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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사표 낸 무협 회장, 또 낙하산 적폐인가

민간단체 일에 왜 간섭하나.. 文대통령이 고질병 끊어야

한국무역협회 김인호 회장이 24일 사표를 냈다. 김 회장은 "정부가 최근 본인의 사임을 희망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라고 했지만 그 윗선에서 메시지가 왔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지난 2015년 취임한 김 회장은 내년 2월이 임기 만료다. 재임 중 딱히 잘못한 일도 없다. 그런데도 4개월 먼저 사표를 냈다. 그는 "무협의 원활한 기능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관료 때 주로 보수정권에서 일했지만 이념 색채는 옅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는 시장주의자다. 시장원리에 어긋나면 보수.진보 정권 가릴 것 없이 쓴소리를 했다. 2년 전 취임 간담회에서 김 회장은 "시장에서 풀 수 있는 문제인데 정부가 들어가면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가 포스코 정준양 전 회장을 표적수사하자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수사는 확실한 근거에 입각해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대놓고 비판하기도 했다. 배임 혐의로 기소된 정 전 회장은 1.2심에서 모두 무죄선고를 받았다.

김 회장의 소신은 분명 문재인정부의 국정철학과 충돌한다. 새 정부가 펴는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무원 증원, 성과급제 폐지 정책은 효율과 경쟁을 중시하는 시장원리에 어긋난다. 그러나 철학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민간단체장을 갈아치우는 건 당최 말이 안 된다. 무협은 7만개 넘는 회원사 수출기업들이 주인이다. 정부 지분은 제로다. 종래 관행상 관료 출신들이 자주 회장을 맡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또한 낙하산이요 적폐다. 적폐 청산이 뭔가. 비정상의 정상화다. 적폐 청산을 생명줄로 여기는 문재인정부가 적폐를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

이달 말 국회 국정감사가 끝나면 낙하산이 하늘을 수놓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고위직 당료들을 상대로 공공기관 낙하산 희망자를 모집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공기업.관변단체장 자리를 전리품으로 여기는 고질병은 보수.진보 정권이 다르지 않다. 이미 한국거래소 이사장 자리를 놓고 사상 처음 재공모를 실시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문 대통령에게 당부한다. 낙하산 고질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대통령밖에 없다. 사실 대통령도 쉽지 않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코드인사' 논란에 휘말리면서 스스로 무너졌다.
이번만큼은 문 대통령이 적폐 청산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단호히 다루길 바란다. 차제에 무협도 자율로 회장을 뽑는 내부절차를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1946년에 출범했으니 올해로 창립 71년을 맞았다. 언제까지 정부.정권 눈치를 볼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