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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사우디판 혁신

사우디아라비아의 파격적 혁신 드라이브가 주목된다. 지난주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5000억달러(약 564조원)를 투입해 경제자유구역 도시 '네옴(NEOM)'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불모의 사막에 서울의 44배 규모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 자체가 역발상이다. 게다가 로봇기술, 엔터테인먼트, 신재생에너지 등 온갖 첨단산업을 유치하겠다는 발상은 더 놀랍다.

동양 고전인 주역에 '군자표변(君子豹變)'이란 말이 나온다. 표범이 털갈이를 하는 것처럼 신속하게 허물을 고치고 변화를 꾀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선 안색이나 태도를 경망스럽게 바꿀 때처럼 대체로 부정적 뉘앙스로 읽힌다. 얼마 전 사우디 정부가 여성 운전금지 관례를 깨고 내년부터 30세 이상 여성에게 면허증을 발급한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그런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표범이 가을철에 털을 갈아 화사하게 단장하는 정도이겠거니 하고 여기면서 말이다.

그러나 '탈(脫)석유'를 기치로 경제체제를 전환하려는 사우디의 몸부림은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혁신(革新)은 '가죽을 벗겨 새롭게 한다'는 본뜻처럼 내일을 위해 오늘의 엄청난 고통과 저항을 감내할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중동에서도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사우디가 아닌가.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완화하면서까지 인력을 키우고 융복합형 해외 기술을 유치하겠다는 데서도 그런 결기가 읽힌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차세대 원전에 1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마찬가지다.

사우디의 변신은 우리에게도 기회다. 차세대 원전 시장과 미래형 신도시 네옴은 제2 중동 붐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2년 전 중소형 스마트 원전을 수출해 교두보를 놓은 데다 풍부한 신도시 건설 노하우를 보유한 한국이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스마트시티' 기술을 앞세운다면 말이다.
다만 다시 찾아온 중동특수로 들뜨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기름과 달러가 넘치는 사우디도 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마당이다. 정부가 말로만이 아니라 혁신성장을 위한 구체적 콘텐츠를 찾아 실행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