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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원전건설재개]신고리 5·6호기 재개 결정 '신의 한수'

'신의 한 수'였다. 여론은 절묘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20일 "신고리 5·6호기는 건설을 재개(4차 최종조사시 59.5%)하고, 탈원전 정책은 지속 추진(53.2%)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상징인 신고리 5·6호기는 다시 건설하되 탈원전 정책은 급격하지 않은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는 권고다. 일단 갈등의 뇌관이던 신고리 5·6호기의 불확실성은 해소됐다. 청와대에는 신고리 5·6호 건설 중단 결정과 이후 갈등을 해소할 탈원전 '출구'를 만들어줬고,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을 촉진할 명분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6월27일 국무회의 결정)에서 건설 재개 결정(10월20일 공론화위원회 권고)까지 113일간 우리사회는 갈등했고 반목했다. 숙의 민주주의의 공론화 과정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공론화 3개월'은 우리 사회가 사회갈등 해결을 위해 다양한 의견 교환과 심층적인 토론의 숙의 민주주의라는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또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시민참여단 '신의 한 수'
이날 공론화위원회가 발표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형조사 보고서는 총 170페이지다. 지난 7월24일부터 3개월간 공론화 숙의과정 결과를 담은 권고안이 빼곡히 담겨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숙의과정이 진행될수록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의견이 많아졌다. 20~30대 젊은 층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4차 최종 조사에선 건설 재개와 중단이 19%포인트 차로 벌어졌다. 당초 찬반 격차가 초박빙일 것이라는 예측이 보기좋게 빗나간 셈이다. 앞서 1차 조사(2만6명)때는 건설 재개 36.6%, 건설 중단 27.6%, 판단 유보 35.8%였다. 재개와 중단이 9.0%포인트 차이였다. 남녀 비율(66.3%, 52.7%)은 비슷했다. 건설 재개는 40대가 45.3%로 가장 낮았다. 20~30대 젊은 층보다 50~60대 이상이 최대 25%포인트 많았다. 지역별로 호남지역은 건설 중단(54.9%)을, 영남지역은 건설 재개(68.7%)를 더 많이 지지한 게 특징이다.

눈에 띄는 여론의 변화는 자료집 및 이러닝을 학습한 시민참여단 대상의 3차 조사때부터다. 공론화위원회 측은 "3차 조사에서는 1차 조사에 비해 판단 유보가 11.2%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건설 재개가 8.1%포인트, 건설 중단이 3.1%포인트 증가했다. 그 결과 재개와 중단의 차이는 14.0%포인트로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연령대별로도 20~30대의 경우 '공사 재개' 의견 증가율이 더 컸다.

공론화위원회는 "건설 재개를 지지하는 시민참여단들은 안정적 에너지 공급과 안전성을, 건설 중단 측은 안전성과 환경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시민참여단 471명이 2박3일 종합토론회에서 분임토의, 찬반 질의응답 등의 다양하고 심층적인 숙의과정이 여론의 변화를 이끈 것이다.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원전 발전 정책에 대한 선호 입장 변화다. 4차조사 결과 원전 축소 53.2%, 유지 35.5%, 확대가 9.7%인데, 건설 재개 집단에서 원전 확대를 선호한 비중은 16.3%에 불과했다. 반면 원전 유지 50.7%, 원전 축소가 32.2%에 달했다. 이는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재개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원전을 더이상 확대하는 것에는 부정적이라는 뜻이다.

■'노후원전 폐쇄' 또다른 과제
시민참여단의 공사 재개 결정은 역설적이지만 답보상태였던 신재생 에너지정책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 신고리 5,6호기는 계획대로 2023년초 완공(운전 수명 60년)하되, 신규원전(6기) 중단 및 노후원전(10기) 폐쇄(수명연장 금지)에는 명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가장 민감하게 여론을 자극하는 전기요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한 부담도 덜게 된 셈이다. 다만 원전이 특정지역에 여러 개가 밀집된 상황에서 더 높은 안전대책을 찾아야하는 것은 정부의 숙제다.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별개로 탈원전 정책 기조는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에 이어 원전 찬반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은 다분하다.

우선 신규 원전 6기 건설은 백지화한다. 울진 신한울원전 3·4호기와 영덕 천지원전 1·2호기, 삼척 또는 영덕 예정인 원전 2기(대진원전 1·2호기 또는 천지원전 3·4호기)가 그것이다. 현재 신한울 원전 3·4호기는 시공 관련 설계용역이 일시 중단됐고, 천지 1·2호기는 부지 매입 절차가 중단된 상황이다. 두 곳의 원전 4기 건설에 현재까지 3400억원 정도 투입됐다. 신한울 원전 3·4호기는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

또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끝나는 노후 원전 10기는 폐쇄할 방침을 세웠다. 고리 2호기(2023년), 고리 3호기(2024년), 고리 5호기(2025년) 등이 폐쇄 대상이다. 수명이 연장(2022년 11월)된 월성 1호기는 조기 폐쇄할 방침이다. 설계수명종료 시점이 문재인정부 이후의 사안이어서 또다른 탈원전 갈등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원전 수출에도 청신호다. 당초 급격한 탈원전이 한국형 원전의 수출 시장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었다. 최근 유럽연합(EU)의 인증을 획득한 한국형 원전(APR1400)의 수출 명분을 다시 갖게된 셈이다. 신고리 5·6호기가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APR1400 모델이다. 현재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은 영국, 체코,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원전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영국은 2035년까지 최대 3GWe(원전 3기 설비용량)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체코는 2035년까지 보통 1기 용량인 1GWe 원전을, 사우디아라비아는 2030년까지 22조원 규모의 2.8GWe 원전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20조원 규모의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인데, 이곳 원전 후보모델 중에 하나가 APR 1400이다. 한전이 이 프로젝트 주관사인 뉴젠의 최대주주인 일본 원전기업 도시바 지분 인수협상을 벌이고 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