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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인물우표

[여의나루] 인물우표

우정사업본부가 다음 달에 김수환 추기경과 성철 스님 인물우표를 발행한다고 한다. 현대사를 기리는 취지로 시작한 인물우표 시리즈로, 작년에는 이병철과 정주영 두 경제계 인사의 우표를 발행했는데 올해는 종교계 인사로서 두 분을 선정한 것이다.

우표가 탄생한 것은 1840년 영국에서였다. 개인 간의 서신교환에 일일이 돈으로 정산하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균일요금제의 우표를 첩부하자는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창안됐던 것이다. 세계 최초의 우표는 당시 빅토리아 영국 여왕의 옆모습을 담은 것으로 검은색(Penny Black)과 푸른색(Pence Blue)의 두 종류가 발행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884년 신식 우편제도를 도입하면서 당시 화폐로 5문짜리인 '문위(文位)우표'가 처음 발행됐다.

우표는 발행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표현하고 있는 아주 훌륭한 기록이며 예술적 가치도 높다. 그렇기 때문에 우표수집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으며 우표수집가 간에 연대도 끈끈하다. 필자는 우표를 수집하지는 않지만 우표가 지니는 역사적 가치, 또 그 예술적 가치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우표는 다양한 주제를 담아 발행돼 왔는데 역사적 유물이나 명승지, 역사적 인물, 자연, 동식물, 의미 있는 행사 등 범위가 상당히 넓어 가히 그 시대를 담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올해의 인물우표 주인공인 이 두 분은 참으로 우리에게 많은 존경심과 그리움을 품게 한다. 성철 스님의 청빈하고 절제된 삶과 그를 통한 실천적 메시지는 불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청명한 울림이었고, 모두가 따르고 존경한 큰 어른이었다. 물질과 경쟁과 속도에 지친 우리들에게 눈앞의 일상이 아닌 높고 숭고한 가치와 깨달음을 추구하도록 일깨워 주는 울림이었고 마음 한구석 의지가 되는 버팀돌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당신 스스로를 '바보'라 칭하시며 몸을 낮추시고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가서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던 진정한 사도요, 목자의 표상이셨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 편에 서려 노력하시고 또 불의에 항거해 독재정권에 맞서는 용기를 낸 분이다. 그러면서도 소박하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셨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김 추기경의 모습이 있다. 언젠가 한 행사장에 입장하시다가 건물 입구 층계에 늘어서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보시더니 흐뭇한 할아버지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뜰 줄을 모르던 그 모습이다. 높고 어려워만 보이던 분이 거기서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과 교감하고 일일이 보듬던 모습은 그분의 하얀 수단, 선명한 주홍색 허리띠와 함께 지금도 선명하게 뇌리에 각인돼 있다.

존경할 만한 어른이 절실한 지금이다. 우리나라는 전후의 폐허로부터 산업화에 성공하고, 정보기술(IT) 강국과 한류의 나라로 발돋움했지만 정작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행복도는 그렇게 높지 않을 것 같다. 화려해 보이는 외형에 걸맞게 우리의 내면이 그만큼 충실하게 갖춰지고 성숙해졌는지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오히려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물질적 가치만 추구하게 돼 정신적 가치, 사람에 대한 존중, 신뢰와 공동체 의식 등의 미덕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교육 과정마저 인성교육보다는 점수와 학벌 위주로 바뀌다 보니 아이들은 성적 경쟁에 내몰리고 양보와 배려, 협동이나 절제의 정신은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그 결과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됐다.

이런 시기에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존경받던 두 분을 기리는 인물우표 발행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분들의 가르침대로 물질적 가치가 아닌 인생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자비와 사랑, 겸손의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기로 우리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김대희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