증까지 획득한 아버지의 독특한 지도 방법은 일반적인 국내 골프 엘리트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필리핀 유학도 그런 맥락이다. 왕영조씨는 "경제적 부담도 부담이지만 과열경쟁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1년에 20~30개 대회를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렇게 혹사하다간 선수 생활을 오래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 국가대표를 거쳐 프로로 전향하는 이른바 '국내 제도권 골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왕정훈은 그 이후부터 아버지와 동고동락했다. 스윙을 비롯해 웨이트와 멘탈 훈련까지 아버지가 도맡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골프에 입문해서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다른 프로의 지도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원포인트 레슨 조차도 없다. 물론 아버지가 모중경(45)과 김경태(30)의 성공을 예로 들면서 "훌륭한 스승이 있으면 레슨을 받아 보라"고 권유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다. 아버지의 이론과 생각에 무한신뢰를 한다는 방증이다. 왕정훈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 살 위인 캐디 형(호주동포 고동우)과 둘이서 투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또한 아버지의 뜻이다. 프로로 전향한 뒤 1년6개월간 투어를 동행했던 아버지는 올해로 3년째 투어에서 모습을 볼 수 없다. 일찌감치 자립심을 길러주기 위해서란다. 그는 어려서부터 혼자 부딪혀 가면서 많은 걸 해결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전혀 생소하지 않다. 유럽투어서 활동하는 선수 중에서 부모가 따라다니는 선수가 없다는 것도 이유다. 아버지는 그런 환경은 선수들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슨도 곁에서 하지 않는다. 전화로 모든 게 이뤄진다. 이때 금기시 하는 것이 있다. 대회 도중 통화 금지다. 5개 정도 대회를 마치고 나서 TV중계로 모니터링한 내용을 토대로 문제점을 지적받는다. 레슨은 아주 짧으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세세한 지적은 오히려 혼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지적을 받은 부분은 대회 도중 실전을 통해 고쳐 나간다. 아버지는 그 다음 대회서 자신이 지적한 문제점이 수정된 것을 확인하고 흡족해한다. 작년에는 세계랭킹에 의해 국내 3개 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리고 두 차례 공동 3위에 입상하면서 상금 순위 17위에 올라 올 시즌 국내 시드도 확보했다. 대회 규모가 크건 적건 간에 국내 대회에 자주 출전하려 했다. 하지만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제는 유럽투어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다. 왕정훈은 "이제부터 큰 대회가 대부분이다. 열심히 해서 유럽투어 파이널에 진출하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그는 또 "여세를 몰아 유럽투어 상금 순위를 최대한 끌어올려 리우 올림픽 출전과 내년 4대 메이저대회 진출 티켓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왕정훈이 첫 우승을 했을 때 '운'으로 치부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주에 두번째 우승을 하자 그에 대한 재평가가 잇따랐다. 왕정훈은 '준비된 스타' '흙속의 진주'였던 것이다. 이는 그의 경기 데이터로도 충분히 가늠되고도 남는다. 왕정훈은 작년에 리커버리율과 벙커 세이브율 등 쇼트 게임 부문서 아시안투어 1, 2위를 다퉜다. 쇼트 게임 능력이 탁월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강한 멘탈까지 갖췄다. 하지만 그를 '월드스타' 반열에 오르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다른 데 있다. 다름 아닌 장타다. 신장 180㎝, 체중 72㎏의 그리 건장하지 않은 체격조건에서 드라이버샷 평균 비거리가 300야드를 찍는다. 이는 PGA투어와 유럽투어의 평균치에 해당한다. 스윙 스피드는 대략 117마일이지만 빠른 회전력으로 장타를 만들어낸다. 왕정훈은 유럽투어 선수와 거리면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 제아무리 쇼트 게임이 좋아도 장타가 수반되지 않으면 투어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왕정훈이 미국이나 유럽 무대서 경쟁력이 충분한 이유다. 그런 그가 19일(한국시간) 로리 매킬로이 주최로 열리는 아일랜드오픈서 3주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그 결과가 기다려진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2016-05-18 17:25:44'주변인' 둘 이상의 이질적인 사회나 집단에 동시에 속하여 양쪽의 영향을 함께 받으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골프계에 본의 아니게 이런 주변인의 삶을 살아온 선수가 있다. 왕정훈(21)이다. 왕정훈은 지난 8일 막을 내린 유럽프로골프(EPGA)투어 모리셔스오픈서 우승을 차지했다. 직전 대회인 하산 2세 트로피에 이어 2주 연속 유럽투어 우승이었다. 그러면서 '이방인'이었던 그는 일약 한국 남자골프의 '기대주'로 신분이 격상됐다. 하지만 오늘이 있기까지 그의 골프 여정은 험난한 시련의 연속이었다. 경제적 부담과 과열경쟁에 의해 그는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게 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필리핀으로 골프유학을 떠난 것. 