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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e+레저] 지역 名士와 함께 하는 문화 여행지 경남 하동·남해

평사리 벌판부터 최참판댁까지… 한걸음 한걸음 '토지'를 읽다
박경리 소설에 매료돼 문학 시작한 최영욱 시인
'평사리문학관' 건립 이끌고 '토지문학제' 열어
달빛낭송회 등 기획… 하동 문학의 부흥기 주도

고국을 그리워하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종착역, 독일마을
간호사 출신 석숙자씨 독일인 남편과 함께 정착
"한국인의 붙임성 발휘, 현지서 '코리아 엔젤' 평가"
인근 금산 기암괴석도 절경.. 함계 둘러보면 좋아

[yse+레저] 지역 名士와 함께 하는 문화 여행지 경남 하동·남해
최참판댁 전경

【 하동.남해(경남)=조용철 기자】 tvN '알아두면 쓸데 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이 최근 인기다. 뇌과학자 정재승,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가수 유희열, 작가 유시민 등이 출연했던 시즌 1에 이어 현재는 출연진 일부를 교체·보강한 시즌 2가 방송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이유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우리나라 곳곳을 탐방하며 우리가 몰랐던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들려줬기 때문. 출연진들이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펼치는 수다여행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알쓸신잡이 이처럼 인기를 끌면서 여행객들도 단순히 풍경과 먹거리를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 전국 방방곡곡에 숨어있는 명사(名士)들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와 지역의 문화관광 콘텐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문화탐방 여행 프로그램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대한민국의 숨겨진 매력을 지역 명사가 직접 소개하는 '지역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 프로그램을 내놨다. 대하소설 '토지'의 실제 무대인 경남 하동과 파독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경남 남해로 떠나보자.

[yse+레저] 지역 名士와 함께 하는 문화 여행지 경남 하동·남해
고 박경리 선생의 동상이 서 있는 평사리 문학관


경남 하동에는 특별한 곳이 있다. 평사리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함께 보듬어 안아 예로부터 풍요로움을 줬던 땅으로 '무딤이들'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곳이다. 소설에서 '만석지기 두엇은 능히 낼만하다'고 했던 그 넓은 들판에서 최영욱 시인을 만났다. 그는 '토지'를 저술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평사리가 그렇듯 최 시인도 박 선생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박 선생의 팬을 자처한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최 시인은 누구보다도 각별하다. 박 선생으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기 때문이다. 최 시인은 박 선생의 문학적 감성과 인간미에 매료돼 젊은 날들을 보낸 뒤 불혹을 넘기고서야 시인이 됐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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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와 최참판댁에 대해 설명하는 최영욱 시인


지난 1987년 '토지'가 드라마로 방영돼 큰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하동으로 쏠렸다. 당시 독자들이나 문학도들은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를 끊임없이 찾았다. 하지만 소설 속 배경이 현실에 있을 리는 만무하고 이 같은 사실을 설명해줄 사람도 없었다. 먼 길을 찾아온 사람들은 단지 넓은 들판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중 지역 문인들이 제안하고 하동군이 나서면서 '최참판댁'을 건립하기에 이른다. 1998년 사랑채를 시작으로 안채, 문간채, 행랑채, 초당, 별당채 등이 연이어 지어졌다. 최 시인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평사리 문학관과 토지문학제를 제안했다. 최 시인은 "당시에 박 선생을 찾아뵙고 상기된 목소리로 설명을 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일곱번 찾아가 마침내 허락을 받아냈다"고 회상했다. "게다가 박 선생은 사진과 책 등 소중하게 아껴둔 자신의 물건을 내줘 평사리 문학관을 꾸밀 수 있었다. 결국 박 선생을 모시고 '토지문학제'를 열었다. 평사리 문학상을 통해 배출한 문인만도 수십명에 달해 한국 문학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그는 덧붙여 설명했다. 최 시인은 이처럼 토지문학제를 비롯해 박경리 토지길, 평사리 달빛 낭송회, 평사리 청소년 문학캠프를 기획하는 등 그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하동 문학의 부흥기를 이끌고 있다.

하동과 연계된 여행 코스로는 송림공원이 있다. 천연기념물 445호로 지정된 하동송림은 조선 영조 21년 도호부사 전천상이 강바람과 모래바람, 강물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소나무 숲이다. 300여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 군락인 송림은 맑은 섬진강이 넓은 백사장과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룬다.

[yse+레저] 지역 名士와 함께 하는 문화 여행지 경남 하동·남해
남해 독일마을 전경


지난 2015년 9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특집 '배달의 무도' 마지막 이야기에서 정형돈과 광희는 경남 남해에서 파독 간호사 출신 석숙자씨의 사연을 듣고 난 다음 독일로 날아갔다. 이들은 더덕구이부터 멸치쌈밥, 보쌈 등 1960년대 가장 인기가 많았던 간식인 빵, 옥수수, 홍시를 가득 안고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60~70년대에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갈 수밖에 없었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직접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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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으로 뒤덮인 남해 금산 38경


사연을 신청했던 석씨는 본래 강원 삼척 도계 태생이다. 석씨는 생각이 있다면 밀고 나가는 뚝심이 있는 자기 생각이 뚜렷한 성격이었다. 도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앞날을 고민하던 중 독일 간호사 파견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게 된다. 그리고 앞뒤 가리지 않고 독일행 준비를 한 뒤 1973년 3월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자 함께 간 동료 5명과 함께 3시간을 차로 이동해 도착한 곳은 라이힐링앤이라는 작은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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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마을을 설명하는 파독 간호사 석숙자씨


석씨는 기독교 계통의 양로원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석씨는 "일일이 몸으로 부대끼며 6개월을 지내고 났더니 귀도 뚫리고 입도 터졌다. 한국사람 특유의 붙임성과 친절에 독일 사람들도 점점 좋아했고 차별도 전혀 없었다. 마을축제 때는 한복을 차려입고 '아리랑'도 부르고 남진의 '님과 함께'도 불렀다. 이를 본 지역신문에선 '코리안 엔젤'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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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베를린성의 독일 맥주와 소시지 메뉴


석씨가 독일에서 받은 월급은 당시 우리 돈으로 15만원 정도로 한국 월급의 10배였다. 이 중 생활비 3만~4만원을 빼고 모두 한국으로 보냈다. 그때는 고국에 송금하는 것이 한국 간호사들의 최고의 미덕이었다. 석씨는 2002년 3월 독일마을에 집을 짓기 시작했고 남편 요셉은 독일에서 폐암 치료를 위한 투병을 마친 뒤 남해로 왔다. 독일마을 전시관에는 '아름다운 젊은 날, 그리고 종착역'이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석씨의 마음이 바로 이 문구에 다 녹아 있다.
독일마을은 독일에서 젊은 날을 땀과 눈물로 보낸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소망을 이루게 한 그리움의 종착역이다.

독일마을과 연계된 여행 코스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으로 뒤덮인 38경을 볼 수 있는 남해 금산이다. 조선 태조가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면서 영세불망의 영산으로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의미로 금산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