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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野 집단소송법 발의.. 경영 위축 없어야

소비자 보호 필요하지만 소송 남발 방지책 마련을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이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무겁게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집단소송법 제정안이 26일 박영선 의원(더불어민주당)에 의해 대표발의됐다. 박 의원은 "폭스바겐이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약 17조5000억원을 배상하겠다고 하면서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배상계획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 법이 허술하기 때문"이라고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박 의원은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법안도 지난달 발의한 바 있다.

집단소송법은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를 쉽게 구제받을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이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직접 소송을 내서 이겨야만 배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집단소송법이 도입되면 미국 소비자들처럼 소송이 끝나기도 전에 합의를 통해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피해 집단의 대표가 소송을 하면 그 판결의 효력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에게도 인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증권 분야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를 모든 분야에 제한 없이 허용하자는 것이 새 법안의 취지다.

집단소송제의 또 하나의 핵심은 입증 책임이다. 피해자가 입증 책임을 지는 일반 소송제도와 달리 가해자가 입증 책임을 진다.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경우 역으로 가해자가 피해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자의 피해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만큼 배상을 받기가 쉬워진다.

문제는 집단소송제가 긍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고 경제 활력을 저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소송이 남발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집단소송을 전담하는 '전문 소송꾼'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집단소송은 소송가액이 크기 때문에 일확천금을 노리고 소송을 부추겨 '기획소송' '묻지마 소송'이 봇물을 이루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같은 소송 남발은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소송비용을 증가시켜 기업에 이중의 부담을 가져온다. 우리보다 앞서 이 제도를 도입한 미국도 소송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집단소송 등을 대비하는 데 지출한 비용은 지난 2010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8%에 해당하는 2650억달러에 달했다는 통계도 있다. 기업의 소송비용이 급증하면 제품가격 인상을 통해 결국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집단소송제 확대 도입에는 이처럼 명과 암이 공존한다. 기업의 불법행위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정상적인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소송요건을 강화하는 등 소송 남발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