그로부터 3년이 지나 그는 국내로 돌아와 아버지 왕영조(59)씨의 고향인 전남 보성군에 소재한 득량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국내 각종 주니어대회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당시 라이벌이 현재 미국프로골프(PGA)투어서 활동하고 있는 김시우(21 ·CJ)다. 그러나 대회서 좋은 성적을 낼수록 그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극에 달했다. 결국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필리핀의 아마추어 메이저대회를 석권했다. 그러자 거기서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집단적 시기가 끊이질 않았다. "양국 아마추어를 평정했으니 더 이상 아마추어에 머물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 들여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그의 나이 16살 때였다. 그러나 프로 데뷔 무대는 국내가 아니었다. 나이 제한이 없는 중국이었다. 중국 투어에 퀄리파잉스쿨 2위로 합격한 그는 루키 시즌에 상금왕을 차지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기회의 땅'이나 다름없는 아시안투어 진출 기회를 잡는다. 아시안투어 루키였던 2013년에는 상금 순위 76위에 그쳤다. 하지만 그 이듬해는 21위, 그리고 만 20세였던 작년에는 상금 순위 9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아시안투어가 유럽투어와 공동 주관으로 개최된 대회가 많아 빅리그인 유럽투어 대회 진출 기회도 잡았다. 2주 연속 우승은 그렇게 해서 잡은 기회를 살린 것이라 의미가 더욱 컸다. 아버지 왕영조씨는 "상황이 발생했으니까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지만 아이의 마음의 상처가 컸다"고 힘들었던 시기를 말한다. 왕정훈에게 있어 골프란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에 의해 골프에 입문했고 배웠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왕정훈 골프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아들을 지도하기 위해 티칭 자격증까지 획득한 아버지의 독특한 지도 방법은 일반적인 국내 골프 엘리트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필리핀 유학도 그런 맥락이다. 왕영조씨는 "경제적 부담도 부담이지만 과열경쟁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년에 20~30개 대회를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렇게 혹사하다간 선수 생활을 오래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 국가대표를 거쳐 프로로 전향하는 이른바 '국내 제도권 골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왕정훈은 그 이후부터 아버지와 동고동락했다. 스윙을 비롯, 웨이트와 멘탈 훈련까지 아버지가 도맡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골프에 입문해서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다른 프로의 지도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원포인트 레슨 조차도 없다. 물론 아버지가 모중경(45)과 김경태(30·신한금융그룹)의 성공을 예로 들면서 "훌륭한 스승이 있으면 레슨을 받아 보라"고 종용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다. 아버지의 이론과 생각에 무한신뢰를 한다는 방증이다. 왕정훈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 살 위인 캐디 형(호주 동포 고동우)과 둘이서 투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또한 아버지의 뜻이다. 프로로 전향한 뒤 1년6개월간 투어를 동행했던 아버지는 올해로 3년째 투어에서 모습을 볼 수 없다. 일찌감치 자립심을 길러주기 위해서란다. 그는 어려서부터 혼자 부딪혀 가면서 많은 걸 해결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전혀 생소하지 않다. 유럽투어서 활동하는 선수 중에서 부모가 따라다니는 선수가 없다는 것도 이유다. 아버지는 그런 환경은 선수들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슨도 곁에서 하지 않는다. 전화로 모든 게 이뤄진다. 이 때 금기시 하는 것이 있다. 대회 도중 통화 금지다. 5개 정도 대회를 마치고 나서 TV중계로 모니터링한 내용을 토대로 문제점을 지적받는다. 레슨은 아주 짧으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세세한 지적은 오히려 혼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지적을 받은 부분은 대회 도중 실전을 통해 고쳐 나간다. 아버지는 그 다음 대회서 자신이 지적한 문제점이 수정된 것을 확인하고 흡족해한다. 작년에는 세계랭킹에 의해 국내 3개 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리고 두 차례 공동 3위에 입상하면서 상금 순위 17위에 올라 올 시즌 국내 시드도 확보했다. 대회 규모가 크건 적건 간에 국내 대회에 자주 출전하려했다. 하지만 그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제는 유럽투어에 전념해야하는 상황이다. 왕정훈은 "이제부터 큰 대회가 대부분이다. 열심히 해서 유럽투어 파이널에 진출하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그는 또 "여세를 몰아 유럽투어 상금 순위를 최대한 끌어 올려 리우 올림픽 출전과 내년 4대 메이저대회 진출 티켓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왕정훈이 첫 우승을 했을 때 '운'으로 치부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주에 두 번째 우승을 하자 그에 대한 재평가가 잇따랐다. 왕정훈은 '준비된 스타', '흙속의 진주'였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경기 데이터로 충분히 가늠되고도 남는다. 왕정훈은 작년에 리커버리율과 벙커 세이브율 등 쇼트 게임 부문서 아시안투어 1, 2위를 다투었다. 