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이세돌-알파고 대결과 오승환의 '新手'

MLB서 박병호와 맞대결 
새 구종 'SF볼'로 삼진
日서 2년 연습 끝에 터득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이세돌-알파고 대결과 오승환의 '新手'
오승환

바둑 프로기사들은 대개 공동 연구를 한다. 바둑계는 신수(新手·바둑이나 장기에서 일반적으로 두지 않는 새로운 수)의 경연장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수가 등장한다. 이런 변화에 홀로 대처하기란 힘에 겹다. 그래도 이세돌은 혼자 공부한다. 공동연구실이나 국가 대표 훈련장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세돌은 천재다. 남의 흉내를 거부한다. 스스로 독창적인 수를 만들어낸다. 그의 신수를 두고 프로기사 여럿이 모여 연구한다. 이세돌은 알파고에게 3연패한 후 꼬박 밤을 새웠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동료 기사들을 불러 함께 수를 연구했다.

알파고는 1202개의 슈퍼컴퓨터 연합군이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학습하여 신(神)의 경지에 이르렀다. 탐색 알고리즘에 직관 기능까지 추가했다. 하지만 바둑 9단도 입신(入神)이다.

이세돌은 양신(兩神) 대결 4국에서 이겼다. 연구는 공동으로 했지만 실행은 단독이다. 알파고는 여전히 연합군이다. 이세돌의 승리는 상대의 예측 능력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학습한 수많은 경우의 수에 해당되지 않는 통렬한 일점돌파. 그 한수가 알파고를 물리쳤다.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를 이겼다. 오승환은 1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로저딘 스타디움서 벌어진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서 박병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완승이다.

박병호는 국내 프로야구서 오승환에게 14타수 2안타(1할4푼3리)로 약했다. 그러나 2안타 가운데 한 방이 홈런이었다. 그만하면 마무리 투수를 혼내준 셈이다.

미국 무대의 첫 대결은 완패. 이유는 처음 본 구질 때문이었다. 신수(新手)에 당한 셈이다.

오승환은 국내서 활약할 당시 투 피치 투수였다. 직구와 슬라이더 두 가지 구종만 구사했다. 박병호의 머릿속 시각 피질에 입력된 오승환의 구종은 이 두 가지뿐이다. 그런데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 공은 전혀 낯선 궤적이었다. 스플리트 핑거 패스트볼(SF). 이른바 반 포크볼이다.

검지와 중지를 조금만 벌려 던지는 SF볼은 직구처럼 오다가 뚝 떨어진다. 포크볼보다 빠르고 예리하다. 오타니 쇼헤이(니혼 햄),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 등 일본 투수들이 잘 던지는 구종이다. 일본 생활 2년 동안 오승환이 새로 장착한 신무기다.

오승환은 지난해 시즌 초반부터 SF볼을 던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에 익지 않아 고전했다. 블론 세이브가 늘어났다. 투수들이 새 구종을 자유자재로 던지려면 대략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2015년 4월 16일 주니치와의 원정경기. 한 점차 리드 상황서 9회 말 3명의 좌타자가 잇달아 등장했다. 오승환은 볼카운트 2-2에서 SF볼로 첫 타자 오시마를 삼진 처리했다. 5월 21일 요미우리전서는 역시 한 점차 승부서 9회 초 2사 2, 3루의 위기를 맞았다. 오승환은 대타 하시모토를 맞아 직구, SF볼 배합으로 스탠딩 삼진을 이끌어냈다.

오승환은 15일 현재 4경기에 나와 4⅓이닝 무안타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오승환은 전 소속팀 한신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을 건넜다. 개발한지 2년 된 신무기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다. 진화하는 인간은 확실히 인공지능(AI)보다 위대하다.

texan50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