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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많아" 대형로펌 떠나는 변호사들

현장에서 뛰는 3~7년차 과도한 업무.스트레스에 공공기관.기업 이직 증가.. 로펌도 대책 마련에 고심

#대형로펌에서 근무하던 5년차 A변호사는 최근 사표를 내고 공공기관으로 이직했다. 살인적인 업무 강도가 이직을 결심한 배경이었다. 야근은 기본이었고 술자리가 끝나도 클라이언트(고객)의 이메일에 답장하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A변호사는 "주말에 쉰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면서 "아들이 날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을 때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대형로펌의 중견급 어쏘변호사(associate attorney, 로펌에 고용된 연차가 낮은 변호사)들의 이탈이 심화하고 있다. 대형로펌이 업무 강도가 높고 최근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변호사 채용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일원화 영향으로 대형로펌에서 검찰이나 법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잦아졌다. 대형로펌은 TF 구성 등 어쏘변호사 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업무량 이 정도일줄은…"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형로펌들이 3~7년차 변호사들 이탈에 고심하고 있다. 변호사업계의 인력 이탈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이탈 행렬은 주로 다른 로펌으로 이직이 아닌 공공기관이나 기업으로 방향을 돌린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금융이나 송무 쪽에서 허리급 변호사들 이탈이 심각하다"며 "관련 금융기관 사무관, 또는 서기관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대형로펌 측은 인력 이탈로 인해 업무에 차질을 빚는다고 입을 모은다. 대형로펌의 11년차 파트너 변호사는 "업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3년차부터 이직이 시작된다"며 "제 몫을 다하도록 키워놓고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니 사기가 저하될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해당 변호사의 팀은 2년차, 5년차, 10년차로 구성됐다. 그는 "우리 팀 사정은 매우 좋은 편"이라며 "다른 팀에서 5년차는 찾기 어려울 정도"라고 설명했다.

어쏘변호사들의 줄지은 이탈 배경에는 과도한 업무 강도가 있다. 최근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새로운 선택을 하는 어쏘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 대형로펌의 3년차 변호사는 "대형로펌의 업무량이 많은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급여가 높지만 쓸 시간도 없어 씁쓸하기까지 하다"고 밝혔다.

대형로펌 관계자는 "대형 로펌에서 혹독하게 업무를 배워 공공기관이나 기업으로 옮겨 쉽게 일하자는 분위기가 어쏘 변호사들 사이에 형성됐다"고 전했다.

결국 남은 변호사들은 과중한 업무를 떠안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형로펌 4년차 변호사는 "누군가 나가면 다른 사람에게 업무가 재할당돼 산술적으로 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형로펌 인력 유출에 '고심'

2011년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도입된 '법조일원화' 정책도 이직 행렬에 불을 지피고 있다. 법조일원화는 일정 경력을 가진 변호사 등을 법관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법조일원화에 따라 판사가 되려면 지난해까지는 법조경력 3년이 필요했지만 올해부터 2025년까지는 7년 경력이 있어야 한다. 한 변호사는 "지난해 대형로펌에서 어쏘변호사 2명 안팎이 법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전했다.

대형로펌은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법무법인 동인의 경우 TF를 꾸려 어쏘변호사를 빠르게 파트너로 바꿔주는 '뉴 계약파트너'제도를 도입했다.
높은 연차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해당 제도는 7~8년차 어쏘변호사가 원할 경우 심사를 통해 지분을 가진 파트너 변호사 수준의 지위와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번 제도를 총괄한 TF팀장 서기원 변호사는 "능력이 뛰어난 어쏘변호사가 파트너로 승진하는 데 10년 이상 걸려 다른 곳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해당 제도를 통해 어쏘변호사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