쇼트 게임 능력이 탁월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강한 멘탈까지 갖췄다.하지만 그를 '월드스타' 반열에 오르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다른 데 있다. 다름 아닌 장타다. 신장 180cm, 체중 72kg의 그리 건장하지 않은 체격조건에서 드라이버샷 평균 비거리가 300야드를 찍는다. 이는 PGA투어와 유럽투어의 평균치에 해당된다. 스윙 스피드는 대략 117마일이지만 빠른 회전력으로 장타를 만들어낸다. 전체적으로 몸의 유연성은 좋지 않지만 골프에 필요한 유연성은 타고 난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왕정훈은 유럽투어 선수와 거리면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 제아무리 쇼트 게임이 좋아도 장타가 수반되지 않으면 투어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왕정훈이 미국이나 유럽무대서 경쟁력이 충분한 이유다. 그런 그가 19일(한국시간) 아일랜드에서 로리 매킬로이 주최로 열리는 아일랜드오픈서 3주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그 결과가 기다려진다. golf@fnnews.com 정대균 기자
2016-05-18 07:33:48가수 타블로가 봉태규의 편지에 눈물을 쏟아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5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KBS Joy '이소라의 두 번째 프로포즈'에 출연한 타블로와 함께 앨범의 수록곡 '고마운 숨'을 피처링한 봉태규가 출연해 우정어린 무대를 연출했다. 이날 방송에서 타블로는 사랑하는 아내 강혜정을 봉태규가 소개해준 사실을 밝히며 "힘들었던 지난 시간동안 매일 나를 찾아와 옆에 있어줬다. 나를 두 번 살린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봉태규는 몰래 준비한 타블로를 향한 편지를 낭독했다. 그는 편지에서 "형을 알고 지낸 중 지난 2년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형은 결혼했고 아빠가 됐고, 힘든 일도 있었다"며 "나는 옆에서 지켜봤을 뿐인데도 가슴 한 쪽이 저민다"고 전했다. 이어 "내 가까운 사람들이 고립돼 아파하는데도 내가 해줄 수 있는게 많이 없더라. 그저 내가 형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라보고 들어주는 것 뿐 이었다. 그 때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고 말하는 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 해준 게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봉태규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타블로가 옆에 있어준 것을 회상하며 "난 앞으로도 형이 또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기꺼이 내 시간을 내어주고 들어주고 지켜봐 주겠다. 형을 지탱해 준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크고 단단한 것인지 알았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봉태규는 "지난 날을 추억하고 다행이라 얘기할 수 있어 기쁘다. 다시 가수 타블로로 돌아온 걸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편지를 마무리했다. 이를 들은 타블로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눈물을 흘려본게 오랜만이다. 고맙다"며 두 사람의 우정을 과시했다. 한편 타블로는 학력위조 논란을 딛고 지난 10월 솔로앨범 '열꽃'으로 컴백했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soarhi@starnnews.com강혜인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관련기사 ▶ 발효가족, 청각+시각 곁들어진 한정식 등장 “군침도네” ▶ ‘천 번의 입맞춤’ 김소은-차화연 뇌구조 등장 “깨알재미” ▶ 이수근-김병만, ‘상류사회’ MC발탁 “온갖 택배 다 받습니다” ▶ 하광훈,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무대 심사 조작된 것” 폭로 ▶ '주병진 토크쇼' 첫 게스트, 박찬호 확정..25일 녹화 진행
2011-11-16 21:10:22▲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무용수를 꿈꾸는 탄광촌 소년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수작이다. 외국에 가면 무슨 작품을 보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뉴욕으로 떠나는 회사 출장길에 혹은 휴가차 떠난 런던 여행길에 뮤지컬 한편 볼 시간이 남는데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다는 설명이다. 공연에 대한 감상이야 개개인의 성격이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마련이어서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말 건네기 어렵지만 추천해도 거의 원망을 듣지 않게 되는 ‘보험’같은 뮤지컬 작품이 있다. 최근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표구하기 어렵다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다. 코믹한 상황 전개에 박장대소하다 어린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에 눈물 훔치게 되는 것이 묘미인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바로 그 영국 영화를 무대용 뮤지컬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영화가 제작된 지난 2000년으로 ‘네 번의 결혼식 한 번의 장례식’, ‘풀 몬티’,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과 더불어 21세기 영국 영화의 붐을 일으킨 대표적인 히트작으로 손꼽힌다. 