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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가상통화 시장 무질서, 내버려 둘텐가

제도권 아니라고 외면하다 금융안정 흔들리면 어쩌나

가상통화 시장이 혼란스럽다. 가격이 순식간에 수천달러씩 널뛰기를 한다. 며칠 전엔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인 빗썸에서 전산장애가 발생해 거래가 끊겼다. 이 통에 돈을 잃은 투자자 수천명이 집단소송에 나설 태세다. 가상통화 거래액은 하루 수조원으로 코스닥을 앞지르기도 한다. 투자자 수는 100만명을 넘었다. 금융당국이 손을 놓고 있기엔 시장이 너무 커졌다.

사실 금융위원회가 마냥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9월엔 가상통화 대응책을 내놓기도 했다. 앞으로 가상통화 거래에 참여하려면 먼저 은행에서 본인 인증을 받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또 금융위가 주도하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도 꾸렸다. TF는 9월 첫 회의를 시작으로 분기별 모임을 갖는다.

하지만 금융위는 가장 골치 아픈 문제를 뒤로 미뤘다. 그것은 비트코인, 비트코인캐시, 이더리움 같은 가상통화를 통상적인 '돈'으로 볼 것이냐다. 정상 화폐로 인정하면 가상통화 시장은 제도권 금융 안으로 들어온다. 현재 정부는 비트코인을 화폐가 아닌 재화, 곧 물건으로 본다. 같은 맥락에서 가상통화 거래소는 통신판매업자다. 요컨대 빗썸은 한국거래소보다 G마켓에 가깝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보면 금융위나 금감원이 가상통화 시장에 간섭할 여지가 없다. 은행.증권.보험.대부업 같은 제도권 금융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고충은 이해한다. 가상통화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산물이다. 기존 제도권 금융에 대한 불신이 비트코인이라는 순수 민간.디지털 화폐를 낳았다. 때맞춰 블록체인이라는 혁신적 보안기술이 이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가상통화를 사기나 거품으로 보는 시각도 여전하다. 대표적 비판론자인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은 "네덜란드 튤립 버블보다 비트코인 버블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곧 비트코인 선물을 금.원유처럼 거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헷갈린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가상통화가 사기든 아니든, 거품이든 아니든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하루 거래규모가 수조원이라면 예삿일이 아니다. 가상통화를 법정화폐로 인정할지 여부는 다른 나라 동향을 살펴가며 신중하게 결정해도 된다. 하지만 흐트러진 시장 규율을 그냥 내버려둬선 곤란하다. 자칫 가상통화 시장이 전체 금융안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비트코인 거래는 카지노에 가깝다.
도박에서 가장 큰 책임이 투자자 본인에게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카지노 운영에도 일정한 룰이 있다. 카지노라고 무법천지로 내버려둘 순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