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기부했다고 세금폭탄 … 세법이 이래서야

부의 세습과 무관하게 기부를 목적으로 주식을 증여한 경우 증여세를 물린 것은 잘못이라는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장학재단에 180억원을 기부했다가 증여세 140억원을 부과받은 수원교차로 창업자 황필상씨 사건에서 사실상 세금을 취소하도록 황씨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세금 부과 후 1심 황씨 승소, 2심 수원세무서 승소 등 공방을 이어간 끝에 9년이 지나서야 결론이 났다. 황씨는 그간 연체 가산세가 붙어 세금은 225억원으로 불어났고 사는 집까지 압류당하는 등 말 못할 고통을 겪어야 했다.

순수한 의도로 재산 대부분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사람에게 세금폭탄을 안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더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런 부당한 세금폭탄은 진작에 바로잡았어야 할 문제였다. 그나마 대법원이 전원합의체까지 열어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은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익 기부를 장려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존중.반영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재판은 재벌들이 재단을 이용해 편법상속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년 전 만든 조항을 과도하게 해석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공익재단 등에 5% 이상 주식을 기부할 경우 증여세를 매기도록 돼 있다. 그러면서 황씨 경우와 같은 선의의 기부자를 위한 조항을 두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말도 안 된다'는 비판이 잇따랐지만 정부와 국회는 수수방관했다. 국회가 지난해 법 개정 논의를 했지만 중단된 상태다.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법을 고치지 않는 국회나 재판을 질질 끈 사법부 모두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나라 기부 문화는 선진국보다 인색한 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금 비중은 0.8%대에 머물러 미국(2%)의 절반도 안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2013년 세법 개정 당시 기부금 공제혜택을 축소하면서 국민의 기부의욕마저 꺾어버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비영리단체 이전(기부) 금액은 전년보다 1.3% 감소한 10만3531원으로 2년 연속 줄었다. 부의 편법세습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가 선의의 기부를 막고 기부문화를 위축시키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 특히 대선주자들은 황씨처럼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세법 개정을 서두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