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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황제주에서 국민주로 내려선 삼성전자

주주 환원 차원서 바람직.. 경영권 간섭 우려도 커져

삼성전자가 주식을 50대 1로 쪼갠다. 주당 가액은 5000원에서 100원으로 낮아진다. 1월 31일에 열린 이사회에서 결정했다. 예를 들어 지금 100주를 가진 주주는 앞으로 5000주를 배정받는다. 삼성전자는 오는 3월 주총을 거쳐 이르면 5월께 액면분할을 확정한다. 삼성전자는 1975년에 상장했다. 액면분할은 43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결정이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론상으론 액면을 분할한다고 주식 가치가 오르지 않는다. 250만원짜리 주식 100주나 5만원짜리 5000주나 총액은 2억5000만원으로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컨대 액면이 5만원대로 낮아지면 '싼 맛'에 더 많은 투자자들이 몰린다. 그 덕에 주가가 뛰면 결국 주주한테 이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사상 처음 53조원을 넘어서는 놀라운 실적을 거뒀다. 액면가를 낮추면 더 많은 소액 투자자들이 배당 혜택을 누리는 장점도 있다.

삼성전자의 주주환원 정책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때 합병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2016년 가을에 주주제안 형식으로 여러 가지 요구를 내놓기도 했다. 그 뒤 삼성전자는 잇따라 대응책을 마련했다. 지난해 10월엔 올해부터 2020년까지 3년간 배당을 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액면분할 이야기는 일절 없었다. 그만큼 50대 1 분할은 갑작스러우면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사실 밖을 보면 액면분할은 흔하다. 되레 삼성전자가 늦었다. 지구촌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은 창사 이래 모두 4차례 액면가를 낮췄다. 가장 오래전인 1987년에 2대 1, 가장 최근인 2014년엔 7대 1로 쪼갰다. 1987년 당시 1000주를 가진 주주는 지금 5만6000주를 가진 셈이다. 애플 주가는 현재 167달러, 우리돈 17만9000원 선에 거래된다. 미국판 국민주라 할 만하다. 그에 비하면 250만원대로 치솟은 황제주 삼성전자 주가는 함부로 넘볼 수 없을 만큼 진입장벽이 높다. 50대 1 분할은 이 문턱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다만 액면분할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A)을 단 한 차례도 쪼개지 않았다. 지금 주당 가격은 32만3000달러, 우리돈 3억4600만원에 이른다. 그야말로 황금주다.
버핏은 장기 가치투자라는 자신의 철학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액면분할로 주식이 늘고 주주가 많아지면 경영권 간섭이 잦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삼성전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