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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요금 월정액 1.1만원 할인' 외쳤다가 '사면초가' 몰린 국정기획위

국회 미방위 '부정적 기류'…도이치뱅크 "韓통신시장 불확실성 높아져"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국정기획위)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개념조차 명확치 않은 통신요금 기본료 월 1만1000원을 '일괄 폐지’하겠다고 무작정 발표한 탓이다. 관련 법 개정을 논의해야 할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여야를 불문하고 부정적 기류가 강한데도 미래창조과학부와 민간기업인 이동통신사에게만 기본료 인하 압박 수위만 높였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작 미래부는 민간기업인 통신사의 통신요금을 강제로 인하할 법적 권한이 없다. 그렇다고 이통3사가 스스로 월 1만1000원을 일률적으로 낮추는 것도 무리다. 기본료 인하 즉시 영업적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주주들을 설득해야하는데 방법이 없다
사회적합의가 필요한 상황인데 이미 국민들의 기대는 통신료를 달마다 1만1000원 아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도이치뱅크 등은 "한국 통신시장의 불확실성은 커지고 기업 가치는 훼손될 것”이라며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통신요금 월정액 1.1만원 할인' 외쳤다가 '사면초가' 몰린 국정기획위
통신 기본료 인하 관련 의견을 전달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서울 효자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나서고 있다. 그 옆에 박광온 대변인이 외출하기 위해 서 있다. 이날 시민단체와 국정기획위의 면담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10일 미래부 보고 받지만… 요금인하 법적 근거 없어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는 9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가계통신비 인하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10일 미래부 업무보고를 앞두고 휴대폰 기본료 폐지와 단말 및 이통업체 간 분리공시제 도입, 최신 스마트폰 지원금 상한제 조기폐지 등에 대한 시민사회 일각의 견해를 듣기 위해서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전날 논평을 통해 "2G.3G는 물론 4G까지 포함한 기본료 전면 폐지는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정기획위가 기본료 폐지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 비공개 간담회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래부는 지난 7일에 이어 이날 이동통신3사 대관협력(CR) 임원을 소집, 긴급대책회의까지 했지만 정부가 민간이통사에 기본료 폐지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당장 법을 개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국회에서도 기본료 폐지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표발의한 기본료 폐지 관련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있지만, 임시국회 일정상 상임위 내 논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며 "또 야당은 일방적인 기본료 폐지에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고 전했다.

■주주설득 어려운 이통사들… 요금인하 결정 쉽지않아
미래부가 법적으로 통신사 요금을 인위적으로 내릴 수 없다면 이통3사가 자발적으로 요금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이통3사가 스스로 나설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월 1만1000원을 기본료 폐지 명목으로 일괄 인하하면 적자규모가 최대 5조4000억원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나라 통신산업 수익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했을 때 매우 낮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가 OECD 회원국 내 통신기업 간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현금창출능력) 마진율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OECD 25개국 중 최하위 수준인 23위(2016년 3.4분기 기준)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정치권 압박에 밀려 통신요금을 무작정 내리면 이통3사 모두 적자로 돌아선다. 네트워크 고도화를 위한 투자는커녕 영업악화로 인해 주주들로부터 배임죄로 소송을 당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주주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주주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국정위 관계자들이 일괄폐지, 혹은 2G와 3G 우선 폐지 등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도 결국 사면초가에 빠진 현 상황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통신사 외국계 주주들도 이번 사안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결국 국정위의 과도한 이슈몰이때문에 기본료 인하가 더 어려워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로 국내는 물론 해외 투자자들도 정부의 인위적 시장가격통제에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도이치뱅크는 지난 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통신사는 정부 규제로 인해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의 이동통신 요금 수준도 낮은데 기본료가 폐지되면 한국 통신산업의 수익성은 붕괴되고 투자자들의 관심도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보고서는 "결국 투자를 줄여 네트워크 품질을 희생시킬 수 있다"며 "전 세계가 5G로 전환하는 상황에서 한국 인프라 경쟁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