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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통신비 인하, 기업과 대화로 풀어라

시장경제 원칙 존중해야.. 국정위, 미래부 연일 압박

새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7일 미래창조과학부에 "이번 주말까지 통신비 인하 공약에 대한 이행방안을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사실상 최후통첩이다. 전날에도 국정위는 "미래부와 세 차례 회의를 진행했는데 진정성 있는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업무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정위가 공개적으로 미래부를 압박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통신료 인하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다. 국정위는 미래부와 업계의 반대가 지속될 경우 통신요금 원가 공개, 통신비 인하 자체안 마련 등 강수를 들고나올 태세다.

통신비 인하는 선거철이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단골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 등 가계 통신비 부담 완화를 약속했다. 통신사들이 초기 투자비용을 이미 회수해 통신요금 인하 여력이 충분하다는 논리에서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통신요금에 과도한 거품이 끼었다면 적정수준까지 내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네트워크 설비 투자가 끝났으니 기본료를 없애도 된다는 주장은 반쪽짜리다. 망 유지.보수나 업그레이드에도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필수 인프라인 5세대(5G) 이동통신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월 1만1000원의 기본료를 폐지하면 이통사 손실이 연간 7조원에 달해 적자로 돌아설 판이다. 투자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일본은 5G에 51조를 쏟아붓는다. 가계 통신비 부담을 낮추겠다고 요금인하를 압박하면 성장과 미래를 내어주는 꼴이다.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정책은 그동안 성공하지 못했다. 박근혜정부가 가계통신비 인하를 내걸며 도입한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은 시장을 왜곡시키고 소비자 원성만 키우고 말았다. 통신 기본료를 폐지하면 당장 알뜰폰 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20% 요금할인 정책도 없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스라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2년 이스라엘 정치권은 통신 시장에 개입해 요금을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결국 통신사 이익이 급감하면서 추가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LTE 보급이 제대로 안 되고 통신 품질은 선진국 중 최하위로 추락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통신비 인하는 시장을 왜곡시키고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소비자의 편익을 해친다. 어느 산업이든 가격은 경쟁 활성화와 소비자의 선택을 통해 결정되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통신비 인하는 정부가 강제하는 것보다 업계와의 대화를 통해 푸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