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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도약 대북해법 길을 찾다] 최영진 前 주미대사 "북핵, 협상은 안될 것..北 내부변화 올 때까지 ‘관리’가 중요"

(3)최영진 前 주미대사

[개혁과 도약 대북해법 길을 찾다] 최영진 前 주미대사 "북핵, 협상은 안될 것..北 내부변화 올 때까지 ‘관리’가 중요"
최영진 전 주미대사(연세대 석좌교수)가 8일 연세대학교 새천년관 연구실 앞 가로수길에서 취재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숨소리조차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한반도 '강(强)대 강(强)' 대치 국면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훈풍을 타고 있다. 남북 체육대화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 북핵 문제 해결, 나아가 5.24조치 해제와 남북경협 재개를 말하는 목소리도 조심스레 나오는 상황이다. 한반도에 봄이 오는 걸까. 40년 외교현장의 백전노장, 최영진 전 주미대사(연세대 석좌교수)는 북한의 현 상황과 미국이 생각하는 북핵해법 그리고 중국의 접근법을 '철학'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프랑스 유학 시절 철학을 전공해 여러 권의 철학서를 출간하기도 한 최 전 대사는 '해결'이란 미국식 사고방식과 '관리'라는 동양적 사고방식을 비교했다. "북핵 문제의 경우 미국은 '해결방법을 정하고 만나자'는 접근법이라면 중국은 '만나서 찾아보자'는 것이죠. 이 연장선상에서 동양에서는 '전쟁'을 관리의 '실패'로 보는 반면 서양은 전쟁을 해결책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일각에서 우려하는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도 이런 사고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미국은 해결하려고 할 겁니다. 그런데 중국은 관리 쪽으로 가고 있어요. 중국은 기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관리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어요. 북한 문제 역시 마찬가지예요. 북한 문제는 외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북한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미국의 해결과 중국의 관리 사이에 우리나라가 끼어 있어요. 양쪽을 다 보면서 헤쳐나가야 합니다."

최 전 대사의 북핵 해법 역시 '관리(management)'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해결책'을 목표로 달렸던 과거 6자회담식의 회담 가능성은 낮게 봤다. 그 대신 북.미 등 주변국 간 그야말로 '대화' 자체는 열리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협상이니 회담 대신 '관리'로 갈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대화는 하게 될 것입니다. 대화는 필요하죠. 상대의 입장을 알 수 있고 우리 입장도 전달할 수 있지요. 그런데 협상은 다릅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은 북핵이란 '특별한 목적'을 해결하겠다며 지난 20년간 북한과 세 번이나 협상했는데 안 됐죠. 실패했죠. 협상은 안 될 겁니다. 미국은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단호했다.

중.러가 원하는 방향(쌍중단)으로 협상해 갈 것 같지도 않다고 했다. "장애물이 너무 많아요. 특히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너무 선명합니다." 대화는 이어나가겠지만 일거에 해결로 가는 길로 들어서진 않을 것이란 결론이다.

남북대화, 나아가 북·미 대화의 종국적인 지점은 어디일까. 최 전 대사는 "북한은 핵포기 않겠다고 하고, 미국은 비핵화를 원하니까 대화는 이뤄지지만 긴장 국면이 계속될 것이고 '관리'로 가다가 결국 북한 내부에 변화가 생길 때, 북한 스스로 결론을 내릴 때 북핵 문제는 출구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다시 덧붙였다. "북한 핵문제는 북한의 미래와 얽혀 있기 때문에 주변국이 풀 수 없습니다. 주변국은 정세를 관리해 나가야 하는 것이죠. 또 제재와 압박 역시 지속해야 하며, 이것은 북한 핵을 인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북한 스스로 경제 건설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나설 때 풀리는 문제입니다."

최 전 대사와의 만남은 8일 서울 연세로 연세대학교 새천년관 그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아래는 최 전 대사와의 일문일답.

[개혁과 도약 대북해법 길을 찾다] 최영진 前 주미대사 "북핵, 협상은 안될 것..北 내부변화 올 때까지 ‘관리’가 중요"


―5년 전 퇴임하면서 올해 북핵문제의 전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공교롭게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시작됐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완성했다고 표현한 게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특정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한 이제 핵실험을 멈춘다는 것인지 주시할 만하다. 핵실험을 멈추면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핵무기를 완성했으니 경제발전 쪽으로 갈 거다. 거듭 말하지만 '협상이 아니라 그냥 대화로 갈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을 멈추면 우리는 한·미 합동훈련 강도를 낮추는 등 소강 상태로 접어들 것이다. 협상 없이 이런 상태로 당분간 계속 갈 거다.