약 500만달러(약 60억원)의 제작비를 쓰고 거의 2200만달러(약 264억원)를 벌어들여 4배가 넘는 수익을 달성했는데 이 마저도 파생상품의 부가가치는 제외한 수치이니 현대 사회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흥행 영상물이 지닐 수 있는 경제적 파급력을 굳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뮤지컬로 만들어진 ‘빌리 엘리어트’는 요즘 공연가의 최신 트렌드인 무비컬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고 있다. 처음 이 영화가 극장용 뮤지컬로 제작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많은 마니아들은 일찍부터 큰 관심을 보였는데 두말할 나위 없이 원작 영화 자체가 음악과 춤이라는 요소에서 성공적인 무대화에 대한 가능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으로 환생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지난 2005년 5월 11일 런던의 빅토리아 팔레스 극장에서 처음 막을 올렸고 이후 브로드웨이는 물론 호주 시드니나 멜버른에서도 공연이 시작되는 등 지금까지 초대박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뮤지컬로 제작된 ‘빌리 엘리어트’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스티븐 달드리가 연출을 맡았고 영국의 내로라하는 싱어송라이터인 엘튼 존의 작곡을 더해 완성시켰다. 원작이었던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사회적 리얼리즘이 가미된 성장영화다. 사회적 리얼리즘이란 코믹한 설정이나 흥미로운 이야기 안에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적인 고민을 담아 풍자해내는 일련의 경향을 말한다. 배꼽 잡는 드라마와 코믹한 상황 전개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입가를 맴도는 알싸한 뒷맛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이런 성향의 작품들이 지니는 묘미다. 공장이 문을 닫아 갈 곳이 없어진 노동자 계급의 남성들이 이제는 경제력을 지니게 된 여성들 앞에서 알몸이 되어 스트립쇼를 하는 ‘풀 몬티’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만하다. 늘씬한 근육에 능숙한 춤사위가 아니라 아랫배 나온 중년의 몸매에 어설픈 몸동작을 얹은 출연자들의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연민을 자아낸다. ▲ 영화에서 주인공 빌리 역을 맡은 제이미 벨이 뮤지컬 무대에도 서기를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그의 캐스팅은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뮤지컬로 만들어진 ‘빌리 엘리어트’도 마찬가지다. 상업 무대로서는 드물게 뮤지컬 안에 사회적 리얼리즘을 반영한 이 작품은 무노동 무임금을 주창하며 영국병을 치료했다는 대처 정권의 또 다른 단면을 시골 탄부의 가정에 맞춰 풍자하고 있다. 왕립발레아카데미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은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달려간 노조 사무실에서 사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결된 마지막 파업이 절묘하게 교차된다든지,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파업 현장을 떠나 굳은 표정으로 탄광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뒷모습 등은 객석에 무거운 정적을 드리울 정도로 깊은 무게감을 완성해낸다. 화려하거나 환상적이지도 또 결코 달콤하지도 않지만 콧등 시큰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우리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만날 수 있는 씁쓰름한 사회풍자에도 비할 만하다. 또 다른 영화와의 공통점이라면 무대용 뮤지컬에도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춤과 연기 보는 재미가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이다. 원작 자체가 워낙 인기를 누렸던 탓에 특히 주인공인 빌리 역은 오디션 때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부 영화팬들은 영화에서 등장했던 아역 배우 제이미 벨이 무대에서도 나오길 원했지만 열한 살이었던 영화 제작 때보다 지금은 청년으로 훌쩍 자라버린 터라 결국 성사되진 못했다. 대신 영국 전역에서 펼쳐진 오디션을 통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세 소년, 제임스 로마스와 조지 맥과이어 그리고 리암 모어가 트리플 캐스팅됐는데 겨우 열 살 남짓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역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완벽히 묘사해내 영국 무대 최고의 영예인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의 남우주연상을 공동수상했다. 물론 역대 최연소 수상자들이다. 무비컬 ‘빌리 엘리어트’의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대서양 건너 시작된 브로드웨이 공연도 지난 6월 토니상을 휩쓰는 파란을 연출했고 주인공 꼬마들의 남우주연상 수상 신드롬도 고스란히 재연됐다. 한국어 공연도 올려질 예정인데 요즘엔 빌리가 강원도 사투리를 써야한다는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 팀의 고집 때문에 우리 제작사 측이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어련히 알아서 잘 만들겠지만 이왕이면 알싸한 사회적 리얼리즘의 묘미를 잘 살린 라이선스 뮤지컬로 완성됐으면 좋겠다. 내년 여름 막을 올릴 한국의 빌리는 얼마나 많은 관객을 울리고 웃길까. 행복한 궁금증에 겨울나기가 벌써부터 지루한 요즘이다.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2009-10-29 16:3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