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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헨리 키신저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 미.중 관계가 개선되면 대만 주둔 미군의 철수는 당연하다." 1971년 미.중 수교 교섭 당시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중국에 내민 당근이다. 대만은 미국의 오랜 우방이었지만 미.중 관계 정상화라는 더 큰 이익 앞에서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요즘 말로하면 '대만 패싱'쯤 된다.

1923년 독일에서 태어난 키신저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15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다. 하버드대 교수 시절이던 1969년에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 안보보좌관으로 공직에 입문해 탁월한 외교 솜씨를 보여준다. 2년 뒤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 미.중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이후 국무장관이 된 그는 1977년 카터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베트남전쟁과 중동전쟁 등을 끝내기 위해 외교력을 발휘했다.

키신저는 '20세기 최고의 외교전략가' '살아있는 외교교과서'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1973년 베트남전 휴전협상에 이바지한 공로로 받은 노벨평화상을 두고는 논란이 많았다. 휴전협상 중 하노이 폭격 명령에 관여한 키신저에게 평화상을 주는 것에 반대한 심사위원 2명이 항의의 뜻으로 사임했다.

키신저 외교의 잣대는 첫째도 국익, 둘째도 국익이다. 미국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 이해관계가 얽힌 국제사회에서 극과 극의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 94세인 키신저의 일거수 일투족에 전 세계 외교가의 이목이 집중된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전략을 자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중국을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데 이어 올 6월에는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러시아를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달 한.중.일 3국 방문을 앞두고 10일(현지시간) 키신저를 만났다.
키신저는 그동안 중국이 북한 김정은 정권 붕괴를 끌어낼 경우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 있다는 식의 이른바 '미.중 빅딜론'을 주장해왔다. 미.중 외교가에 미치는 키신저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허투루 들을 얘기가 아니다. 요즘 트럼프가 구사하는 외교전략인 '미치광이 이론'의 창시자도 키신저라는 얘기가 들린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