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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섀도보팅 폐지, 보완책 마련 시급하다

감사위원 선임 실패 첫 파행.. 의결 기준이라도 완화하길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 폐지 후 올해 주총에서 첫 파행 사례가 나왔다. 영진약품은 지난 9일 주주총회를 열었지만 소액주주가 적게 참여해 감사위원을 뽑지 못했다. 감사위원을 뽑으려면 전체 의결권 지분의 25%가 찬성해야 한다. 대주주는 지분이 많아도 의결권 지분은 3%로 제한돼 있다. 영진약품은 나머지 지분으로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기업들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섀도보팅 폐지 후폭풍은 예견됐던 일이다. 기업들은 소액주주 참여가 저조해 주총 진행이 어려워진다고 여러 차례 금융당국에 호소했다. 대부분의 소액주주들은 주총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단기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주가가 오르면 차익을 내고 팔거나 호재가 있는 쪽으로 갈아타면 된다. 소액주주들은 뭉치지 않으면 주총에서 힘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소액주주들의 주총 참여율은 주식수 대비 평균 1.88%다. 소액주주들이 주식을 보유하는 기간은 평균 5개월이다. 코스닥 소액주주는 2개월밖에 안된다. 현 상황에서 기업들이 주총 안건을 통과시키기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도 대안을 내놓기는 했다. 대표적인 것이 모바일 전자투표제다. 주총장에 가지 않고도 투표토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단기투자자 비율이 높은 코스닥 기업들엔 의미가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는 기업이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독려하면 제재하지 않겠다는 조건도 달았다. 하지만 주총에서 파행을 빚을 우려를 불식시킨 건 아니다. 제재를 피한 기업이 임시주총을 열어도 안건이 틀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올해 90개 넘는 상장사가 영진약품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주식이 분산돼 '소유 지배구조가 좋다'고 평가받는 기업일수록 섀도보팅 폐지 후 주총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외국처럼 출석한 주식의 과반수만으로 결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진국들은 주총 의결기준을 완화하는 추세다. 영국은 2명 이상만 출석하면 주총이 성립되도록 허용하고 있다. 독일은 의사정족수 도입을 회사가 알아서 정한다. 일본도 의사정족수를 지킬지 말지를 정관으로 정한다. 중국도 출석 주식수의 과반수 찬성만으로 의결 정족수를 인정한다. 증시에서 대주주 독단을 막는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을 무시하고 소액주주 권한만 강화하면 역효과가 난다. 정부는 부작용을 막을 대안을 빨리 마련하기 바란다. 의결 기준을 낮추는 것도 한 방법이다.