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한우보다 '득근'입니다"... 회식 대신 헬스장 택한 MZ의 계산법
"법카로 맛있는 거 먹자는 게 꼰대인가" (김 부장)
"퇴근 후는 제 시간... 고기는 내 돈으로 먹을게요" (이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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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토요일 아침이다. 지난주 '칼퇴' 전쟁을 치른 사무실, 이번엔 직장 내 최대 난제인 '회식'이다.
"술 강요 안 한다, 맛있는 거 먹자"며 꼬시는 김 부장과 "퇴근 후엔 놓아달라"는 이 사원의 창과 방패 같은 대결이다.
◇ "오늘 한우 회식 어때?"... 돌아온 건 싸늘한 침묵
목요일 오후 4시. 김 부장(48·팀장)이 들뜬 목소리로 정적을 깼다. "자자, 다들 고생했는데 오늘 저녁에 내가 쏜다! 회사 근처 한우 맛집 예약할까? 법카 찬스다!"
김 부장은 내심 환호를 기대했다. 평소 내 돈 주고 사 먹기 힘든 1인분 5만 원짜리 꽃등심 아닌가. 하지만 사무실 반응은 미지근했다. 눈치 빠른 과장급만 "오! 좋습니다"라고 호응할 뿐, 막내 이 사원(27)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부장님, 저는 선약이 있어서 빠지겠습니다."
"무슨 약속? 중요한 건가?" "네, PT(퍼스널 트레이닝) 예약해 놔서요. 위약금 때문에 못 갑니다."
김 부장은 힘이 빠졌다. 술을 억지로 먹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최고급 고기를 먹여주고 격려하겠다는 건데 헬스장 핑계를 대며 거절당하다니. 그는 '내가 사주면서도 눈치를 봐야 하나' 싶어 서글퍼졌다.
◇ 김 부장의 항변: "밥 먹으며 푸는 게 한국 사회 정(情)이다"
김 부장에게 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다. 딱딱한 사무실을 벗어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그동안 쌓인 오해도 풀고, 인간적인 유대감을 쌓는 '업무의 연장'이자 '윤활유'다.
김 부장은 "옛날엔 '회식한다'고 하면 다들 굶고 기다렸다. 공짜로 비싼 고기 먹는 게 최고의 복지 아니었나"라며 "요즘 친구들은 사준다고 해도 싫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토로했다.
그는 "매일 하자는 것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 그것도 거절하면 조직 생활을 하겠다는 건지 혼자 살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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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원의 반론: "불편한 자리의 한우보다 편한 자리의 컵라면"
반면 이 사원에게 회식은 '공짜 밥'이 아니라 '무급 초과 근무'일 뿐이다. 상사의 무용담을 들어주며 고기를 굽고, 리액션을 해야 하는 자리가 어떻게 휴식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사원은 "퇴근 후 시간은 운동을 하든 넷플릭스를 보든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싶다"며 "비싼 고기요? 제 돈 주고 편한 친구랑 먹는 게 훨씬 맛있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운동 스케줄도 자기 관리의 일환인데, 당일 통보 회식 때문에 내 계획이 망가지는 건 참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 달라진 회식 문화, 타협점은 없나
코로나19를 거치며 회식 문화는 급격히 바뀌었다.
'부어라 마셔라'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참석 강요'의 불씨는 남아있다.
구인구직 플랫폼 조사에 따르면 2030 직장인이 꼽은 최악의 복지는 '보여주기식 회식'이었다. 반면 관리자들은 '소통 부재'를 호소한다.
"고기 사주는 좋은 상사"가 되고 싶은 김 부장과 "저녁 있는 삶을 달라"는 이 사원. 이번 주말, 당신은 회식 제안에 설레는가, 아니면 핑계 댈 거리를 찾고 있는가.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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