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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신고리5.6호기 공약 접은대신 '숙의 민주주의' 첫 성공모델 얻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20일 공사 재개 권고 결정이 나기까지 문재인 대통령도 사전에 알지 못할 정도로 '철통 보안'속에 발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으로선 민주적 절차에 따라 대선후보 시절 내걸었던 5·6호기 건설 중단 공약을 접은대신, 공론화 프로세스란 사회갈등 해결 모델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문 대통령이 강조해온 '숙의 민주주의'의 첫 성공적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론화위원회가 또 하나의 민주주의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임 실장은 "처음에 대통령께서 숙의민주주의와 공론화 절차를 꺼냈을 때 반신반의했다"며 "좀 더 솔직해지자면 생경하기조차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들어보기는 했지만 '숙의민주주의라는 실험으로 이 중요한 문제에 의미있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 '혹시 무책임한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라고 언급했다.

임 실장은 "공약을 함부로 버릴 수도, 상당히 공사가 진행된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다는 '대통령의 고집(?)'에 따라 공론화위가 구성됐을 때도 믿음을 갖기 어려웠다"며 그러나 "3개월여 여정 끝에 나온 권고결정 발표에 놀라움과 함께 경건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 공론화위 결과발표를 관련 청와대 수석 및 비서관들이 사회수석실에서 함께 TV로 지켜봤다"며 "'사전에 결과를 미리 알고 있지 않았느냐'고들 하는데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심지어 임종석 비서실장이 오늘 오전 회의 때 '혹시 대통령께서 알고 계시냐'고 직접 물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는 "공론화위 과정 자체가 너무나 중요하고, 앞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인식해 내부적으로 감동적으로 지켜봤다"고 했다. 공론 절차를 준수하기 위해 사전 보고를 아예 안받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공론화위는 예고된 오전 10시 결과 발표 10분 전에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결과를 보고하려 했으나 청와대와 이 총리가 이를 만류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는 엄격한 중립을 표방하며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이를 100% 존중하겠다며 공론화 과정에 힘을 실어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안으로 원전에 대한 언론 기사량이 지난 40년 간 기사량보다 많았고, '탈원전'을 공약했던 저희는 '아픈 기사'들로 십자포화를 맞는 심정이었지만 공론화 과정에 영향을 줄까 봐 청와대와 정부는 어떤 발표도 하지 않았다는 점도 살펴봐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론화위도 대통령께서 제안하셨고, 에너지 전환 정책에 관해서도 얘기하셨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조만간 입장을 낼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공론화위원회 결정에 대해 직접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으나 발표직후 40분만에 박수현 대변인을 통해 결정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간략한 입장을 밝힌 상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토록 민감한 현안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깨지지 않고 온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앞으로 국정운영에 있어 중요한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론화 절차의 완성과 그에 따라 도출된 건설 재개 결론은 정부 정책의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국민 이성의 승리'라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청와대 내부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치권은 공론화위의 결정에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공론화위의 결정에 대해 '존중'의 뜻을 전하며, 숙의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 도출에 대한 대승적인 수용을 촉구했다. 신고리 5, 6호기의 안전과 품질에 대한 관계기관의 철저한 점검도 주문했다.

반면 야권은 문재인 정부의 '사과와 반성'을 주장했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국론분열을 유발을 지적하며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 에너지정책 방안 제시와 탈원전에 대한 대선공약 철회도 요구했다.

공론화위의 권한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탈원전에 대한 논의까지 포함시켜 의견을 제시한 공론화위의 결론은 월권이라는 주장으로, 신고리 5, 6호기 중단 여부에 대해서만 다루겠다던 정부의 입장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김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