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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사명 이야기(11)] 광주요, "전통 도자기 장인정신 잇자"

당대 최고 도공들 모아 복원

[기발한 사명 이야기(11)] 광주요, "전통 도자기 장인정신 잇자"

우리나라의 도자기를 시작으로 전통주와 한식을 세계 무대에 알려온 회사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광주요다.

광주요의 조태권 회장은 "도자기를 만들다 보니 도자기에 담기는 음식과 이에 어울리는 전통주까지 만들게 됐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고급 증류주 '화요'와 한식당 '비채나'였다. 이렇듯 우리나라 식문화의 고급화에 앞장서온 광주요의 행보는 장인정신을 이어가자는 사명의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광주요 사명의 유래는 196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조태권 회장의 아버지이자 창업주인 고 조소수 선생은 18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성공한 사업가였다. 조 선생은 일본 상류층 인사의 집에서 쓰는 찻잔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된다. 한국에서 넘어간 찻잔 등 다도 제품이 일본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었던 것. 당시 일본 자기 문화는 임진왜란 이후 끌려간 우리나라 도공들에 의해 상당 수준으로 올라와 있었다고 한다.

이에 조 선생은 "한국에서 자기 문화를 다시 부흥시켜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면서 골동품 수집과 함께 일본의 명망 있는 자기 관련 인사를 찾아다니며 본격적인 연구에 나섰다. 일본을 오가던 조 선생은 한국에 정착, 1963년 광주관요의 전통이 남은 경기 이천에 터를 잡는다. 이 지역 일대는 15세기 500여년 동안 조선왕실 자기를 구웠던 관요, 즉 광주분원이 자리했던 유서 깊은 지역이었다. '관요'란 조선 왕실에 진상하던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는 곳을 말한다.

조 선생은 광주관요의 가마가 폐쇄된 지역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도공을 모으고 '일제강점기 이후 끊어진 한국 전통도자기 장인정신을 이어가자'는 의미에서 사명을 '광주요'라 짓는다.

조 선생은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철저하게 분업 체제를 유지했던 전통 도자업계의 분야별 장인들을 찾아 수년 간 전국을 뒤졌다. 덕분에 당대 최고의 도공들이 광주요로 모여들었고, 실험과 연구 끝에 전통 자기의 색과 형태 복원에 성공한다.

지난 1988년 조 선생이 타계하자 조태권 회장이 회사를 물려받았다. 조태권 회장은 '도자기란 일상 속에서 자유롭게 써야 가치가 있다'는 신념 아래 전통 도자기의 대중화를 선언한다. 소량생산이라는 전통 수공예 도자의 한계를 딛고 물레에서 태어난 전통 자기의 형태와 질감, 색감을 재현할 수 있는 대량생산 시스템 구축에 성공했다.


광주요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도 놓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미쉐린 3스타 셰프 토마스 켈러와 라인 개발을 시작으로 레스토랑 전용 식기 개발에 나섰다. 쿠팡, 네이버 리빙윈도우 등 온라인까지 유통 채널을 확대하며 대중적 라인도 다양하게 선보이는 등 소비자 맞춤 경영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