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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하나금융 회장, 당국이 뽑나 주주가 뽑나

자율 선임절차에 또 간섭.. 관치 없애는 게 금융혁신

금융당국이 하나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또 제동을 걸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주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회장 선임절차를 보류하도록 권고했다. 특혜 대출과 채용비리 의혹 등에 대한 검사가 끝난 뒤에 선임절차를 진행하라는 얘기다.

금융당국이 하나금융의 회장 선임절차에 문제를 제기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연말부터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감원장은 잇따라 "금융지주사의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이 허술한 것 같다"는 등 불을 지폈다. 관치 논란이 무성한 이유다.

하나금융 회추위는 이를 거부하고 일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나금융도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동안 하나금융은 회추위에서 현직 회장을 제외하고 경영발전위원회의 임원 성과평가 규준도 고치기로 하는 등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기 때문이다.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거취는 실적에 따라 주주가 결정할 몫이다. 하나금융지주는 민간 금융사로 외국인 지분율이 74%를 넘는다. 지분도 없는 정부가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명백한 관치로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 CEO의 평균 임기가 3년 안팎인 우리와 달리 선진국에선 장기 연임하는 CEO가 적지 않다. 미국 JP모간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10년 이상 CEO로 재직 중이고, 캐피털원파이낸셜의 리처드 페어뱅크 회장도 20년이 넘는다.

15일 최 금융위원장은 금융혁신 방향 발표 자리에서 "금융인 중 '간섭받아서는 안 된다'는 우월의식을 빨리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이 "권고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회추위가 결정할 사항"이라고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금융혁신을 말하는 자리에서 관치를 노골화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최 위원장이 꼽은 전당포식 영업, 채용비리 등 금융권 적폐는 지난 수십년간 이어져온 관치의 영향이 크다. 오죽하면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금융산업은 영화 '쇼생크 탈출'의 등장인물인 레드(모건 프리먼)처럼 감시와 통제에 길들여져 화장실 갈 때마다 허락을 맡는 것과 같은 신세"라고 했겠나.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재임 6년간 평균 이상의 실적을 기록했다. 외환은행과의 합병을 2년이나 앞당겨 성사시켰고, 지난해 순이익은 사상 최대인 2조원으로 추산된다. 4대 은행그룹 중 가장 높은 주가 상승률을 기록하며 올 초에는 5년 만에 하나금융지주가 신한금융 주가를 넘어서기도 했다.
CEO의 연임 판단은 실적에 따라 주주가 하면 된다.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해선 곤란하다. 하나금융지주는 예정대로 회장 선임절차를 밟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