―그것이 '관리'인가.

▲관리가 저절로 되는 거다. 의도적(by design)이 아니고 자동적(by default)으로 말이다. 북.미는 절대 협력 못한다. 중국은 쌍중단을 내세워 핵실험과 한·미 군사협력을 동시 중단하기를 원한다는 건데 이건 또 못 받아들이지 않나.

―결국 북한이 원하는 것은 다 얻는 모양새 아닌가.

▲'협상'을 안하는 데 뭘 얻을 수 있겠나. 북한이 핵실험을 안하고 저자세로 나오면 한·미도 군사훈련을 계속 할 이익보다는 적절히 맞추는 것이 좋다. 핵을 가진 걸 어떻게 하겠나. 다만 핵을 인정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실 핵무기는 완성을 주장하는 순간부터 무용지물이다. 쓸 수가 없는 패다. 나는 지금도 북한이 도대체 왜 핵을 만들었는지 의문이다. 이미 장사포를 수천발 보유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서울을 인질화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억지력(deterrence)이다.

―양쪽이 소강상태로 가도 협상은 안 된다는 것인가.

▲대화는 하지만 협상은 안 될 것이다. 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중.러가 원하는 방향대로 핵실험 중단과 한·미 합동훈련 중단은 우리가 못 받는다. 또 미국에서 북한이랑 협상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너무 뚜렷하다. 세 번이나 실패했기 때문이다. 소강상태에서 대화가 계속되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북한은 경제적 어려움에 빠질 것이다. 북한이 경제발전의 길을 택하는 것이 아까 말한 '북한의 미래'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관리, 새로운 관점이라고 질문을 거듭 드렸다.

▲외교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양국 관계, 정세에 대한 철학 말이다. 철학이 없으면 외교도 감정적이 된다. 그렇게 되면 실수가 계속 나온다. 당장 남북관계만 생각하고 미·중 관계를 간과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실수였고, 역사를 '해결'하려고 한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합의가 실수였다.

―위안부 합의도 관리해 나갈 수 있나.

▲위안부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내각이 가진 생각은 그들이 '피해자'라는 것이다. 너무 놀랍지만 그렇다. 우리에게는 일본이 가장 큰 가해자다. 어떻게 협상이 되겠나. 일본 사람들은 절대로 과거를 인정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과거사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 관리해야 한다. 사과는 스스로 하는 것이지 받아낼 것도 없다. 일본이 이 같은 잘못을 했으니 숙제로 갖고 있어라 하면 된다. 잘못이 있을 때마다 엄중하게 지적을 하고 그런 가운데서 그걸 끝내야 한다.

―한.일 관계에는 미국 변수도 있다.

▲그렇다. 한·일 관계는 미국 때문에도 관리해야 한다. 미국은 한·미·일 군사협력 때문에 우리가 일본과 잘 지내길 원한다. 이건 우리가 미국에 설명을 해야 한다. 내가 주미대사 시절 미 조야 관계자들을 만나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 그 대신 관리해 나가겠다고 설득했다. 만남은 포스트 아베까지 미루더라도 양자 관계는 잘 관리해 나가겠다고 설명을 해야 미국도 이해한다. 그렇지 않고 철학 없이 마냥 '열심히 하겠다'고만 하면 문제가 생긴다.

―중국이 동북공정 문제를 일으켰을 때 직접 중국과 담판을 지었던 일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2004년 중국의 실수로 동북공정 문제가 벌어졌다. 현재 중국 외교부장인 왕이 당시 본부장과 내가 만나 동북공정 문제를 합의했다. 고구려사를 직접 지칭하진 않고 '한.중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일'을 피하자고 했다. 그런데 그 후에 고구려사 문제가 중국 교과서에 실렸다. 중국이 약속을 위반한 거다. 우리나라에서 반발이 커지자 우다웨이 당시 아시아담당 부부장이 날아왔다. '양국관계 앞날을 위해 과거사 문제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다'고 합의했다. 형식은 구두양해로 했다. 문서로는 남길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 교과서에 실린 고구려사 부분은 빠졌다. 하지만 중국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걱정이었다. 우리 정부는 '이것이 해결은 아니다.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관리'할 수밖에 없다.
위안부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사드 역시 그렇다. 현재 중국도 사드에 대해 이제 시작이지 해결된 것은 아니라고 하지 않나. 청와대에서도 '해결되는 방향이다'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봉인이라고 했는지는 아쉽다.

psy@fnnews.com 박소연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