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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SK식 임금모델 두루 확산돼야

임금·물가 연동제에 합의.. 소모적 노사관계 깰 계기

SK이노베이션이 지난 8일 정유업계 처음으로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을 타결했다. 그런데 그 타결 내용이 놀랍다. SK이노베이션 노사는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임금인상률을 물가상승률과 연동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회사의 올해 임금인상률은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1%로 결정됐다. 앞으로도 이 회사의 임금은 별도의 노사협상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결정된다. 노사갈등 소지가 줄어드는 셈이다. 노사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

노사는 또 기존의 호봉급 중심 임금체계를 생애주기별 자금 수요와 근로자 생산성 향상도에 맞춰 개선하기로 했다. 결혼, 출산, 교육 등에 돈이 많이 필요한 30대 후반~40대 후반에 임금인상률을 높이고 50대 이후에는 줄이는 방안이다. 변형된 임금피크제라 할 수 있는데 여러 기업이 참고할 만한 임금 모델이라고 평가된다.

SK의 임금.물가연동제는 국내의 노사협상 문화에 상당한 충격파를 던질 전망이다. 노사 간의 골 깊은 불신과 갈등으로 인해 기업의 임금협상 과정이 해마다 최소 수개월에서 많게는 반년 이상 걸리는 게 관행이었다. 임금인상과 관련해 합의된 룰이 없다보니 노조는 회사의 경영 상태가 좋건 말건 근거 없는 고율의 인상을 고집하다가 파업에 나서기 일쑤였다. 현대.기아차, 한국GM 등 자동차업체 노조는 회사의 극심한 경영난에도 아랑곳않고 파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연례행사 같은 노사갈등에 해당 기업은 막대한 피해를 보고 경쟁력은 심각하게 훼손되곤 했다.

우리나라 기업의 임금교섭 주기는 1년, 단체협약 주기는 최대 2년이다. 노사가 매년 되풀이하는 소모적인 대립을 막기 위해 임금협상을 선진국처럼 3~4년마다 하도록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미국 GM은 4년마다 임금교섭을 한다. 최근 철수설이 나도는 한국GM의 미국 본사 경영진이 "한국에서 매년 지루한 임금협상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최근 "자동으로 연봉이 오르는 호봉제와 매년 반복되는 임금협상이 한국 자동차업계 임금을 비정상적으로 높여 놓았다"고 비판했다.

교섭주기를 당장 바꾸기 어렵다면 SK이노베이션처럼 노사 합의로 임금인상의 공식을 만들어 적용하는 것이 훌륭한 대안이다. 이 같은 임금 모델은 고액 연봉을 받는 제조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도입할 만하다.
궁극적으로는 임금을 생산성, 경영실적과 연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임금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아무쪼록 SK식 임금 모델이 기업 전반에 두루 확산돼 경직된 노사관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