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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사인 변경에 고개 숙인 경찰청장…살수차 사용도 금지

이철성 청장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 진심어린 사과…집회·시위에 살수차 배치 않을 것”

이철성 경찰청장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숨진 고(故)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 16일 고개 숙여 사죄했다. 서울대병원이 백씨의 사망원인을 기존의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한 지 하루 만이다. 그동안 사죄 표명을 보류하던 경찰이 처음으로 공식 사과하면서 백씨 사망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검찰 수사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 청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7개월여 만에 경찰 총수가 처음으로 공식 사과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청장은 “최근 경찰인권센터에 있는 박종철 열사 기념관에서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되돌아보고 경찰의 인권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는 마음속 다짐을 했다”며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로 숨져 6월 항쟁의 계기가 된 박종철·이한열 열사에게도 사죄의 뜻을 전했다.

그는 “경찰의 공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절제된 가운데 행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이제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청장의 공식 사과와 함께 경찰은 향후 집회·시위 현장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기로 했다. 살수차 사용기준을 신설하고 운용지침을 개정하는 등 사용요건 또한 최대한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 같은 내용을 대통령령인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으로 법제화할 계획이다.

현재 살수차의 최대 수압 15bar도 13bar로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거리별 수압 기준은 10m 이내 3bar, 10~20m 5bar, 20m 초과 13bar 등이다. 살수차 사용 전 3회 이상 경고방송을 의무화해 자진해산이나 불법행위 중단을 위한 충분한 시간도 부여하기로 했다.

다만 화염병·쇠파이프·각목·돌 등 위험한 물건을 사용해 타인 또는 경찰관을 폭행하는 경우나 공공의 재산을 손괴하는 경우에는 살수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뒀다. 기존에 있던 도로 무단점거 시 살수 가능, 불법행위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위험성이 예상되는 경우 살수 가능 등 요건은 삭제했다.

이 청장은 “경찰은 앞으로 일반 집회·시위현장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겠다”며 “경찰개혁위 발족을 계기로 과거의 잘못과 아픔이 재발되지 않도록 인권경찰로 거듭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도 드린다”고 덧붙였다.

경찰개혁위원장으로 위촉된 박경서 동국대 석좌교수도 인사말에서 “경찰청장이 기꺼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공식적으로 사죄를 하시리라 믿는다. 이 사죄를 시작으로 경찰개혁위 과업을 시작한다”며 이 청장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앞서 서울대병원은 전날 백씨의 사인을 기존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병원 측이 백씨 사망 9개월여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백씨는 지난 2015년 11월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중태에 빠졌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이듬해 9월 25일 숨졌다. 당시 주치의였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연명 치료를 중단해 사망했다”는 이유로 사인을 병사라고 판단했으나 유족과 시민단체는 “경찰의 물대포 직사살수가 원인”이라며 외인사라고 주장했다.

병원의 사인 변경과 경찰의 공식 사과로 향후 관련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유족과 시민단체 등은 백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을 당시 책임자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장향진 전 서울경찰청 차장(현 경찰청 경비국장) 등 경찰관 7명을 살인미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쟁점은 ‘경고 살수→곡사 살수→직사 살수’ 등 단계별 운용지침이 지켜졌는지, 경찰 수뇌부가 현장 요원들에게 특정 지시를 내린 사실이 있는지 등이다. 검찰은 1년 7개월이 지나도록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지만 상황이 바뀌면서 막바지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백남기 사인 변경에 고개 숙인 경찰청장…살수차 사용도 금지
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고(故)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 고개 숙여 사죄했다. /사진=박준형 기자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